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국사(國史)

경주부윤 이계복(李繼福)이 삼국유사를 재간행하다.

야촌(1) 2012. 8. 20. 21:23

500년전 경주에서 무슨일이?

경주부윤 이계복(李繼福) 생각 

 

 

↑국보 제306호인 삼국유사

 

올해는 신라시대의 경주에서 ‘국학’이 태동한지 1330년이 되는 역사적인 해라 얼마 전, 이 역사적 사건을 기리는 뜻 깊은 행사도 있었다. 그런데 국학 기념행사 못지않게 올해 경주는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또 하나의 중요한 학술적 사건이 있었던 해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500년 전(1512년12월)에 경주부윤, 이계복의 ‘삼국유사 재간행’ 사건이다.

 

조선 중종 7년(1512년), 경주부윤(현재 경주시장)으로 와 있던 이계복(李繼福)은 경주 관아의 작은 창고에 묻혀 있던 ‘삼국유사’의 원판본을 발견하고 ‘재간행’한 해가 바로 500년 전의 올해이다. 그 당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고 중요시 하지 않던 ‘삼국유사[三國遺事)’를 이계복은 왜 힘든 상황을 극복해 가며 재간행 하려고 했을까?

 

 

경주부윤 이계복!

타임머신을 타고 만나보고 싶은 사람, 뛰어난 선각자적 안목을 지녔던 인물!,

 

만약 이계복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는 위대한 민족의 유산이자 상상력의 보고인 ‘삼국유사’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생각하면 아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마터면 사라질 뻔한 ‘삼국유사’를 발견하고 재간행한 이계복!,

그리고 ‘경주본 삼국유사’를 재탄생시킨 땅, 경주!

 

오늘, 문화역사도시의 현장인 경주에 사는 우리는 이 학술적, 역사적 사건이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잘 아시다시피 ‘삼국유사’는 참 극적인 운명을 타고 났다. 13세기 후반 고려 때, 일연 스님의 손을 떠난 후 오랫동안 역사 속에서 잊힌 책이었고 16세기 초 경주관아의 창고에 묻혀 있던 판본을 경주 부윤 이계복이 발견하고 새로 인쇄를 했던 책이다.

 

그 후 경주에서 ‘경주본 삼국유사’가 새로 찍힌 지 꼭 80년 후인 1592년 임진왜란이 터지고 임진왜란의 와중에 한권의 ‘경주본 삼국유사’ 책이 어느 일본 패잔병의 봇짐 속에 파묻혀서 이역만리 일본의 땅으로 건너가게 된다.

 

이렇게 우리의 소중한 ‘경주본 삼국유사’가 극적으로 일본 ‘도꾸카와 막부’의 집에 들어간 것은 17세기 초반이다. 그곳에서 우여곡절 끝에 다시 태어나기는 20세기 초반이다.

 

이국땅에서 다시 태어나 20세기 이후에야 육당 최남선의 소개로 비로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널리 읽히기 시작한 책 ‘삼국유사’. 참으로 기구한 운명을 타고난 책이 아닐 수 없다.

 

이 땅의 역사를 ‘사대의 역사’에서 ‘자주의 역사’로 바꿔놓은 백의민족의 위대한 유산, 삼국유사! 만약에 이계복이 경주부윤으로 부임하지 않았고 그가 삼국유사를 경주에서 재간행하지 않았다면 과연 오늘날 삼국유사의 운명은 어찌 되었을까?

 

경주는 500년 전 경주에서 일어난 이 자랑스럽고 놀랄만한 학술적 사건을, 그리고 경주부윤 이계복을 기억해야 한다. 꼭 무슨 거창한 심포지엄이 아니더라도 500년 전 경주에서 재탄생한 삼국유사와 뛰어난 한 선각자의 안목과 업적을 기리는 조촐한 기념행사를 하는 것이 후손인 우리의 할 일이라고 여겨진다.

 

‘삼국유사’ 설화를 바탕으로 한 경주 이야기, 어떤 무대공연(연극이든, 문학 강연이든, 음악회든)이든 간에 우리는 지나간 역사에서 삶의 지혜와 진실을 배워야 한다. 또 후손들은 자랑스러운 조상들의 정신을 계승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경주신문 / 김성춘 동리목월문학관 교학처장 /2012.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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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이계복이 1510년 9월 경주부윤으로 부임하여 재직하고 있던 1512년 삼국유사와 삼국사기를 간행하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고려 인종의 명을 받아 김부식이 1145년(인종 23)에 완성한 삼국시대사이다.

현존하는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서로서, 신라·고구려·백제 삼국의 정치적 흥망 변천을 주로 기술한 정사체(正史體)의 역사서이다. 

 

1970년 옥산서원에서 소장하고 있는 판본이 대한민국 보물 525호로 지정되었다. 

그밖에 1981년 조병순 소장 영본(零本)과 경주부간본(慶州府刊本)이 각각 보물 722호, 723호로 지정되었다. 

