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물/고려시대 인물

최항(崔沆)/고려 무신정권의 집권자

야촌(1) 2007. 7. 22. 23:46

■ 최항(崔沆)   

   [생졸년] : 1209년(희종 5)∼1257년(고종 44).   

 

고려무신정권의 집권자로. 본관은 우봉(牛峰). 초명은 최만전(崔萬全)이다.

증조부는 최원(崔元)이고, 조부는 최씨 무신정권을 시작한 최충헌(崔忠獻)이며, 아버지 최우(崔瑀)의 서자이다.

 

외조부는 사홍기(史洪紀)(이다.창기(娼妓) 서련방(瑞蓮房)의 소생으로 처음에 송광사(松廣寺)에서 중이 되어 선사(禪師)가 되었다가 쌍봉사(雙峰寺)로 옮긴 뒤, 무뢰승(無賴僧)을 모아 문도(門徒)를 삼고 식화(殖貨)를 일삼다가 1248년(고종 35)에 아버지의 병으로 환속하여 좌우위상호군‧ 호부상서가 되었으며, 아버지의 명으로 임익(任翊)으로부터 글을 배우고 권위(權韙)로부터 예(禮)를 익혔다.

 

뒤이어 추밀원지주사(樞密院知奏事)가 되고 아버지로 부터 가병(家兵) 500여인을 나누어 받았다.

이듬해 아버지가 죽자 그 뒤를 이어 정권을 잡고 은청광록대부 추밀원부사 이병부상서 어사대부태자빈객(銀靑光祿大夫樞密院副使吏兵部尙書御史大夫太子賓客)이 되고 동서북면병마사(東西北面兵馬使)를 겸하며 교정별감이 되었다.

 

특히, 시기심이 많아서 평소에 민심을 얻었던 지추밀원사 민희(閔曦), 추밀원부사 김경손(金慶孫)을 귀양 보내고 전 추밀원사 주숙(周肅)과 형부상서(刑部尙書) 박훤(朴暄)을 죽였다. 1251년 계모 대씨(大氏)를 과거의 사감(私憾)으로 독살하고 앞서 귀양 보냈던 김경손(金慶孫)을 죽였다.

 

집권 초기에는 각 지방의 별공(別貢)과 어량선세(魚梁船稅)를 면제하고 각 지방에서 가렴주구를 일삼던 교정도감의 수획원을 소환하고 그 임무를 안찰사에게 맡기는 등 인심을 얻기 위하여 노력하였으나 차츰 호사와 향락을 일삼으며, 비위에 거슬리는 사람들을 많이 죽였다.

 

몽고에 대한 정책으로는 몽고의 강화(江華)로부터의 출륙(出陸) 요구에 응하는 듯 보이기 위하여 1250년에 승천부(昇天府: 경기도 개풍)에 신궐(新闕)을 지었으나 1252년에 왕이 그곳에 가서 몽고의 사신을 만나려 하는 것을 굳이 반대하는 등 강경책을 썼다.  그 동안 왕이 문하시중을 삼고 진양 후(晉陽 侯)에 봉하려 하는 것을 사양하였으며, 1253년에도 문하시중 판이부어사대사(門下侍中判吏部御史臺事)를 삼았으나 또한 사양하였다.

 

1253년에 몽고의 야굴(也窟)이 대군을 이끌고 침입하였는데 이때 몽고군에 있던 종실 영녕공(永寧公) 준(綧)으로부터 태자나 왕자 안경공(安慶公) 창(淐)을 보내어 회군을 청하라는 권고의 글이 왔으나 이를 거부하였다.

 

그러나 몽고군이 전국을 유린하자 왕이 승천부의 신궐에 나가 몽고의 사신을 맞이함으로써 한때의 위기를 모면하였다.1254년에 왕이 부(府)를 열게 하였으나 이를 사양하였으며 뒤이어 중서령 감수국사가 되었다.1256년에 강민제세공신(康民濟世功臣)에 봉하여졌으며 죽은 뒤에 진평공(眞平公)에 추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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