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세 첨지중추부사 이숭수(僉知中樞府事 李崇壽)
1425년(세종 7)~1489년(성종 20) 때의 조선의 문신. 상서(尙書) 이과(李薖)의 현손 으로 자는 미수(眉叟) 초휘(初諱)는 옥견(玉堅) 훗날 숭수(崇壽)로 개명(改名)하였고, 관향은 경주(慶州)이다, 그는 공조참판(工曹參判) 연손(延孫)의 장자인데, 어머니는 파평윤씨(波平尹氏) 판중추원사(判中樞院事) 윤번(尹璠)의 딸로. 세조비 정희왕후(貞熹王后)의 동생이다.
공은 자품이 엄위하여 도량 넓고 두터웠다. 공(公)은 음직으로 사헌부(司憲府) 감찰(監察-正六品). 돈령부(敦寧府) 첨정(僉正-正三品堂下官)을 지냈고 성종때에 특별히 첨추(僉樞)를 제수하였다.
양주조씨 문내(楊洲趙氏 門內)가 세조 에게 참화(慘禍)를 입으니 사위가 되시는 공은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있으니 이모부가 되는 세조(世祖)가 公을 불렀으나 나아가지 않고 있으니 후에 성종(成宗)의 특명으로 절충장군(浙衝將軍)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에 승진 하였다.
1489년(성종 20) 7월 6일에 향년 65세로 졸하니. 자헌대부(資憲大夫). 이조판서(吏曹判書) 겸 오위도총부도총관(五衛都摠府都摠管-正二品)에 증직 되었다.
↑21世 첨지중추부사 증 이조판서 휘 이숭수의 묘/공조참판 이연손의 장자이다.
↑이 묘지 표석은 포천시 내촌면 첨추공 묘지 앞 우측에 본관을 한양조씨로 불리었을 때, 운곡 이광좌선생께
서 좌의정으로 있을 때, 손수 쓴 묘지 표석이다(조선국 첨지중추 이공 숭수, 배 증 숙부인 한양 조 씨지 묘라
고 쓰여 있다)
↑이 표석은 계유정란으로 인하여 관향을 한양조씨로 바꿨다가 훗날 다시 양주 조 씨로 바로 잡은 증 정부인
양주 조 씨 묘 표석이다. 이 묘역은 2010년 11월 후손들이 묘지를 새로이 개수한 후의 모습이다.
↑소재지 : 경기도 포천시 내촌면 진목리 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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