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사 진기록(朝鮮史珍記錄)
●조선시대 가장 ‘간이 컸던’ 관리는?
조선 중기의 문신 정태화(鄭太和-602년(선조 35)∼1673년(현종 14). )로 인조 때 영의정에 오른 후 37번이나 사
직상소를 올린 전무 후무한 기록이다.
●가장 오래 재임한 임금은 ?
조선 21대 영조대왕으로 51년 7개월로서 반세기를 왕위를 지켰다.
●가장 많은 과거 합격자를 배출한 왕은?
문과, 무과, 사마시, 잡과를 포함할 경우 숙종때 가장 많은 합격자를 배출하였다
●가장 많은 합격자를 배출한 문과시험은?
◇1891년(고종 28) 신묘 증광문과로 무려 78명을 뽑았다.
◇1771년(영조 47) 신묘식년문과 74명
◇1880년(고종 17) 경진 증광문과 72명
●재임 기간이 가장 짧은 임금은?
조선의 제12대 인종으로 9개월이었다.
●가장 많은 부인을 둔 제왕은?
조선의 제3대 태종과, 제9대 성종으로 각 12명의 부인을 두었었다.
●아들을 가장 많이 둔 제왕은?
조선의 세종대왕으로, 18명이고, 다음은 성종으로 16명, 그 다음은 2대 정종이 15명이었다. 딸은 조선의 제
3대 태종(이방원)이 17명이고, 성종이 12명, 중종과 선조가 각 11명이다.
●최연소 무과 급제자는 ?
1457년(세조 3) 17세의 나이에 무과에 장원급제 하고, 1468년(예종 1)에는 약관 28세의 나이로 병조판서에
올랐던 남 이(南怡)는 유자광의 모함으로 주살 되었다.
남이(南怡 : 1441년(세종 23~1468년(세조 14)의 본관은 의령(宜寧)으로,태종과 원경왕후의 넷째 딸인 정선
공주(貞善公主)의 손자이기도 하다. 할아버지는 태종의 사위인 의산군(宜山君) 남휘(南暉)이고, 아버지는
군수 남빈(南份)이며, 어머니는 현감 홍여공(洪汝恭)의 딸이고, 부인은 좌의정 권람(權擥)의 딸이고, 사가정
(四佳亭) 서거정(徐居正-1420(세종 2) - 1488 (성종 19)과는 동서(同壻)간이다.
●최연소 문과 장원 급제자는?
17세의 박호(朴箎-1567년(선조 즉위)∼1592년(선조 25).)는 1584년(선조 17), 17세의 나이에 친시문과에 장원
급제 하였으나, 불행히도 임진왜란 때 26세로 순변사(巡邊使). 이일(李鎰)의 종사관(從事官)이 되어 상주에서
싸우다가 윤섬 (尹暹). 이경류(李慶流) 등과 함께 전사하였다.
●장원이 아닌 최연소 문과급제자
장원이 아닌 최 연소 문과 급제자는 1866년(고종 3년) 별시에서 병과(丙科) 3등으로 합격한 만 13세의 이건창
(李建昌)이었다.
●조선 최초의 문과와 최후의 문과는 언제 있었나?
◇최초문과 : 1393년(태조 2) 계유식년문과
◇최후문과 : 1894년(고종 31) 갑오식년문과
●가장 많은 합격자를 배출한 무과시험은?
◇1676년(숙종 2) 병진정시무과 17,652명
◇1637년(인조 15) 정축별시무과 5,506명
◇1620년(광해 12) 경신정시무과 5,000여명
●6형제 문과급제자는?
①.조선 인조때 원주원씨(原州元氏) 원해굉(元海宏)의 아들 6형제가 모두 문과급제했다.
長男 원집(元檝-1609년생), 次男 원식(元植-1611년생), 三男 원격(元格-1615년생), 四男 원적(元樀-1618
년생), 五男 원철(元철-1624년생), 六男 원절(元棁-1627년생).
②.세종조 전의이씨(全義李氏) 한성부윤(漢城府尹) 이사관(李士寬)의 여섯 아들중 장남은 무과급제하고 나므지
다섯 아들이 문과 급제 했다.
長男 이의장(李義長-무과급제). 次男 이예장[李禮長-1432년(세종 14) 式年試 同進士 14위]. 三男 이지장(李
智長-1434년(세종 16) 乙科二等 3위. 四男 이성장(李誠長). 五男 이효장[李孝長-1447년(세종 29) 式年試 丁
科10위]. 六男 이서장(李恕長-1457년(세조 3) 謁聖試 丁科) 2위.
[참조문헌] 견한잡록 1(遣閑雜錄1)/심수경(沈守慶) 著
③.조선 인조때 원주원씨(原州元氏) 원해굉(元海宏)의 아들 6형제가 모두 문과급제했다.
長男 원집(元檝-1609년생), 次男 원식(元植-1611년생), 三男 원격(元格-1615년생), 四男 원적(元樀-1618
년생), 五男 원철(元철-1624년생), 六男 원절(元棁-1627년생).
●가장 여러 대의 임금을 보좌한 사람은?
김세민(경주 김씨)은 태종, 세종, 문종, 단종, 세조, 예종, 성종까지 70년동안 봉직하면서 7대의 임금을 보좌하였
다.
●병조판서를 최연소로 역임한 인물은?
권람의 사위인 남이(南怡)는 27세에 병조판서가 되었다. 그러나 후일 역모의 누명을 쓰고 처형되었다
●최연소로 세자에 책봉된 인물은?
영조의 아들 사도세자는 2세에 세자책봉 되었으나 그만 뒤주 속에 갇혀 죽는 비운의 주인공이 되었다.
사도세자는 10세에 결혼하여 최연소 결혼기록도 가지고 있다.
●최연소로 영의정이 된 인물은?
세종대왕의 손자인 구성군 이준(임영대군의 아들)은 28세 때 영의정에 특서(特敍-특별히 벼슬자리를 내림) 되었
다.
●이조판서를 가장 많이 역임한 사람은?
42세에 이조판서가 된 박종덕(반남 박씨)으로 무려 18번이나 이조판서에 올랐다.
관료들의 인사권을 쥐고 있는 관직으로서 임금의 절대적인 신임이 있어야 하는 만큼 그는 공평한 인사에 최선을
다한 인물이다.
●과거 급제 후 판서가 되기까지 가장 오래 걸린 인물은?
관료들의 최고령 기록을 갖고 있는 기천(岐川) 윤경(尹絅-1567년(명종 22)∼1664년(현종 5)은 30세에 급제하
여 90세가 되는 60년 만에 공조판서가 되는 유일 무이한 진기록을 갖고 있다.
90이 될 때까지 인내하고 자기 관리를 하며 버텨낸그의 집념과 불굴의 의지는 인간승리의 전형을 보여준 예라
하겠다. 그는 98세까지 살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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