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신라사(新羅史)

신라육성(新羅六姓)

야촌(1) 2006. 10. 28. 01:28

       삼국사기 1권 신라본기

■ 신라 육촌장 사당(양산재) 

 

●육부촌장 시조 탄강지(六部村長 始祖 誕降地) 

 

순위 지역명(地域名) 시조명(始祖名) 탄강지(誕降地)   성씨
첫째 양산촌장(楊山村長) 알평(謁平) 표암봉(瓢巖峰)   李氏
둘째 돌산고허촌장(突山高墟忖 소벌도리(蘇伐道理) 형산(兄山)   崔氏
셋째 무산대수촌(茂山大樹村) 구례마(俱禮馬) 이산(伊山)   孫氏
넷째 취산진지촌장(觜山珍支村) 지백호(智伯虎) 화산(花山)   鄭氏
다섯째 금산가리촌(金山加利村) 지타(祗沱) 명활산(明活山)   裵氏
여섯째 명활산고야촌(明活山高耶村) 호진(虎珍) 금강산(金剛山)   薛氏

전한(前漢) 무제(武帝) 원수(元狩) 6년 갑자(甲子: 서기전 117)에 하늘에서 육대인(六大人)을 경주(慶州) 땅에 탄강(誕降)시켜 육촌(六村)의 장(長)을 삼았다.

 

 

법흥왕[신라 23대 임금] 3년 병신[단기 2849년=서기 536년]에 육부장에게 시호를 추증하였다.

 

구분(區分) 성씨(姓氏) 시조명(始祖名) 자(字) 시호(諡號)
양산부(楊山部) 이씨(李氏) 알평(謁平) 천서(天瑞) 문선(文宣)
고허부(高墟部) 최씨(崔氏) 소벌도리(蘇伐道理) 당운(當雲) 충선(忠宣)
대수부(大樹部) 손씨(孫氏) 구례마(俱禮馬) 경운(景雲) 충렬(忠烈)
진지부(珍地部) 정씨(鄭氏) 지백호(智伯虎) 인세(仁世) 문화(文和)
가리부(加利部) 배씨(裵氏) 지타(祗沱) 즙문(葺文) 문양(文讓)
명활부(明活部) 설씨(薛氏) 호진(虎珍) 백양(白楊) 무신(武信)

 

 

●태종무열왕[신라 29대 왕] 3년 병진[단기 2989년=서기 656년]에 육부장을 왕으로 추봉 하였다,

 

순 위 성 씨 시조명 왕 위 명 기 타
첫째 이씨(李氏) 알평(謁平) 은렬왕(恩烈王)  
둘째 최씨(崔氏) 소벌도리(蘇伐道理) 문렬왕(文烈王)  
셋째 손씨(孫氏) 구례마(俱禮馬) 문의왕(文義王)  
넷째 정씨(鄭氏) 지백호(智伯虎) 감문왕(甘文王)  
다섯째 배씨(裵氏 지타(祗沱) 장렬왕(壯烈王)  
여섯째 설씨(薛氏) 호진(虎珍) 장무왕(壯武王)  

↑위의 신라 여섯 성씨 시조분을 일컬어 6대인 즉 육촌장이라 부른다.

 

●입 군왕[임금을 세움]   

   전한 선제 지절 원년 임자[단기 2260년=서기 28년] 3월 1일에 여섯 분의 촌장과 더불어 양산기슭의 나정에 모였

   다가 숲 사이에 흰말이 구부려 절하는 모양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가보니, 흰 말은 보이지 않고 박[표주박] 같이 생

   긴 큰 알이 있어 깨어 보니 어린아이가 있었다. 

 

   이 점을 이상이 여긴 육촌장은 이 아이를 거두어 길렀다, 이 아이가 13세가 됨에 모든 것이 우뚝하였다.

   그 아이의 태어 남이 신기하여 육 대인은 그 아이를 세워 임금을 삼고 나라 이름을 서라벌이라 하니,

   즉 혁거세이다.

