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世 이중협(李重協)
[세 계] 국당공 후 정순공파
[생몰년] 1681년(숙종 7)~?
[문과] 숙종(肅宗) 39년(1713) 계사(癸巳) 증광시(增廣試) 갑과(甲科) 2위/합격연령 33歲
[생원진사시] 숙종(肅宗) 31년(1705) 을유(乙酉) 식년시(式年試) 생원 3등(三等) 58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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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화중(和仲). 호는 삼호당(三湖堂), 정언(正言-正六品) 익(瀷)의 증손으로, 병(炳)의 아들이다. 1713년(숙종 39) 증광문과에 갑과 2위로 급제하였다.
1715년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正六品)을 거쳐, 1717년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正五品)에 오르고, 동지사(冬至使) 유명웅(兪命雄)을 따라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718년 경종(景宗-조선 제20대왕)의 비 단의빈 심씨(端懿嬪沈氏)가 죽자 대전(大殿)인 숙종(肅宗-조선 제19대왕)의 며느리에 대한 복상이 부장기(不杖朞)로 결정되자, 대공복(大功服)으로 해야 한다는 소를 올렸으나 채택되지 않았다.
1719년 흉년을 당하여 기민을 구제하기 위해 정부에서 공명첩(空名帖)을 발행하는 것을 중지하라고 상소하였다. 1722년(경종 2)이후 사간원사간(司諫院司諫-從三品)· 홍문관수찬(弘文館修撰-正六品)· 승문원교리(承文院 校理-正·從五品)등을 역임하였는데, 대간의 도리를 지키지 않는다 하여 의금부(義禁府)에 갇혔다가 석방되더니 해남으로 귀양가고 다시 경원(慶源)으로 이배되었다.
1728년(영조 4)승지를 거쳐 1736년 강원도관찰사(江原道觀察使-從二品)를 역임하였으며, 1745년 대사간(大司諫-正三品))· 공조참판(工曹參判-從二品)을 거쳐 도승지(都承旨-正三品)가 되었다.
● 승지공 이중협선생 간찰(承旨公 李重協先生 簡札)
간찰(簡札)이란? 간지(簡紙-두껍고 품질이 좋은 편지지)에 쓴 편지를 말함.
삼호당 이중협 간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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