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물/조선시대 인물

김노응(金魯應)

야촌(1) 2011. 8. 16. 04:32

■ 김노응(金魯應)

     [생졸년] 1757 (영조 33) - 1824 (순조 24)

    [문과] 순조(純祖) 5년(1805) 을축(乙丑) 정시(庭試) 을과(乙科) 1위

   [생원진사시] 정조(正祖) 10년(1786) 병오(丙午) 식년시(式年試) 진사 3등(三等) 66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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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7년(영조 33)∼1824년(순조 24).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 자는 유일(唯一), 호는 일와(一窩). 영의정흥경(興慶)의 증손이며, 문화현령태주(泰柱)의 아들이다.

 

1786년(정조 10) 진사시에 합격하여 1796년 별시문과에 응시하였으나 글자 한 자가 빠졌다고 하여 낙방되고 말았다.

그 뒤 헌릉참봉을 제수 받았다가, 곧 전생서직장· 활인서별제· 사헌부감찰 등을 역임하였다.

 

장악원주부로 있으면서 1805년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 병조좌랑· 정언· 지평 등을 거쳐 1807년 사복시정· 응교를 지내고, 동지사서장관(冬至使書狀官)으로 연경에 다녀왔다.

 

1808년 황해도암행어사로 지방관의 탐학을 제거하고자 노력하였고, 1811년 대사성이 되었다가 곧 경주부윤이 되었다. 그해 평안도에서 홍경래(洪景來)의 난이 일어나자 병사를 징발하여 대비시켰다.

 

동래부사· 경상도관찰사· 지중추부사· 형조판서 등을 거쳐서, 1812년 한성부판윤에 이어 병조판서 겸 동지성균관사에 이르러 병으로 은퇴하였다. 평소 효행과 우애가 돈독하고 검소하였으며, 경사(經史)를 널리 섭렵하였다. 《중용》을 좋아하였고, 역대의 사실이나 조선의 전고(典故)에도 밝았다. 시호는 정헌(正獻)이다.

 

[참고문헌]

◇純祖實錄 ◇國朝榜目 ◇雲石遺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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