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무(孫武) : BC 545경 - BC 470경 때의 장수
손자병법(孫子兵法)의 저자
↑손무(孫武)
↑손무(孫武)
제나라 출신(현재의 山東省)으로 성은 손(孫)이고 이름은 무(武}이다 생몰연대는 알 수 없으나 기원전 500년 전후의 사람으로 추측된다. 현존하는 병법서「손자(孫子)」의 저자로 알려졌으나 손빈(孫賓)의 저작이라는 설도 있다. 손무는 오(吳)왕 합려(闔閭) 밑에서 장수로 활동했다.
손무와 오왕의 여인들의 훈련에 관한 에피소드가 있다. 손자병법을 읽고 관심을 가진 오왕 합려가 손무를 불러 궁중 내 여인들을 훈련시켜 보라고 말했다. 손무는 궁중의 미녀 180명을 골라 두편으로 나누어 오왕이 총애하는 후궁 2명을 각 편의 대장으로 삼고「'좌로' 하면 왼쪽을 보고 '우로' 하면 오른쪽을 보라」고 명령을 내렸다. 군령을 받은 부녀자들은 큰소리로 웃어댈 뿐이었다.
손무는「병사가 군령이 서지 않는 것은 지휘관에 책임이 있다」고 말하고 재차 명령을 하달했으나, 여인들은 여전히 웃으며 움직이질 않았다. 「명령하달이 분명한데도 병사들이 움직이지 않는 것은 대장에게 책임이 있다」고 말하고, 좌우 대장을 참수해버렸다.
이후로 여인들은 대오를 갖춰 명령에 따라 움직였다. 군대를 중시했으며 "적과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百戰不殆)고 주장했다. 즉 적과 나의 상황을 파악하고 군사의 많고 적음, 강약(强弱)·허실(虛實)·공수(攻守)·진퇴(進退) 등의 형세를 잘 분석하여 적을 제압하면 승리를 얻는다는 것이다. 또한 전략전술을 활발하게 운용할 것을 주장했다.
그의 저서 〈손자병법>은 중국최초의 병서이다. 1972년 [山東省] 린이 현[臨沂縣] 인췌산[銀雀山]에 있던 한묘(漢墓)에서 죽간 〈손자병법〉 13편이 출토되었는데, 기본적으로 당시 통행되던 송본과 같다.
그 후 손무와 오자서는 힘을 합쳐 小國인 오나라를 강한 나라로 만들었고 중원 이북의 강국인 齊나라와 진(晉)나라를 넘보게 되었다. 그 공로로 출세하여 높은 관직에 이른 손무는, 성공한 후에 물러나지 않으면 화를 自招하게 된다고 말하고 돌연 관직을 버리고 은퇴해 버렸다.
손무의 말대로 남은 오자서는 합려의 아들 부차에게 자살을 요구받아 죽었다.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百戰不殆) 부지피이지기 일승일패(不知彼而知己 一勝一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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