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명전(重明殿)
↑최초 지어졌을 당시 중명전(1899년 아펜젤러 촬영-배재학당 소장)
중명전은 원래 정동지역 서양 선교사들의 거주지에 속해 있다가, 1897년 경운궁(현 덕수궁)이 확장되면서 궁궐로 편입되었다. 이때 당호를 ‘수옥헌’이라 짓고, 주로 황실 도서관(King's Library) 용도로 사용되었으나 1901년 화재로 전소된 후 재건되어 지금과 같은 2층 벽돌 건물의 외형을 갖추게 되었다. 건물의 설계는 독립문, 정관헌 등을 설계한 러시아 건축가 사바찐(A.I. Sabatin)이 하였다.
↑좌로부터 이준. 이상설. 이위종
중명전은 대한제국의 중요한 현장이다.
특히 1904년 경운궁(현 덕수궁) 대화재 이후 중명전으로 거쳐를 옮긴 고종황제의 편전(便殿)으로 사용 되었다. 1905년 11월 을사늑약이 이곳에서 불법적으로 체경 되었으며, 그 후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국제사회에 알리고자 1907년 4월 20일 헤이그 특사로 정사 이상설 부사 이준, 이위종을 파견한 곳도 바로 중명전이다.
일제는 헤이그 특사 파견을 빌미로 고종황제를 강제 퇴위시켰다.
오다쇼고 「덕수궁사(德壽宮史)」에 소개된 중명전 |
왕궁사(王宮史-이철원 저)/1954년 중명전 사진 |
↑2009년 복원 후의 중명전(重明殿)
●증명전 전시관 공개
◇제1실 : 중명전의 탄생
◇제2실 : 을사늑약을 증언하는 중명전(1905)
◇제3실 : 주권회복을 위한 대한제국의 투쟁
◇제4실 : 헤이그특사의 도전과 좌절(1907)
●증명전 관련 주요연혁
◇1897~1899 : 장로교 여선교사들이 지은 정동여학당 터에 황실도서관 중명전 준공
◇1901 : 중명전 화재 후 재건
◇1904 : 경운궁 대화재, 광무황제(고종) 중명전으로 거처 옮김
◇1905 : 11월 17일 을사늑약 체결
◇1907 : 4월 고종, 헤이그특사 파견 / 8월 영친왕 황태자 책봉
◇1915 : 외국인들의 사교 클럽으로 쓰임
◇1925 : 화재로 전소. 재건함
◇1963 : 영친왕과 이방자 여사에게 기증
◇1976 : 민간에 매각
◇1983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53호로 지정
◇2003 : 정동극장 인수
◇2006 : 문화재청 인수
◇2007 :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124호로 덕수궁에 편입
◇2009 : 12월 문화재청 중명전 복원 완료
◇2010 : 8월 27일(금요일) 일반개방
● 찾아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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