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경주이씨 명인록

이이장(李爾長)

야촌(1) 2011. 7. 24. 00:26

■ 28世 이이장(李爾長) 

    [생졸년] 1642년(인조 20)∼1727년(영조 3).

   [세 계] 평리성암공파 후 세촌공(細村公)  문좌(文佐)의 6代孫.  예천출신

 

조선 중기의 유학자. 자는 수구(秀久)이고, 호는 나재(懶齋)이다.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출신지는 경상북도 예천군(禮泉郡)이다. 부친 장원서별제(掌院署別提) 이규영(李奎英)과 모친 한겸윤(韓謙允)의 딸 청주한씨(淸州韓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세 번이나 향시에 합격하였으나 회시(會試)에 실패한 후 세상에 나가 영달하여 명성을 얻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오직 자신을 수양하는 학문에 힘썼다. 경사(經史)를 탐독하며 자제들의 교육에 힘쓰고, 효성과 우애로써 집안을 다스리며 함부로 교유하거나 권세를 좇는 일이 없었다.

 

1667년(현종 8)에 원근의 사림들과 뜻을 모아 인산서원(仁山書院)을 세우고 학문을 연구하며 후학을 양성하였다. 후에 수직(壽職)으로 절충장군용양위부호군(折衝將軍龍驤衛副護軍)의 직첩을 받았다. 향년 86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였다. 저서로 1956년 후손이 석인본으로 간행한 《나재집(懶齋集)》이 있다.

------------------------------------------------------------------------------------------------------------------------------------

■ 나재집(懶齋集) - 이이장(李爾長) 著

 

《나재집(懶齋集)》은 조선 중기의 학자인 이이장(李爾長)의 시문집이다. 권두에 권상규(權相圭)의 서문과 권말에 후손 이규호(李圭虎)의 발문이 있다. 이 책은 1956년에 후손 익현(益鉉), 종현(從鉉), 규호(圭虎)등이 편집, 2권 1책. 석인본으로 간행하였다.

 

권1. 2에 시(詩) 104수, 만사 21수, 설 1편, 묘갈명 2편, 상량문 2편, 부록에는 시(詩) 2수와 행장. 묘갈명 각 1편, 제문 4편, 가장(家狀). 상량문 각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詩)는 청아하면서도 고답적이고 교훈적인 것이 많다. 「성선(性善)」,「독중용(讀中庸)」,「송대학(誦大學)」등은 학문을 연구하는 사이사이에 느끼고 깨달은 깊은 이치와 기쁨을 시(詩)로 읊은 것이다.

 

「계자손(戒子孫)」,「시아(示兒)」,「송여아(送女兒)」등은 자손들을 경계하는 내용으로 언어(言語)를 삼가고 행동을 조심하며 여론에 동화되어 처신을 저버리는 일이 없도록 할 것과 시부모에게 효도하고 친척간에 화목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우음(偶吟)」,「효음(曉吟)」,「만흥(漫興)」,「청야음(淸夜吟)」,「동지음(冬至吟)」등은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주위의 모습들을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 「행화(杏花)」,「상화(賞花)」,「봉(鳳)」등은 화조(花鳥)에 대하여 읊은 것으로 꽃을 감상하는 데에도 남다른 조예가 있었음을 엿보게 한다.

 

「장안사완경(長安寺玩景)」,「표훈사(表訓寺)」,「구룡연(九龍淵)」,「만물봉(萬物峰)」등은 금강산의 절경을 잘 묘사한 것이다. 「난재설(懶齋說)」은 자기의 사상과 목표를 설명한 것으로 천성이 어리석고 게을러서 쓸모가 없기 때문에 나재(懶齋)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겸양하면서 장래의 희망이 학문을 대성하여 후진을 지도하는데 있음을 밝히고 있다.

 

이밖에도 인산서원의 강당을 새로 짓게 된 동기와 주위의 경관 및 그 유래를 담은 「인산서원 강당상량문(仁山書院講堂上樑文)」이 있다. 아버지는 장원서별제(掌院署別提) 규영(奎英)이며, 어머니는 청주한씨로 선무랑 겸윤(謙允)의 딸이다.

 

세 번이나 향시(鄕試)에 합격하였으나 회시(會試)를 치르지 않고 오직 위기(爲己)하는 학문에 힘썼다. 1667년(현종 8)에 사림들과 뜻을 모아 인산서원(仁山書院)을 세우고 학문을 연구하며 후학을 지도하였다. 뒤에 수직(壽職)으로 절충장군용양위부호군(折衝將軍龍?衛副護軍)의 직첩이 내렸다.

 

필자 소장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