 

  육촌장이 모두 좌명공신[천명을 받아 임금이 될 사람을 도운 공로가 있는 사람]이 되니 이때가 전한 선제 오봉 원

  년 갑자[단기 2277년=서기전 57년] 여름 4월이다, 

 

●사성(나라에서 성을 내려주는 것)

   유리왕[신라 제 3대 왕]9년 임진[단기 2365년-서기 32년] 봄   에 부명을 고칠 때에 육 대인의 후손들에게 성을 하

   사함.

 

○양산부를 급양부로 고치고 성을 이씨로 주고

○고 허부를 사량부로 고치고 성을 최씨로 주고

○대수부를 점양부(또눈 모량)로 고치고 성을 손씨로 주고

○진지부를 본 피부로 고치고 성을 정씨로 주고

○가리 부를 한 지부로 고치고 성을 배씨로 주고

○명활 부를 습 비부로 고치고 성을 설씨로 주었다 

 

●증시[임금이 시호를 내림] 및 추봉[나중에 봉함]   

   법흥왕[신라 22대 임금] 3년 병신[단기 2849년=서기 516년]에 육 부장에게 시호를 추증하였다. 

 

○알평의 자는 천서니 시호는 문선(文宣)이고 은열왕으로 봉하였다.

○소벌도리의 자는 당운이니 시호는 충선이고 문열왕으로 봉 하였다.

○구레마의 자는 경운이니 시호는 충렬이고 문의왕으로 봉하였다,

○지백호의 자는 인세이니 시호는 문화이고 감문왕으로 봉하였다,

○지타의 자는 즙문이니 시호는 문양이고 장렬왕으로 봉하였다,

○호진의 자는 백양이니 시호는 무신이고 장무왕으로 봉하였다, 

 

●철향[충의와 도덕을 기리는 서원 사당에 배양함]    

   광복 후 24년 신해[서기 1971년]에 경주의 관민이 육촌장의 개국[나라를 세움]의 공을 기리는 뜻에서 경주시 탑

   정동 나정리에 촌장각을 세워 묘는 입덕묘라고 하고 재는[제사] 양산재라 하고 육촌장을 철향하니 그 위차는

 

○첫째 알천 양산 촌장이고

○둘째는 돌산 고허 촌장이고

○셋째는 취산 진지 촌장이고

○넷째는 무산 대수 촌장이고

○다섯째는 금산 가리 촌장이고

○여섯째는 명활산 고야 촌장이다, 제사의 이름은 신라 대제라 하니 음력 8월 17일이다,

 

[참고]

상고하건대 취산 진지촌이 육촌에 있어서 삼국사기에는 셋째로 기록되었고 삼국유사에는 넷째로 기록되었는데 이제 입덕 묘의 철향[서원 사당] 위차에는 삼국유사의 기록을 버리고 삼국사기의 기록을 취하니 대개 유림의 중의를 쫓을 뿐이 아니라 또 삼국사기가 정사인 점을 중의 여긴 것이다,

 

●증거 : 삼국사기[신라 본기 시조 혁거세조]    

   시조의 성은 박씨이고 이름은 혁 거세이다,   전한 효 선제 오봉 원년 갑자[단기 4377년 서기전 57년] 4월 병진 날

   [혹은 정월 15일이라고도 함]에 즉위[임금이 왕위에 오른 것]하여 왕호를 거서간[귀인을 일 커는 뜻이다]이라 하

   고 그때 나이 13세로 나라의 서라벌이라 하였다,

 

 일찍이 조선의 유민들이 이곳에 와서 산곡 간에 헤어저 여섯 촌락을 이루었다,

 

