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조선사(朝鮮史)

명성황후 시해 관련자들

야촌(1) 2012. 1. 20. 04:58

■ 명성황후 살해 관련자들

 

 

 

▲명성황후시해전날인 10월7일촬영한것으로 추정되는 한성순보사(비밀아지트) 앞에서  

    촬영한 사진!

 

일본인 들의 옷이 증명해주고 있다.

한성순보사의 책임자는 바로아다치겐조임!

 

이들 살인범들은 신문사11명, 순사 8명, 통역관 6명, 상업 5명, 농업 5명, 외교관 3명 겐요사[우익단체] 3명, 교원2명, 무직 2명, 의사 1명, 저술업 1명, 승려 1명으로 구성되었습니다. 당시 나이를 보면 50대 2명, 40대 9명, 30대 20명, 20대 16명, 10대 1명입니다.

 

출신지역은 구마모토 21명, 나가사키 4명, 가고시마 4명, 후쿠오카 4명, 도쿄 2명, 가니기와2명 와카타2명, 시가시마 2명, 지바구치1명, 나가자키1명, 이와테 1명입니다. 아래의 살인자들은 확실히 그 죄악이 나타난者들입니다.

 

그 외에 확인이 되는즉시 업데이트하겠습니다. 이들 중에는 미국 하버드대 출신도 있었고, 훗날 일본 정부의 각료나 중의원 등으로 정계에 진출한 사람도 있다. 이것은 을미사변이 ‘무지한 폭력배’들에 의해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일본의 조선 침략’이라는 커다란 밑그림 위에서 치밀하게 계획됐고, 극우 지식인들에 의해 실행된 작전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을미사변으로 재판에 회부됐던 일본인들은 모두 56명이었고, 이중에서 ‘민간 낭인’으로 분류된 자는 모두 32명. 특히 규슈 지방의 사족(士族) 출신이 많았다. 메이지유신 이래 정치적으로 소외돼 불평불만을 지닌 사람들이 조선과 중국 대륙으로 건너가 정치활동을 하려 했던 이른바 ‘대륙 낭인’의 전형적인 사례인 것으로 분석된다.

 

◇출처 : 기라성[블로그] 國家와 民族을 ♡하는 老宿者 입니다. [글쓴이]老宿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