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12. 09. 17
효종 15권, 6년(1655 을미 / 청 순치(順治) 12년) 7월 21일(계묘) 2번째기사
옥당이 현재를 등용하고 간쟁을 자유롭게 하길 허락하는 등의 일을 아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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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당이【부제학 김익희(金益熙), 교리 이단상(李端相)· 홍위(洪葳), 부교리 이경징(李慶徵)· 이연년(李延年), 수찬 이경억(李慶億), 부수찬 윤집(尹鏶)】 교지에 응하여 차자를 올리기를,
“《홍범(洪範)》에 말하기를 ‘참람하면 극도로 햇볕이 쨍쨍하고 꾸물대면 극도로 무덥다.’ 하였는데, 이를 설명하는 자가 말하기를 ‘다스려짐의 반대가 참람이니, 정사가 다스려지지 않으면 어그러지고 어그러지면 가뭄이 든다. 그러므로 극도로 햇볕이 쨍쨍한 것이다.
명철함의 반대는 머뭇거리며 분명하지 않은 것이므로 꾸물대는 것이다. 꾸물대면 풀어져 느슨하게 된다. 그러므로 극도로 무더운 것이다.’ 하였습니다.
《오행전(五行傳)》에는 말하기를
‘임금이 극성한 양(陽)으로 형벌을 엄히 하고 신하는 형벌이 두려워 입을 다물면, 원망과 비방의 기운이 가요에서 나타나고 그 벌은 극도로 햇볕이 쨍쨍한 것이다.’ 하고, 《경방전(京房傳)》에는 말하기를 ‘덕(德)을 하고자 하면서 쓰지 않는 것을 그 재한(災旱)을 확대한다고 이르니, 그런 가뭄은 음산하게 구름만 끼고 비는 내리지 않는다.
위와 아래가 다 가리운 것을 막혔다고 이르는 것이니, 그런 가뭄은 하늘이 붉다.
여러 지위에 있는 자들이 분수를 넘는 것을 침범한다고 이르는 것이니, 그런 가뭄은 못에 있는 식물들이 마른다.’ 하였습니다. 이상에 근거해서 논한다면 오늘날의 일에 어찌 말할 만한 것이 없겠습니까.
전하께서 즉위하신 이래 다스리기를 원하는 마음이 골똘하지 않은 것이 아니지만, 요령을 얻지 못하고 위임하는 사람이 없어서 일은 주저하다 실패하고 공적은 고식적으로 하다가 실추됩니다. 부역은 균등하지 못한데도 바로잡는 방법을 생각지 않고 경계는 거의 폐기되었는데도 정리할 방도를 알지 못하십니다.
인재가 일어나지 않고 선비는 이록(利祿)만을 추구하는데도 서주(西周) 시대의 인재 육성법을 강구하지 않고, 호적에 사람들이 등재되지 아니하여 단지 빈 장부만을 가지고 있는데도 삼대(三代) 정부(井賦)의 제도를 거행하지 않아, 점차로 왕의 기강이 해이되고 모든 법도가 무너지는 결과를 초래하였습니다.
그래서 단지 어긋나서 다스려지지 않고 풀어져 명백하지 않은 정도로 그치지 않으니, 극도로 햇볕이 쨍쨍하고 항상 날씨가 무더운 것은 진실로 괴상할 것이 없다 하겠습니다.
그리고 외방의 적체된 옥사의 경우 더러는 두세 달만에 한 번 신문하므로 8, 9년 동안 판결이 나지 않는 경우도 있어 감옥에서 갇힌 채로 늙으니, 죄가 있고 없고를 막론하고 다 화기(和氣)를 손상시킬 만한 것입니다. 원망하고 비방해서 항상 햇볕이 쬐게 된 것은 이치가 또한 그러합니다.
임금이 어진이를 구하기까지 수고롭기는 하지만 인재를 얻게 되면 편안해집니다. 옛날의 뛰어난 왕들은 모두가 이 길을 말미암았습니다. 말세에는 인재가 없으니 비록 곁으로 불러 모두 모여들게 하여 마음을 화합하고 힘을 합친다 하더라도 오히려 시대의 일을 완료하지 못할까 두려울 것입니다.
