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경주이씨 명인록

이상언(李尙彦) - 재정공파

야촌(1) 2011. 3. 6. 21:40

■ 28世 이상언(李尙彦)

 

   [세계] 성오당 이개립의 손자.

   [생졸년] 1597(선조 30)∼1666(현종 7).

   [문과] 인조(仁祖) 26년(1648) 무자(戊子) 정시(庭試) 을과(乙科) 1위 /합격연령-52歲

   [생원진사시] 인조(仁祖) 11년(1633) 계유(癸酉) 증광시(增廣試) 진사 3등(三等) 14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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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용수(溶叟), 호는 성서(城西). 아버지는 휘음(徽音)이며,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로 두문(斗文)의 딸이다.


할아버지인 증 병조참판 개립(介立)에게 수학하였으며, 1624년(인조 2) 도산서원(陶山書院)에 들어가 학문연마에 매진하였고, 1633년 진사과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들어갔다. 1637년 병자호란이 일어나고 뒤에 화의가 성립되자 벼슬에의 뜻을 단념하고 고향에 돌아가 지냈다.

 

1648년 다시 정시문과(庭試文科)에 을과로 급제하여 이듬해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正六品)에 제수되었고, 그뒤 성균관사예(成均館司藝-正四品).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正四品). 병조정랑(兵曹正郞-正五品). 등을 역임하고 정선군수(旌善郡守-從四品)를 거쳐 1654년(효종 5). 영광군수(靈光郡守-從四品), 1656년 다시 성균관직강(成均館直講-正五品)에 임명된 뒤 안악군수(安岳郡守-從四品)·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正六品)을 역임하였고, 2년 뒤 다시 지방으로 내려가 영암군수(靈巖郡守-從四品)가 되었다.


외직에 있을 때에는 선정으로 송덕비(頌德碑)가 세워지기도 하였다. 다음해 사헌부집의(司憲府執義-從三品)로 재직하다가 1661년(현종 2) 사직하고 고향에 내려가 후진들을 교육시키며 김응조(金應祖)·조임도(趙任道) 등과 산수를 유람하면서 세사를 잊고 지냈다.

 

그 뒤 1664년 함안군수(咸安郡守-從四品)에 임명되어 재직하다가 1년 후 병으로 인하여 사직하고 고향에 돌아가 다음해에 죽었다. 저서로는 《성서문집(城西文集》6권 3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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