○첫째는 알천의 양산촌이고

○둘째는 돌산의 고허촌이고

○셋째는 취산의 진지촌이고

○넷째는 무산의 대수촌이고

○다섯째는 금산의 가리촌이고

○여섯째는 명활산의 고야촌이란 것이니 진한의 육부이었다,

   고허 촌장 소벌 공이 하루는 양산 밑 나정 곁에 있는 숲 사이를 바라본 즉 말이 무릎을 꿇고 울고 있는지라 가보니

   말은 간데없고 다만 있는 것은 큰 알 뿐이었다, 알을 깨어 보니 한 어린아이가 거기서 나왔다,

 

  곧 소벌 공이 데려다가 길렀더니 나이 10여 세가 되매 유달리 솟아나게 일찍 되었다,육부 사람들은 그 아이의 출

  생이 이상하였던 까닭에 높이 받들더니 이때에 이르러 그를 세워 임금을 삼았다, 진인(진나라 사람)은 박(표주박)

 을 박씨라 함에 처음 큰 알이 박과 같아 하여 박으로써 성을 삼았았다, 거서간은 진인의 말에 왕이란 뜻이다,

 

●삼국사기(신라 본조 유리 마사 금조)

   육부의 이름을 고치고 성씨를 줄 때,

 

○양산부를 급양부로 하고 이씨를 주고,

○고허부를 사양부로 하고 최씨를 주고,

○대수부를 점양부로 하고 손씨를 주고,

○진지부를 본피 부로 하고 정씨로 주고,

○가리 부를 한 지부로 하고 배씨로 주고,

○명활 부를 습 비부로 하고 설씨를 주다, 이때는 유리왕 9년 임진(단기 2365년) 봄이다,

 

●삼국유사   

   진한 땅(진한은 본래 진나라 사람이 난리를 피하여 들어오니 한에서 땅을 떼여 주었으니 이것을 진한이라 뒤에 신

   라의 서울이 되었으니 지금의 경주이다)에 육촌이 있으니,

 

○첫째는 알천 양산 촌장 알평이니 처음 표암봉에 내려와서 급양부 이씨의 조상이 되고,

○둘째는 돌산 고허촌장 소벌도리니 처음 형산에 내려와서 사양부 최씨의 조상이 되고,

○셋째는 무산 대수 촌장 구례마이니 처음 이산에 내려와서 손씨의 조상이 되고,

○넷째는 취산 진지촌 장 지백호니 처음 화산에 내려와서 정씨의 조상이 되고,

○ 다섯째는 금산가리촌장 지타니 처음 명활산에 내려와서 배씨의 조상이 되고,

○여섯째는 명활산 고야촌장 호진이니 처음 금강산에 내려와서 설씨의 조상이 되었다,

 

●동국사   

   조선 백성이 동해 가에 헤어저 육촌으로 나누어 살았으니 이것이 진한이다, 전한 선재 오동 원년 갑자{단기 2277

   년}에 육부의 장이 알천 언덕에 모여 의논하되 우리들이 임금이 없어니, 덕이 있는 사람으로 임금을 세우자 하고

   양산촌장 알천 등이 혁거세을 세워 임금을 삼고 진한(경주) 땅에 서울을 정하였다,

 

 유리왕 9년 임진{단기2365년}에 육부의 이름을 고치고 성씨를 줄 때,

○급양부를 이씨로,

○사양부를 최씨로,

○모양부를 손씨로,

○진지부를 정씨로,

○가리부를 배씨로,

○명활부를 설씨로 주니 이것을 신라 육부대성 이라고 한다.

   여기 까지가《육대인》께서 처음으로 성씨을 부여받고 왕위를 진였던 기록입니다,

   그리고 《혁거세》와의 동조상부 즉 육대인 과 혁거세 와의 두터운 친분관계가 형성 되어 있다는 기록 이기도 합

   니다.

 

 ●경주 양산재(慶州楊山齋)

 

 ↑新羅六村長의 神位를 모셔 놓은 慶州 楊山齋의 立德廟의 내부

   (소재지:경북 경주시 탑동 690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