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일본사(日本史)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야촌(1) 2012. 8. 18. 14:27

작성일 : 2012. 08. 18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국적] 일본

[생졸년] 1536(중종 31)

[생년] 1598(선조 31)

[이명] 히요시(日吉)

[출생지] 일본 오하리현(尼張縣)

[직업] 정치가. 무장

[관련인물] 오다 노부나가(織田信川),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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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정치가, 무장. 유명(幼名)은 히요시(日吉). 성은 처음 기노시다(木下), 뒤에 하시바(羽柴), 후일 도요토미(豊臣)로 개성했다. 오하리(尼張)에서 출생. 빈농가의 출신. 표박 생활 후 오다 노부나가(織田信川)를 섬기고, 68년 이래 두각을 나타냈다.

 

노부나가를 따라 각지의 정전(征戰)에 참가하고 노부나가가 죽은 후, 그 계승자로서 1585년 칸파쿠(關白), 1586년 다이죠(太政) 대신이 된 후, 1590년 호죠 오지마사(北條氏政) 토벌을 최후로 전국 통일을 완료했다.

 

그러나 통일이 확실해짐에 따라 그성격을 달리하여 신흥계급에서 떠난 후, 봉건제의 재편성에 착수, 농민의 상인화를 엄히 금지하고 상인을 압박하여 그 경제력을 빼았었다. 또 신분제도를 형성 하여 계급 제도를 엄히하고, 한편 제후를 억압하여 중앙 집권적인 근세 봉건사회의 확립에 노력, 제후의 무력 삭감을 위해 양차(92 ; 97)의 싸움을 일으켰다.

 

1592년(선조 25) 명나라를 친다는 이유로 조선을 공격, 이른바 임진왜란을 일으키는 장본인이 되어 스스로 큐슈(九州)에서 군대를 지휘하였다. 1593년(선조 26) 심유경(沈惟敬)과 코니시(小西行長)간의 강화가 성립되자 일단 군대를 철수하였으나 속은 것을 알고, 1597년(선조 30) 다시 조선에 침입, 병을 앓아 철병(撤兵)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