보물 525호와 723호가 유일한 완본으로 현전하며, 722호는 1책 44~50권이 전해진다.

 

고려 시대의 간행본은 없어지고, 조선시대에 와서 1393년부터 1394년 사이(태조 2~3년)에 진의귀·김거두가 고쳐 펴냈고, 1512년(중종 7)에 이계복이 다시 고쳤다. 이후 목판 또는 활자로 수차 간행되었다 1174년에 송나라에 진상되기도 했다.

 

 

《삼국유사(三國遺事)》

 

고려의 승려인 일연이 고려 충렬왕 7년(1281년)에 인각사(麟角寺)에서 편찬한 삼국시대의 설화집이다.

2003년에 조선 초기의 간행본과 중종 임신본이 각각 대한민국 국보 제306호와 제306-2호로 지정되었다.

 

삼국유사에는 삼국과 가락국(駕洛國 : 가야)의 왕대와 연대, 고조선 이하 여러 고대 국가의 흥폐·신화·전설·신앙 및 역사, 불교에 관한 기록, 고승들에 대한 설화, 밀교(密敎) 승려들에 대한 행적, 고승들의 행정, 효행을 남긴 사람들의 이야기 등이 수록되어 있다.

 

삼국유사에 실려있는 모든 설화는 삼국 시대의 것이지만, 유동하던 이야기가 고려 시대에 와서 문자로 정착된 것이다. 

따라서 흘러다니던 설화의 내용이 일연이라는 개인에 의해 작품화된 셈이므로 고려의 설화문학으로 취급될 수 있다.

 

삼국유사에 수록된 설화의 주제는 주로 신라 중심, 불교 중심으로 편찬되어 있다. 고대사 연구에서 《삼국사기》와 더불어 쌍벽을 이루고 있다. 특히 단군 신화를 비롯하여 《균여전(均如傳)》에만 11수(首)가 수록되어 있을 뿐, 다른 전적에는 전혀 전하지 않는 이두(吏讀)로 쓰인 향가(鄕歌) 14수가 기록되어 있어 국어 국문학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

 

전체 5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5권 내에 다시 9편으로 나누어져 있다. 

권수는 편목의 유형에 따라 구분한 것이 아니라 분량에 따라 편의적으로 구분한 것이다. 

제1이 왕력과 기이 두 편인데 왕력은 후대에 덧붙여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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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복(李繼福)의 삼국유사 발문(跋文)

 

우리 동방삼국(三國)의 본사(本史)나 유사(遺事) 두 책이 딴 곳에서는 간행된 것이 없고 오직 본부(本府)에만 있었다. 

세월이 오래 되매 완결(완缺)되어 한 줄에 알아볼 수 있는 것이 겨우 4, 5 자밖에 되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건대, 선비가 이 세상에 나서 여러 역사책을 두루 보고 천하의 치란(治亂)과 흥망(興亡), 그리고 모든 이상한 사적에 대해서 오히려 그 견식을 넓히려 하는 것인데, 하물며 이 나라에 살면서 그 나라의 일을 알지 못해서야 되겠는가?

 

이에 이 책을 다시 간행하려 하여 완본(完本)을 널리 구하기를 몇 해가 되어도 이를 얻지 못했다. 

그것은 일찍이 이 책이 세상에 드물게 유포되어 사람들이 쉽게 얻어 보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일 지금 이것을 고쳐 간행하지 않는다면 장차 실전(失傳)되어 동방의 지나간 역사를 후학(後學)들이 마침내 들어 알 수가 없게 될 것이니 실로 탄식할 일이다.

 

다행히 사문(斯文) 성주목사(星州牧使) 권공(權公) 주(輳)가, 내가 이 책을 구한다는 말을 듣고, 완본(完本)을 구해 얻어서 나에게 보냈다. 나는 이것을 기쁘게 받아 감사(監司) 안상국(安相國) 당(당)과 도사(都事) 박후전(朴候佺)에게 이 소식을 자세히 알렸더니 이들은 모두 좋다고 했다. 이에 이것을 여러 고을에 나누어 간행시켜서 본부(本府)에 갖다가 간직해 두게 했다.

 

아아! 물건이란 오래 되면 반드시 폐해지고 폐해지면 반드시 일어나게 마련이다. 

이렇게 일어났다가 폐해지고 폐해졌다가는 다시 일어나게 되는 것이 바로 이치의 떳떳한 바이다. 

이치의 떳떳함으로 일어날 때가 있는 것을 알고 그 전하는 것을 영구하게 해서 또한 후세의 배우는 자들에게 배움이 되기를 바라는 바이다.

 

황명(皇明) 정덕(正德) 임신(任申) 계동(季冬)에 부윤(府尹) 추성정난공신(推誠定難功臣) 가선대부(嘉善大夫) 경주진병마절제사(慶州鎭兵馬節制使) 전평군(全平君) 이계복(李繼福)은 삼가 발문을 씀.

 

 

↑현재 경주문화원으로 사용되고 있는 경주관아의 부속건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