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경주이씨 명인록

이시발(李時發)/28世

야촌(1) 2011. 2. 7. 16:03

■이시발『李時發, 1569년(선조 2)∼1626년(인조 4)』

 

1569년(선조 2)∼1626년(인조 4).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양구(養久), 호는 벽오(碧梧) 또는 후영어은(後潁漁隱). 아버지는 진사 대건(大建)이며, 어머니는 안동김씨(安東金氏)로 도(燾)의 딸이다.

 

공(公)은 이덕윤(李德胤)의 문인으로, 6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1589년(선조 22)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承文院-正三品衙門)에 등용되었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낙상지(駱尙志)가 인솔하는 명나라 군대가 경주에 주둔하여 있을 때 접반관(接伴官)으로 임명되었고, 도체찰사(都體察使) 유성룡(柳成龍)의 종사관(從事官-從六品)으로 활약하였다.

 

그 뒤 전적(典籍-正六品)· 정언(正言-正六品)· 사서(司書-正六品)를 역임하였다. 1594년 병조좌랑(兵曹佐郞-正六品)에 재직중 명나라 유격장(遊擊將) 진운홍(陳雲鴻)을 따라 적장 고니시(小西行長)의 군영을 방문하여 정탐의 임무를 수행하였고, 이듬해 병조정랑(兵曹正郞-正五品)으로 승진하여 순무어사(巡撫御史)를 겸임하였다.

 

1596년 이몽학(李夢鶴)이 홍산(鴻山-지금의 부여)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그를 토벌하는 데 전공을 세워 난이 평정된 뒤 장악원정(掌樂院正-正三品)으로 승진하였다. 그해 겨울 찬획사(贊劃使)로 임명되어 충주의 덕주산성(德周山城)을 쌓고, 또 조령에 방책(防栅)을 설치하였다.

 

1597년 정유재란 때에는 분조(分朝)의 호조참의(戶曹參議-正三品)가 되어 명나라 원병의 군량미보급을 관장하였다. 1602년 경상도관찰사(慶尙道觀察使-從二品)로 임명되어 4년간 선정을 베풀었으며, 1604년 형조참판(刑曹參判-從二品)을 지내고, 이듬해 함경도관찰사(咸鏡道觀察使-從二品)가 되어 포루(砲樓)와 성곽을 수축하고 그해 가을에 예조와 병조(兵曹)의 참판(參判-從二品)을 역임하였다.

 

폐모론이 일어나자 이에 반대하였다가 양사의 탄핵을 받아 사직하였으며, 1619년(광해군 11) 다시 광해군(光海君)의 특명으로 오도참획사로 임명되어 다음해 평안도에 가서 민폐를 크게 고치고 둔전(屯田)을 설치하여 군량을 충족하게 하였다.

 

이때 만호(萬戶) 변일(邊溢)이 청병(淸兵=오랑캐)의 기병(騎兵) 백여 명이 성(城)을 침입하자 이를 막지 않고, 곧 바로 성(城)을 버리고 도망하였기에, 공(公)이 그를 붙잡아다 참(斬)하였다.

 

그런데 변일(邊溢)은 바로 왕실의 인척(姻戚)이었으므로, 광해군이 크게 노한 나머지 글을 내려 공을 절박하게 책망하면서 변명하는 것도 허용하지 않고 그 책임을 묻자 신병을 칭탁(稱託)하고사직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이 일어나자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正二品)에 등용되었고, 이어 형조판서(刑曹判書-正二品))에 올랐으며, 이듬해 이괄(李适)의 난 때 체찰부사(體察副使)로 난의 수습에 공을 세웠다.

 

그뒤 삼남도검찰사(三南道檢察使)가 되어 남한산성의 역사(役事)를 감독하였다.저서로 《주변록(籌邊錄)》·《벽오유고(碧梧先生遺稿)》《기유일록(己酉日錄)》가 있다. 영의정(領議政-正一品)에 추증되고, 시호는 충익(忠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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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오 이시발 간찰

 

간찰탈초

 

令前 拜謝上狀 / 어르신 앞으로 절을 하면서 감사한 마음으로 글을 올립니다.

安東 大衙史 (手決)謹封 / 안동 대아사(수결) 삼가 봉해서 올립니다.

謹承戊午二月九日 / 삼가 무오(1618) 2월 9일의 새해 문안을 받으니 우러러 위로가 되고 감격스러운 마음입니다.

令歲問 仰慰且感 僕謹得添齒 / 저는 삼가 나이를 한 살 더 먹었습니다.

寄示正氣錄 開編想像,

先世 爲之一涕而已 伏惟 / 보내주신{정기록}은 책을 펴서 선세를 상상해 보니 그것 때문에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令鑑 謹拜上狀 時發 頓 / 저는 염감을 생각하면서 삼가 절을 하면서 글을 올립니다. 시발이 머리를 조아립니다.

 

<탈초자 : 단표누항>    / 譯註 : 이상훈

 

 

↑벽오 이시발 선생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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