더구나 현인을 좋아하는 바가 처음만 못하고 등용한 사람이 도망한 것도 알지 못하니 말해 뭣하겠습니까.
맑은 이름 아름다운 절개를 간직한 선비는 주상의 마음에 맞지 않고, 수치를 모르고 녹이나 유지하는 신하는 또 찬란한 공적을 떨칠 수가 없으니, 오늘날 사람을 등용하는 것이 잘못되었다 하겠습니다.
맹강(孟康)이 말하기를 ‘인군이 현자를 얻고자 함에 있어 한갓 그 의사만 가지면서 등용은 하지 않는다면 비가 내리지 않는다.’ 하였으니, 어찌 그렇지 않겠습니까. 임금과 신하는 일체로서 서로 필요로 하니, 마음과 뜻이 부합되지 않고서 치도(治道)를 이룬 경우는 있지 않습니다.
근일에 굳센 양의 기운이 점차 극도에 달해 임금의 도리가 아래로 실현되지 못하고, 선비들의 기운은 날로 사라져 신하의 도리가 위로 올라가지 못합니다. 대신(大臣)은, 전하께서 의지하시는 바인데도, 또한 자기 생각하는 바를 다 말하지 못합니다.
지난번에 듣건대, 두세 대신이 나랏일을 몹시 우려하면서도 감히 아뢰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마주하고 울기까지 하였다 합니다. 옛날에 원안(袁安)이 눈물을 흘렸던 것은 임금이 어려 외척들이 권력을 마음대로 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현명한 임금과 어진 신하가 서로 만나면 속마음을 서로 아는 것인데 한 당(堂)에서 가타부타 하지 못하고 한갓 자기 집안에서 울기를 일삼으니, 신은 실로 개탄스럽게 여기는 바입니다. 전하께서 자신에게 돌이켜 구하여 그 연유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대저 임금이란 명령을 내리는 자이고 신하란 임금의 명령을 실행하는 자입니다.
명령이 타당하면 순종하고 알맞지 않으면 간쟁할 뿐입니다. 들어가 임금 앞에서는 순종하고 나와 대궐문 밖에서는 이의를 제기한다면 비록 억지로 힘써 한다 하더라도 실로 성실을 다하지는 않을 것이니, 근거없는 논의가 이를 타고 일어납니다.
근거없는 불확실한 논의가 일단 일어나게 되면 끝내는 반드시 일을 망치게 되는 것이니, 근일의 폐단 중에 이것이 더욱 심한 것입니다. 이러한 기상(氣像)을 두고서 상하가 덕을 같이하여 거리감이 없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상하의 가로막힘이 이와 같으니, 하늘이 붉게 가뭄이 드는 것도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근래 세도가 매우 쇠퇴하여 한계를 무시하여 등급이 없게 되었으므로 사대부는 상관을 범하고 서인은 분수를 범합니다. 민간에는 불법적인 일이 날로 더욱 심해지고, 국가가 아랫 백성에게 표본이 되는 바도 또한 미진한 것이 있습니다.
공주의 저택은 칸수가 법전에 실려 있는데, 얽어서 연달은 것이 수백 칸일 뿐만 아니라 화려한 것은 토목의 기술을 극도로 발휘하였으니, 자못 전하께서 법률을 준수하고 검소를 밝혀서 자손에게 집이 부족하나마 완비되었으면 길이 편안하다는 것을 남겨주는 지극한 뜻이 아닙니다.
지나간 일은 이미 말할 것이 없으나 당장의 일은 오히려 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시대가 어려운데 사치스러운 공사를 일으키는 것에 대해서는 옛 사람이 경계한 바가 있습니다.
병조의 재물이든 내탕(內帑)의 재물이든 막론하고 어느 한 가지인들 백성의 고혈이 아니겠습니까.
《춘추(春秋)》에서 대(臺)를 쌓아 가뭄이 든 것을 기롱하였으니, 무릇 제도를 넘는 공사는 다 못에 있는 식물이 마르는 재앙을 초래하는 것입니다.
