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학/선현들의 묘.

우의정 김석주 부자(父子) 묘(右議政 金錫胄父子墓)

야촌(1) 2011. 10. 12. 03:53

 

 

 ↑우의정 김석주 묘(右議政 金錫胄 墓)

 

   원래 묘(墓)는 경기도 광주시 남종면 귀여 2리 산75-31(제청마을)에 있었으나 2009년 경기도 남양주시 상패동

   청풍김씨 문의공파 종중산으로 이장 하였다.  

 

 

↑우의정 김석주 묘(右議政 金錫胄 墓)

 

●김석주(金錫胄) 

   [생졸년] 1634년(인조 12) ~ 1684년(숙종 10)    

   [문   과] 현종(顯宗) 3년(1662) 임인(壬寅) 증광시(增廣試) 갑과(甲科) 1[장원(壯元)]위,/ 합격연령 : 2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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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사백(斯百), 호는 식암(息庵).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증조부는 김흥우(金興宇), 조부는 영의정 육(堉)이고, 아버지는 병조판서 좌명(佐明)이고, 어머니는 도총관 신익성(申翊聖-영의정 신흠의 아들)의 따님 평산신씨(平山申氏)이다.

 

공의 초배(初配)는 우의정 이후원(李厚源-광평대군 7대손)의 따님 전주이씨로 후사(後嗣)는 없고, 계배(繼配)는 부윤 황일호(黃一皓)의 따님 창원황씨(昌原黃氏)이다.

 

김석주(金錫胄)는 영돈령 부사 김우명(金佑明)의 딸인 현종 비 명성왕후(明聖王后, 1642~1683)는 김석주(金錫胄)의 사촌 누이로서 그는 명성왕후를 배경으로 하여 1682년 우의정에 이르기 까지 항상 권력의 중심에 서 있었다. 

 

 

↑우의정 김석주의  외아들 정랑 김도연(正郞 金道淵)의 묘.  

 

↑정랑 김도연(正郞 金道淵)의 묘 후경.

 

●김도연(金道淵)

   [생원진사시] 숙종(肅宗) 7년(1681) 신유(辛酉) 식년시(式年試) 생원 3등(三等) 57위/합격연령 : 18歲.

 

남양주시 삼패동에 있는 호조정랑(戶曹正郎) 김도연『金道淵,1664년(현종 5)~1689년(金道淵숙종 15)』의 묘이다. 본관은 청풍(淸風)이고 아버지는 의정부 우의정을 지낸 문충공 식암(息庵) 김석주『金錫胄,1634년(인조 12)~1684년(숙종 10)』이다,

 

조부는 병조판서를 지낸 충숙공 귀계(歸溪) 김좌명『金佐明,1616년년(광해군 8)~1671년(현종 12)』이고, 증조부는 의정부 영의정을 지낸 문정공 잠곡 김육『金堉,1580년(선조 13)~1658년(효종 9)』이다. 

 

공은 중종조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와 함께 활동한 문의공 사서 김식『金湜,1482(성종 13)~1520(중종 15)』의 7대손이며 현종의 국구 청풍부원군 충익공 김우명『1金佑明,619년(광해군 11)~1675년(숙종 1)』의 종손이다.

 

어머니는 창원황씨(昌原黄氏)로 충렬공 지소(芝所) 황일호『黃一皓,1588년(선조 21)~1641년(인조 19)』의 딸이며 공은 외아들이다. 부인은 동래정씨로 의정부 영의정을 지낸 충익공 (陽坡) 정태화(鄭太和)의 손녀이며 효종의 부마인 동평위 익효공 죽헌 정재륜(鄭載崙, 1648~1723)의 딸이다.  

 

외아들이었던 공은 후사를 두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는데 조카뻘 되는 김성하가 계자가 되어 가계를 이었다. 왕실의 외척으로 막강한 권력을 지니고 있던 가문에서 태어난 김도연은 문과에 장원 급제하였던 부친의 영향을 받아 18세의 어린 나이로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음보로 관직에 나갔다. 

 

혼인도 문익공 수부 정광필(鄭光弼,1462~1538)의 후손으로 대대로 높은 벼슬을 하였던 집안과 하면서 앞날은 창창해 보였다. 하지만 부친이 세상을 떠나고 얼마 후 남인이 집권하면서 김석주가 삭탈관직당하여 가문의 세는 급격히 기울어 졌으며 결국 어머니와 함께 유배길에 오르게 되었는데 이때 그는 26세의 나이로 자결을 택하여 생을 마감하였다.

 

왕실의 외척이자 권세가의 아들로 태어난 김도연은 치열한 당쟁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지 못하고 자결로 안타깝게 생을 마감하였던 인물이다. 묘소는 광주시 남종면에서 삼패동으로 이장된 부친의 묘소 아래쪽에 자리 잡고 있다. 

 

그가 양주 금촌에 안장되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쪽으로 이장된 것으로 보이며 후손들의 노력으로 묘역은 매우 단정하다. 묘표에 부인 동래정씨에 대한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부인은 다른 곳에 안장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고 봉분 전방으로는 묘표와 혼유석, 상석, 향로석이 차례로 놓여 있다.

 

봉분 좌우에는 망주석과 문인석이 한 쌍씩 배치되어 있는데 특히 문인석은 17-18세기 것으로 보이며 굉장히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다. 앞면에는 朝鮮國通訓大夫行戶曺正郞金道淵之墓 라고 적혀 있어 호조정랑을 지낸 김도연의 것임을 알 수 있고 부인과 합장하기 위해 우측을 비워두고 좌측에 글씨를 새겨 놓은 듯 보인다.

 

묘표는 皇明崇禎甲申後五十二年乙亥七月(1695년 7월)에 세워졌고 뒷면에는 해서로 된 간단한 음기(陰記)가 새겨져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