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선조유적. 유물

증조모 성산전씨 유택혈지에 대하여

야촌(1) 2009. 11. 15. 20:47

■ 증조모 성산전씨 유택혈지(穴地)에 대하여

 

선고(先考) 청풍공(淸風公)께서 생전에 서울에오시면 한 보름간 계시다 귀향하시곤 하셨는데 그때 마다 효경(孝經)이며, 수신제가(修身齊家)며, 신언서판(身言書判)이며, 오문(吾門)의 문벌에 이르기 까지 일장 강론을 하시던 기억이 새롭다.

 

당시에는 아버님 말씀에 귀 귀울여 듣질 않았지만 제 나이 지천명(知天命)에 이르러 자식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부모의 깊은 혜안(慧眼)을 알게되었고, 특히 금산(錦山)의 증조모(曾祖母) 유택(幽宅) 혈지(穴地)에 관한 얘기는 흥미진지한 궁금증으로 남아 조부(祖父) 만송공(晩松公)께서 선비(先妣)의 유택을 왜 고향 멀리 이장(移葬)하셨는지 그 까닭을 고증하고 싶었었다.

 

우리 조부(祖父)께서는 평생 생업에는 종사하지 않으시고 경서(經書)를 가까이 하고 역학(易學)과 풍수지리학(風水地理學)을 공부하신 분이어서 가정의례(家庭儀禮)와 풍수지리(風水地理)에 관련한 유고(遺稿) 한권을 남기셨다.

 

선고(先考) 또한 생업에는 손을 놓으시고 만송공이 남긴 책이나 유고를 바탕으로 공부를 하시며, 벗과는 문경지교(刎頸之交)를 이루며, 일가와 마을 대소사의 길흉사(吉凶事)에는 자기 일처럼 기쁨과 슬픔을 함께하시다 청빈(淸貧)한 삶으로 일생을 마치신 분이시다.

 

우리 집이 대(代)를 이어 이재(理財)와는 담을 쌓고 살다보니 항상 궁핍(窮乏)한 생활모습을 목독한 나로선 소시적에는 두 어른이 참 원망스럽기도 한적이 있었다.(중략)

 

아버지 청풍공으로 부터 구전(口傳)한 충남 금산군 제원면 천내3리(忠淸南道 錦山郡 濟原面 川內三里) 증조모 성산전씨(星山全氏)의 유택지(幽宅地)에 관한 명당(明堂) 이야기의 문헌을 살펴본적 아래와 같은 자료를 옮겨 수록한다. 단 할머니의 유택지가 분명 명당이라는 사실을 고증하는 것은 아님으로 참고하기 바랄뿐이다.

 

●이곳은 동양의 제2혈지

 

 

충남 금산군 제원면 천내리(3리) 일용골 뒷산을 말하는 곳인데, 천내강을 굽어보고 있는 자리다. 이곳은 남북으로 길게 늘어진 구릉(丘陵)으로서, 산의 정상 높이가 해발 약 150m 정도 밖에 안된다.

 

 

이곳 입지는 용화리(龍化里)에서 흘러내려 오던 물줄기가 이곳 일용골 구릉을 S자 형태로 휘어 돌아 충북 영동군 양산면 쪽으로 빠져 나가고, 북서쪽으로는 금산읍에서 흘러나오는 봉황천(鳳凰川)이 천내강(川內江)과 합류하는 곳이다.

 

그리고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35호로 지정된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 12기가 있는데, 마을사람들은 이 고인돌을 팔선(八仙) 바위라 하여 신성시 하고, 함부로 건드리지 않는다. 또한 이곳은 선인부사도강형(仙人浮莎渡江形)으로 동양(東洋)의 두번째 가는 혈지(穴地)로 유명해서, 풍수가들의 발걸음이 끊기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선인부사도강형의 문헌내용

 

 

지금까지 알려진 '선인부사도강형(仙人浮莎渡江形)'에 관한 만산결(萬山訣)과 이곳 천내리 일대에서 전하는 설(說)과, 장익호(張益鎬)선생의 유산록(遊山錄)의 기록 일부를 정리한 것이다.

 

아래는 만산결(萬山訣)의 결록(訣錄) 내용이다.

 

 

 

 

↑선인부사도강형산도(仙人浮莎渡江形山圖)

 

 

『금산(錦山) 천내(川內) 병오룡(丙午龍) 사유축감계득(巳酉丑坎癸得) 진파(辰破) 선인부사도강형(仙人浮莎渡江形) 횡작삼혈순승(橫作三穴順承) 위안취적봉단좌(爲案翠積峰端坐) 월용봉삽천(月龍峰揷天) 후유룡(後有龍) 전유낙안평(前有落雁坪) 수구인암입(水口印岩立) 동방이지(東方二地) 선등과갑(先登科甲) 명현비여주문공삼인병출(名賢比如朱文公三人幷出) 부귀차여왕공자이십팔인병출(富貴比如王公子二十八人幷出) 기간문무장상계계불핍지지(其間文武將相繼繼不乏之地) 하유천기(下有千基)』

 

 

위의 글을 간략하면 "금산 천내리에 병오룡(丙午龍)으로 입수(入首)한 터는 사유축방(巳酉丑方)과 감계(坎癸)방에서 득수하고, 진방(辰方)으로 파구(破口)되는 선인부사도강형의 혈인데, 횡장(橫障)으로 길게 벌려 삼혈(三穴)을 작혈(作穴)하였다. 전방의 취적봉(翠積峰) 안산이 단정하게 응기(應氣)하고, 뒤쪽에서 솟구친 월영봉(月影峰)이 혈을 후조(後照)한다.

 

강 건너 펼쳐지는 낙안평(落雁坪)이 아늑하고, 수구(水口)에는 인암사(印岩砂)가 직립(直立)하였다. 동방에서는 두 번째로 치는 대혈(大穴)로, 자손들이 등과(登科)하는데, 주문공(朱文公)같은 명현(名賢)이 셋이나 배출되고, 부귀를 겸비한 왕공자(王公子) 같은 인물이 28인이 나오며~~문무장상(文武將相)이 끊이지 않는다. <碩礎 채영석>

 

●명당의 발복(發福)

 

 

 

세상사는 공짜가 없듯이 명당 또한 공짜가 없다.

행여 조상의 산소를 명당에 모셨다 해도 또는 세도나 돈으로 왕릉 같이 석물로 꾸미고 치장을해도 후손들이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하며, 일가친척 간에 화목하고 조상을 잘 섬기는 선한 삶을 살지 않으면 명당은 발복(發福)하지 않는법이다.

 

 

옛 말에 콩심은데 콩나고 팥심은데 팥 난다고 하지 않았던가!? 선고 청풍공 께서 불초(不肖)에게 들려준 말씀입니다.

 

2009. 11. 15

不肖曾孫 在薰 謹誌

 

 

↑소재지 : 충청남도 금산군 제원면 천내리(忠淸南道 錦山郡 濟原面 川內三里) 팔선(八仙) 바위下. 진좌(辰坐)

 

↑묘의 뒤에서 바라본 전경, 앞에 보이는 다리가 제원교이다.

 

↑ 묘지 뒤에 보이는 가건물은 마을 상수도용 물탱크이다.

 

 

 

 

 

 

 

↑위의 사진은 2013. 03. 27(수) 필자가 성묘차 촬영한 것임. 성묘는 서울에서 필자 내외와 동생 그리고 대구

    에서 필자 중씨와 제종제(再從弟)인 재곤 父子가 현지에서 만나 함께 참석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