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경주이씨 명인록

이봉수(李鳳壽) - 평리성암공파

야촌(1) 2011. 10. 29. 02:17

■이봉수(李鳳壽)

 

1573년(선조 6)∼1634년(인조 12). 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덕로(德老), 호(號)는 석계(石溪), 아버지는 호가 춘와(春窩)로 호조참판(戶曹參判-從二品)에 추증된 동명(東明)이고 어머니는 장수황씨(長水黃氏) 경서(慶瑞)의 따님이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을 성웅으로 만든 7명의 영웅들이 있었다.

석계 이봉수(石溪 李鳳壽) 장군이 그중 한분이다. 석계 이봉수 장군은 어렸을 적부터 활을 쏘고 말을 타며 또 병법인 팔진법을 이미 숙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스무 살 초의 나이에 이순신을 찾아가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왜군을 무찌르는 계책을 알림으로 전란에 참여하게 되었고, 화약(염초=질산)을 제조하는 기술을 발휘하여 화포로서 왜선을 제압할 수 있었다.

 

또한 중요한 나룻 터에 철쇄를 비치하고 높은 봉우리에 망대를 설치하였으며, 강강수월래 전략 등으로 옥포(玉浦), 당포(唐浦), 석포(石浦), 사량포(蛇梁浦) 등지의 해전에서 연달아 왜적을 무찔러 공을 세웠다.

 

그후 판관에 임명되고, 뒤에 선무원종훈(宣武原從勳)에 책록 되었다.

 

1634년 62세의 나이로 졸하니 이듬해 형조참판(刑曹參判-從二品)에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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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1. 묘소의 소재지

   원래 묘소는 전남 장흥군 장평면 와곡에 있었는데, 장흥군 행정당국이 2004년 주변 40만평이 넘는 27홀짜리 장

   평골프장 인허가를 내면서 부득히 전남 보성군 조성면 은곡리 사초마을 선영으로 이장하여, 매년 음력 10월 15

  일 후손 이상익(H.P : 061-857-9347) 종친께서 제향을 모시고 있다.

 

2. 과거 급제에 대하여

   과거 급제시기에 대하여 보첩에는 무과 등과 내용만 기록되 있고, 시기는 기록이 없다. 『호남절의록』에는 임진

   왜란 이후인 계묘년(癸卯年, 1603)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1603년(선조 36) 식년시(式年試) 방목에 이름은 보이

   지 않는다.  앞으로 고정이 요하는 대목이다.

 

3. 석계공(石溪公)의 세계도(世系圖)

    16世 평리성암공 인정(仁挺) →17世 헌납공 규(樛) →18世 검교공 의반(依班) → 19世 병부랑공 신문(藎

    文) → 20世 호부랑공 효순(孝純) → 21世 애일당공 천석(天錫) → 22世 생원공 현(玄) → 23世 첨지공 산

    포(山浦) → 24世 경은공 극평(克平) → 25世 생원공 형창(亨昌) → 26世 보한당 욱(郁) → 27世 춘와공

    동명(東明) → 28世 석계공 봉수(鳳壽) 

 

 글쓴이 : 李在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