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신라사(新羅史)

경주평야(탑동)서 2천여년전 수장급 목곽묘 발굴

야촌(1) 2010. 6. 18. 20:55

경주평야(탑동)서 2천여년전 수장급 목곽묘 발굴                                            

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2010/06/18 06:00 송고

 

신라 건국 세력 무덤 추정..유물 쏟아져(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경주평야에서 기원전 1세기 중.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수장급 인물의 목곽묘(木槨墓)가 발굴됐다. 특히 묘와 주변에서 수준 높은 유물들도 대량으로 발견돼 상당한 세력을 지녔던 인물의 묘로 추정되며 경주평야에서 이런 목곽묘가 발견된 것은 처음이다.

 

이로써 신라가 태동한 곳은 경주평야 일대가 아니라 사라리 130호분이라든가, 조양동 38호분 같은 대형 목곽묘가 발견된 경주 외곽 지역일 가능성이 있다는 고고학계의 주장이 힘을 잃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문화재보호재단 문화재조사연단은 경주평야내 탑동 21-3ㆍ4번지 소규모 단독주택 신축 예정지 790㎡를 발굴조사한 결과, 목재가 자연 탄화하는 과정에서 숯처럼 변한 목관의 흔적과 함께 옻칠을 입힌 나무 칼집에 동검(銅劍)이나 철검을 끼운 칠초동검(漆鎖銅劍)과 칠초철검(漆鎖鐵劍) 등 많은 유물을 발굴했다고 18일 말했다.

 

출토유물

 

        ↑청동천. 와형동포. 구슬류                   ↑청동촉

 

목관을 묻은 묘광(墓壙.무덤구덩이)은 평면 모죽임 장방형으로, 동-서 방향으로 장축을 마련했으며 크기는 길이 296㎝, 너비 144㎝였다. 목관은 발견된 흔적으로 볼 때 묘광에서 약간 남쪽으로 치우쳐 안치됐으며 평면 형태는 'ㅍ'자형, 크기는 길이 196㎝, 너비 84㎝로 나타났다.


목관 내부에서 칠초동검과 칠초철검, 칼자루 끝장식인 검파두식(劍把頭飾), 청동 팔찌, 목걸이, 그리고 시신 얼굴을 가리는 데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칠기 부채 등의 유물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나아가 묘광과 목관을 채운 흙인 충전토에서는 기원전 2~1세기 무렵 이 지역을 대표하는 토기들인 조합식 우각형 파수부호(쇠뿔 모양 자루가 달린 항아리)와 양이부호(兩耳附壺. 두 귀가 달린 항아리)는 물론 이른바 북방 계통 유물로 평가되는 쇠솥인 철복과 철모, 그리고 탄화한 흔적으로만 남은 칠기도 다량으로 발굴됐다.

 

출토 유물, 특히 토기로 보아 이 무덤은 박혁거세가 신라를 건국한 기원전 57년과 근접한 기원전 1세기 중ㆍ후반 무렵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출토 유물 구성은 창원 다호리 유적과 상당히 유사하다.

 

신라 고고학 전공인 윤형원 국립대구박물관 학예실장은 "출토 유물로 볼 때 (무덤 축조 시기는) 서기 2세기 무렵에 조성된 사라리 130호분보다는 분명히 빠르고, 조양동 38호분보다는 약간 늦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조사단은 "지금까지 조양동 유적, 사라리 유적 등 주로 경주지역 외곽에서만 확인돼온 수장급 묘가 경주 시내에서 처음으로 발견됐다는 데 무엇보다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역시 신라 고고학자인 이은석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학예실장은 "현재 조사 지역과 가까운 월정교 남쪽 농지대에서 1988년 기원전 2~1세기 무렵에 만든 토기편 일부가 확인된 적이 있어 이 일대 어딘가에 사로국(신라) 건국 세력 집단이 묻힌 고분들이 있을 것이라는 추정은 있었지만 이번에 그런 사실이 고고학적으로 확인됨으로써 초기 신라세력의 실체를 이해하는 데 획기적인 돌파구를 마련했다고 할것이다.

 

↑조사대상지(경북 경주시 탑동 21-3ㆍ4번) 

출토 유물, 특히 토기로 보아 이 무덤은 박혁거세가 신라를 건국한 기원전 57년과 근접한 기원전 1세기 중ㆍ후반 무렵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출토 유물 구성은 창원 다호리 유적과 상당히 유사하다.


신라 고고학 전공인 윤형원 국립대구박물관 학예실장은 "출토 유물로 볼 때 (무덤 축조 시기는) 서기 2세기 무렵에 조성된 사라리 130호분보다는 분명히 빠르고, 조양동 38호분보다는 약간 늦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조사단은 "지금까지 조양동 유적, 사라리 유적 등 주로 경주지역 외곽에서만 확인돼온 수장급 묘가 경주 시내에서 처음으로 발견됐다는 데 무엇보다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역시 신라 고고학자인 이은석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학예실장은 "현재 조사 지역과 가까운 월정교 남쪽 농지대에서 1988년 기원전 2~1세기 무렵에 만든 토기편 일부가 확인된 적이 있어 이 일대 어딘가에 사로국(신라) 건국 세력 집단이 묻힌 고분들이 있을 것이라는 추정은 있었지만 이번에 그런 사실이 고고학적으로 확인됨으로써 초기 신라세력의 실체를 이해하는 데 획기적인 돌파구를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2010.6.18.>

 

↑출토유물 중 칠기부채.

<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2010.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