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경주이씨 명인록

이경주(李擎柱) - 국당공후 제정공파

야촌(1) 2011. 4. 15. 22:19

■ 이경주(李擎柱)

 

   [세   계] 국당공후 제정공파/24世

   [생졸년] 1500년(연산군 6)∼1597년(선조 30).

   [저  서] 《효렴재유집(孝廉齋遺集)》/1919년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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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기의 성리학자로 자(字)는 석초(石楚), 호(號)는 효렴재(孝廉齋) 이다. 그의 관향은 경주(慶州)이고, 고려 밀직부사대제학검교정승(密直副使大提學檢校政丞) 세기(世基)의 八代孫이요. 제정공(霽亭公) 달충(達衷)의 6대손으로, 경상남도 산청군(山淸郡) 차황면 우사리에서 낙정(樂正) 이완종(李完從)의 네째(막내) 아들로 . 태어났다.. 산청군 차황면 우사리에서 세거 하였디/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학문을 좋아했고, 경전(經典)을 두루 익히고, 성년이 되어서는 동산사(東山寺)· 쌍계사(雙溪寺) 등에 들어가 독서에 매진하였다. 1549년(명종 4)에는 학고재(學古齋)를 세우고, 학문 연구에 전념하였고, 벽에는 ‘주부자유상(朱夫子遺像)’을 붙여 놓고, 《근사록(近思錄)》·《성리대전(性理大全)》·《심경(心經)》 등 성리학 서적들을 두루 탐독했다.

 

1562년(명종 17) 그의 나이 63세때, 연풍현감(延豊縣監=오늘날 충주시 수안보면)에 제수되었지만, 부임 3개월 만에 사임하고 귀향하였다. 이후 오덕계(吳德溪)와 교유하며 학문을 토론하고, 몽와(蒙窩)를 세워 후학을 양성하는 일에 전념했다. 저서로 1919년 후손들이 간행한 《효렴재유집(孝廉齋遺集)》 3권 1책이 있다.

 

[참고문헌]

◇孝廉齋遺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