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곤은 문장(文章)으로 명성을 떨쳤으나 시(詩)에는 능하지 못하였다.
●장유(張維),
[생졸년] 1587년(선조 20)~1638년(인조 16)/ 덕수인(德水人)
지정(止亭) 남곤(南袞)은 한 시대에 문장으로 중한 명성을 떨쳤으나, 시에는 그다지 능하지를 못하였다.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의 개장(改葬) 만사(挽詞)로 그가 지은 장편시가 사람들에게 많이 일컬어지지만, 거기에도 잘못된 표현이 무척이나 많이 나오는데, 그중 하나의 예를 들면, “문장은 한 나라 장안(長安)시대요, 인물은 송나라 풍희 연간이다.[文章漢西京 人物宋豐煕]”고 한 것이 그것이다.
희녕(煕寧)과 원풍(元豐)을 합쳐서 희풍(煕豐)이라고 하는데도 희풍을 거꾸로 뒤집어 풍희라고 하였으니, 그것만으로도 이미 형편이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더구나 송조(宋朝)의 인물을 칭할 때에는 오직 경력(慶曆)과 원우(元祐) 연간만을 일컬을 따름이요, 희풍의 시대로 말하면 온 조정이 모두 왕안석(王安石)의 패거리로 채워져 있었던 때였다.
그래서 원우 연간에 희풍의 옛사람들을 지목하여 논하는 일이 있기까지 하였으니, ‘희풍의 인물’이라고 표현한 것이야말로 얼마나 잘못된 것이라고 하겠는가. 탁영에게 만약 영혼이 있어서 이런 사실을 안다면, 무함(誣陷)을 받았다고 한스러워 할 것이 분명하다. 이에 내가 부득불 분변해 두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