대개 이 몇 가지는 모두 옛 사람의 논의가 있기에 신들이 옛것을 원용하여 오늘을 증명하여 우연히 한번 터득한 것을 바치고자 한 것입니다. 또한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한갓 견강부회라고 돌리지 마시고 빨리 정교(政敎)를 닦으시어 천명을 연속시킬 것을 생각하소서.
그리하여 정치를 함에는 구차히 편안한 것에 안주하지 말고 경장(更張)하는 것을 기탄하지 말며, 정벌의 도모와 다스리는 방법을 강구하여 유실함이 있지 말아서 잘못하고 망설이는 실수를 경계하소서.
형벌을 살핌에는 불쌍히 여기고 조심스럽게 하는 마음을 다하여, 무릇 중외의 감옥을 다 그 있는 곳에서, 원통함을 안고 답답하게 억눌려 있는 자들을 마음을 다해 조속히 판결하게 하시고, 생사에 관계없이 똑같게 불쌍히 여겨 노래로 원망하고 비방하는 환란을 없애소서.
사람을 등용함에는 그 성의를 다하여 널리 구하고, 그 재능을 다 할 수 있도록 위임하여, 신중을 기하는 것을 혐의하지 말고 어렵게 나오는 것을 꺼리지 말며, 강직하다고 해서 소원히 하지 말고 재난(災難)에 의한 과오를 이유로 버리지 말아서, 정신을 모아 천직(天職)을 함께 다스려 한갓 그 뜻만 무성히 한다는 기롱을 벗어나소서.
군신간의 거리감을 제거함에는 성의를 열고 공적인 마음을 펼치고 마음을 비우고 받아들여 다만 일의 시비와 이치의 가부만을 보며, 공손하고 거스르는 것과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으로써 먼저 성상의 마음에 결정하지 않아, 대소 신하들로 하여금 그 속마음을 모두 진달하고 숨기는 바가 없게 하소서.
그런 뒤에 절충해 취사하는 것은 전하의 마음에서 결단하며, 뭇 사람들의 마음이 만일 온당치 않게 여기는 것이 있으면 또한 분명히 말하고 드러내놓고 간쟁하도록 허락하여 지극히 정당한 것을 구하시고, 반드시 상하가 함께 돌아가 물러가서 뒷말하는 일이 없게 하소서. 이와 같이 하는데도 가로막혀 가뭄이 들 이치는 결코 없습니다.
절도를 넘는 것을 금지함에는 임금이 지극히 공적이고 바른 것으로써 위에서 표준을 세워 아래에 있는 자로 하여금 보고 감동하고 두려워 복종하는 바가 있게 한 연후에, 위엄있는 명령이 펴질 수 있고 등급과 한계가 밝아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방법은 마땅히 존귀한 이와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공주(公主)의 제택(第宅) 중 이미 건축하였는데 제도를 넘은 것은 철거를 허락하고, 아직 건축하지 않은 것은 한결같이 법전을 따라 시행한 연후에, 민간 벼슬아치나 일반인의 집 가운데 제도를 위반한 것은 법부(法府)에 분명히 명하시어 일체 철거하게 하여 다투어 저택을 호화롭게 하는 것을 징계하소서. 이와 같이 하는데도 일반인들이 분수를 넘고 그에 따라 식물이 고사할 이치가 또한 없습니다.
그리고 또 생각건대, 전하께서 지극한 정성으로 직언을 구하시는 것은 장차 충언에 도움받는 길을 넓히려는 것인데, 일찍이 일에 대해 언급한 신하들이 아직도 유배되어 있으니, 거리낌없이 말할 수 있는 문호를 크게 개방하는 바가 아닌 듯합니다.
죄를 범한 것의 경중(輕重)을 막론하고 모두 사면하시는 은혜를 내리신다면, 어찌 더욱 성덕에 빛나지 않겠습니까.” 하니, 상이 기꺼이 받아들였다.
【태백산사고본】
【영인본】 36책 23면
【분류】 *정론-간쟁(諫諍) / *과학-천기(天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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