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물/조선시대 인물

정몽주와 김종직은 사문에 명성을 지니고 있으나 의아한 점이 있다

야촌(1) 2012. 8. 17. 00:56

■ 정몽주와 김종직은 사문에 명성을 지니고 있으나 의아한 점이 있다,

 

글 : 계곡(谿谷) 장유『張維,1587(선조 20)~1638(인조 16)』

 

●포은 정몽주(圃隱 鄭夢周)

우리 동방에 대유(大儒) 2분이 계시는데, 모두 사문(斯文)에 중한 명성을 지니고 있으나, 또한 무척이나 의아하게 여겨지는 면이 없지 않다.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는 죽음으로써 나라에 몸을 바칠 수 있으셨던 분이다.

그런데 우왕(禑王)과 창왕(昌王)이 폐위되고 죽음을 당할 때에는 절의(節義)를 제대로 세운 일이 있지 않았고, 심지어는 9공신(功臣)의 반열에 끼이기 까지 하였다. 이것이 의아하게 생각되는 첫 번째 일이다.

 

●점필재 김종직(佔畢齋 金宗直)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은 세조(世祖)의 밑에서 깍듯이 신하 노릇을 하였는데, 의제(義帝)를 조문하는 글을 지었으니, 이는 ‘높은 이의 잘못을 숨긴다.’ 는《춘추(春秋)》의 의리를 크게 범한 것이다. 대체로 볼 때,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면 세조의 조정에 몸담지 말아야 했을 것이요,

 

일단 그 조정에 들어섰으면 이런 글을 지어서는 안 되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마음과 행동이 모순되고 의리와 분수가 함께 무너지고 말았으니, 이것이 의아하게 생각되는 두 번째 일이다.

 

정몽주가 문묘(文廟)에 종향(從享)된 뒤로는 후학이 그 잘 잘못을 감히 다시는 거론하지를 못하고, 무오사화(戊午史禍)를 겪은 뒤로는 사람들이 또한 그 일을 논하려고 하지 않는데, 1.000년의 세월이 지난 뒤에 옛일을 논하면서 뭐라고 할런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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