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선조문집

기봉집(麒峰集) - 이시성(李時省)의 시문집

야촌(1) 2011. 3. 27. 12:43

 

 

 

 

 

 

 

 

 

 

 

■ 기봉집(騏峰集)

 

   발행사항 : 刊寫地未詳 /芸閣 1802년(순조 2)

   형태사항 : 4卷2冊:b四周雙邊 半郭 21.3 x 14.0 cm, 有界, 10行20字, 上下向白魚尾 : 크기 29.5 x 19.0 cm

   주기사항 : 序: 上之十九年乙卯(正祖 19, 1795)...李敬一刊記: 壬戌(1802)五月下浣芸閣活印

 

기봉집(騏峰集)은 金屬活字本(芸閣印書體字)으로 인출한 조선 중기의 문신 이시성(李時省)의 시문집으로 4권 2책 완질본으로 1802년(순조 2) 후손 이기환(箕煥)이 유고를 수집, 金屬活字本(後期芸閣印書體字)으로 간행하였다

 

권두에 필서체 목판서문 上之十九年乙卯(1795년 正祖 19) 李敬一 謹書, 권말에 壬戌(1802) 五月下浣芸閣活印의 간판기가 있다. 권1∼3에 각체의 詩 467수, 권4에 서(序)·기·설·서(書)·논·책(策)각 1편씩 실려 있고, 권말에 부록으로 묘갈 1편과 만사 13편이 수록되어 있다.

 

권4의 「귀신자이기지양능설(鬼神者二氣之良能說)」은 장재(張載)의 귀신 설을 근거로 귀신은 다른 것이 아니라 음양과 천지의 조화에 불과하며, 천지만물의 이치는 곧 음양의 쇠함과 성함임을 밝히고 있다.

 

「두예향유낙중귀요론(杜預餉遺洛中貴要論)」은 두예(杜預)의 충성과 지혜를 논한 것이고, 「요새방비책(要塞防備策)」은 국방에 관한 정책을 기술한 내용으로, 지세보다 인재의 등용과 인화가 요체임을 강조한 것이며, 논책(論策)은 과거의 시책(試策)인 설(雪)·매(梅)·역(易)에 대한 논책을 수록한 것이다.

 

본 책은 약간의 외형적인 부분 손상과 얼룩 등이 있으나 본문 인쇄 상태 선명하고 온전하다. <크기> 18×28.5cm


[저자 소개]
이시성(李時省), 1598년(선조 31)∼1668년(현종 9).
조선 후기의 경기도 포천 출신의 문신으로,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자삼(子三), 호는 기봉(麒峰).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의 종손(從孫)으로, 부(父)는 이태남(李泰男), 조부(祖父)는 이광복(李光福)이다.

 

1650년(孝宗 1)에 증광시(增廣試) 병과(丙科) 18위로 합격하였다. 어려서 백사에게 나아가 수업하였으며, 만년에 문과(文科)에 뽑혔고 중시(重試)에 합격하였다. 관직이 회양부사(淮陽府使)에 이르렀다. 천성이 담박(淡泊)하였으며 술 마시고 시(詩) 짓는 것을 스스로 좋아했다. 71세로 세상을 떠났다.

 

 

 

 

 

 

 

 

 

 

 

 

 

■ 기봉집 서(麒峰集 序)

 

내가 칠.팔세 때부터 우리 일가에 옛날 문장의 선비 기봉공(麒峰公) 이 있었음을 익히 들었노라.

 

공이 소시로부터 공거업(公擧業)에 힘썻으나 본디 장구(章句)를 표절하여, 문법에만 분칠하고 도식함을 일삼지 않고 경서(經書)와 사기(史紀)를 널리 연구하여 침참히고 농후(濃厚)케 하였으니이른바 축적하기는 많이 하고 발노함은 적게한 자로다.

 

일찌기 들으니 공이 젊어서 산사에 들어가 범수전(范誰傳)을 만번이나 읽고, 동구에 나오매 산천초목(山川草木)이 다 범수전 같다 하였으니, 그 공부하는 성근(性根)을 여기에서 상상할수 있다.

 

발휘(發揮)하여 큰 책문(策文)을 지으매 종횡하는 논리가 삼천자를 이루되, 조리 분명하여 가히 읽을만 하였다.

이러므로 여러번 발해(發解)에 장원하여 당시 공령가(功令家)들의 전송(傳誦)하는바 되었다

 

다른 시문도 또한 사우(士友)간에 칭송 되었으나 벼슬이 현달치 못하고, 세속 사람들에게는 추대하는 바 되지 못하여 약간의 남긴 문자가 우금것 흩어져 좀먹고 거미줄 솎에 매몰 하였으니 참으로 애석한 일이로다.

 

이제 그 후손 기환등이 공의 시와 문 두어책을 갖고 나에게 보이며 말하되, 우리 선조의 저술이 풍부하여 이정도 일뿐 아니로되 후손된 자 모두 환란에 분골하여, 문학으로 가정을 잇지 못하고 다만 이같은 쇠잔한 시편 원고가 명곡 최정승(明谷 崔政丞)이 감정한 것이라 이제서로 재물을 모아 간행 한다며 나에게 청하여 그 순수한 뜻을 요약하여 책 머리에 글을 쓰게 하는 것이다.

 

내가 받아 읽어보니 문장이 참으로 깊고 넓고 섬부하고 해박하며, 시도 또한 말이 통달하고 이치에 명창 하였다. 

공의 마저지공(磨杵之工)은 문구만 아로새겨 사람들의 이목에, 빛나게 하는 자와는 비겨 보면 연월(燕越)의 차이가 있을 뿐 아니다.

 

어찌 반듯이 비단과 풍악 같은 문채만 구하리요 하물며, 이미 최정승의 감수를 받았으니 최정승(崔政丞)은 근래 문장의 대가라, 나는 또한 붓대를 놓을 지로다.

 

公의 휘(諱)는 시성(時省)이니 우리 백사선조(白沙先祖)의 재종손이다

소시에 백사선생에게 수업하고 늦게 효종(孝宗) 경인년(庚寅年) 증광문과(增廣文科)에 급제(及第)하여, 벼슬은 겨우 배옥에 이르렀고, 선세부터 포천 마산에 살았으니 호(號)를 기봉(麒峰)이라 하였다 한다.

 

上之 十九年 乙卯 仲冬 同宗後仁 嘉善大夫 禮曹參判 鰲恩君 敬一 謹書

(1795년(정조 19) 동짓달 같은파의 후인 가선대부 예조참판 오은군 경일 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