■ 보학/고궁,정려,서원

중명전(重明殿)

야촌(1) 2013. 3. 1. 04:08

■ 중명전(重明殿)

 

↑최초 지어졌을 당시 중명전(1899년 아펜젤러 촬영-배재학당 소장)

 

중명전은 원래 정동지역 서양 선교사들의 거주지에 속해 있다가, 1897년 경운궁(현 덕수궁)이 확장되면서 궁궐로 편입되었다. 이때 당호를 ‘수옥헌’이라 짓고, 주로 황실 도서관(King's Library) 용도로 사용되었으나 1901년 화재로 전소된 후 재건되어 지금과 같은 2층 벽돌 건물의 외형을 갖추게 되었다. 건물의 설계는 독립문, 정관헌 등을 설계한 러시아 건축가 사바찐(A.I. Sabatin)이 하였다.

 

 

↑좌로부터 이준. 이상설. 이위종

 

중명전은 대한제국의 중요한 현장이다.

 

특히 1904년 경운궁(현 덕수궁) 대화재 이후 중명전으로 거쳐를 옮긴 고종황제의 편전(便殿)으로 사용 되었다. 1905년 11월 을사늑약이 이곳에서 불법적으로 체경 되었으며, 그 후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국제사회에 알리고자 1907년 4월 20일 헤이그 특사로 정사 이상설 부사 이준, 이위종을 파견한 곳도 바로 중명전이다.

 

일제는 헤이그 특사 파견을 빌미로 고종황제를 강제 퇴위시켰다.

 

 


오다쇼고 「덕수궁사(德壽宮史)」에 소개된 중명전

왕궁사(王宮史-이철원 저)/1954년 중명전 사진

 

 

 

 

↑2009년 복원 후의 중명전(重明殿)

 

●증명전 전시관 공개

◇제1실 : 중명전의 탄생

◇제2실 : 을사늑약을 증언하는 중명전(1905)

◇제3실 : 주권회복을 위한 대한제국의 투쟁

◇제4실 : 헤이그특사의 도전과 좌절(1907)

 

●증명전 관련 주요연혁

◇1897~1899 : 장로교 여선교사들이 지은 정동여학당 터에 황실도서관 중명전 준공

◇1901 : 중명전 화재 후 재건

◇1904 : 경운궁 대화재, 광무황제(고종) 중명전으로 거처 옮김

◇1905 : 11월 17일 을사늑약 체결

◇1907 : 4월 고종, 헤이그특사 파견 / 8월 영친왕 황태자 책봉

◇1915 : 외국인들의 사교 클럽으로 쓰임

◇1925 : 화재로 전소. 재건함

◇1963 : 영친왕과 이방자 여사에게 기증

◇1976 : 민간에 매각

◇1983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53호로 지정

◇2003 : 정동극장 인수

◇2006 : 문화재청 인수

◇2007 :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124호로 덕수궁에 편입

◇2009 : 12월 문화재청 중명전 복원 완료

◇2010 : 8월 27일(금요일) 일반개방

 

● 찾아가는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