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경주이씨 명인록

이회근(李晦根)

야촌(1) 2011. 2. 6. 19:53

■ 수백당 이회근(守白堂 李晦根)

 

   [생졸년] 1728(정조 4 ~ 1809(순조 9

   [진사시] 영조(英祖) 30년(1754) 갑술(甲戌) 증광시(增廣試) [진사] 3등(三等) 16위(46/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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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인(慶州人) 이회근(李晦根)은 고령군 개진면 양전동에서 아버지 사유(思遊)공과 어머니 언양(彦陽)김씨 사이의 4남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자(字)는 현보(顯甫)이고 호(號)는 수백당(守白堂)으로, 어려서 부터 총명하여 나이 10세때 사서삼경(四書三經)과 백가시서(百家詩書)까지 읽고 특히 주역(周易)에 통달하였으며 12세 때, 의춘(宜春: 지금의 경남의령) 현감 [양노운(養老韻)]을 즉석에서 저술하기도 했다.


 공(公)은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 청천(靑泉) 신유한(申維翰) 밑에서 지촌(芝村) 박이곤(朴履坤)과 더불어 수학을 했으며 27세 때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여 임금의 부름을 받아 영조(英祖)대왕 어전에서 시를 읊으니 대왕은 안(案, 탁자)를 치면서 경탄하여 말하기를 「너는 몇 번이나 초시(初試)에 합격했느냐」 물으니 선생이 답하기를 「네번 연달아 합격 하였사옵니다.」하니 대왕은 더욱 놀라며 말하기를 「너야말로 정말 수재로다.

 

참 재주를 지닌 자로다」하고 극구 칭찬하면서 선생의 조상에 대한 내력을 일일이 묻고는 「관녀작인(觀汝作人)」 「후필득대과(後必得大科)」라 하였으니 즉 「너의 사람됨을 보니 두에 반드시 큰 과거를 얻게 될 것이다」하니 옆에 있던 승지신(承旨臣) 한광회(韓光會)도 역시 칭찬했다는 기록이 있다.


고령으로 내려온 선생은 시서와 후배 양성에 힘써 문하에는 향리석사(鄕里碩士)가 많이 배출되었으며 당시 고령현감 김수묵(金守默), 김계한(金啓漢), 임제원(林濟遠), 이상정(李象鼎), 민사응(閔師膺) 제현과 같이 사귀고 최흥벽(崔興壁), 박문국(朴文國), 곽세한(郭世翰) 제현과 같이 지은 남귀창수록(南歸唱酬錄)은 귀중한 시집으로 공이 지은 수백당유집(守白堂遺集)과 휘옥책(彙玉冊)과 함께 후손들에 의해 전해 내려오고 있으며 구암(久菴) 윤봉구, 석문(石門) 윤봉오(尹鳳五) 대감과 더불어 합천 해인사 흥류동에 새긴 석면시(石面詩)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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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백당(守白堂) 이회근(李晦根)의 교유인사(交遊人士)

 

●구암(久菴) 윤봉구(尹鳳九-坡平人). 1681년(숙종 7)∼1767년(영조 43). 공조판서 역임. 저서《병계집》

 

●청천(靑泉) 신유한(申維翰-寧海人) 1681년(숙종 7)∼1752년(영조 28). 《해유록》·《청천집》·《분충서난

    록(奮忠紓難錄)》

 

●석문(石門) 윤봉오(尹鳳五-坡平人). 1688년(숙종 14)∼1769년(영조 45). 판서 윤봉구(鳳九)의 아우. 대사

    헌, 판돈령부사 역임. 저서《석문집》8권이 있다.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韓山人) 1711년(숙종 37)~1781(정조 5).《대산집(大山集)》. 안동 고산서원(高山

    書院) 제향(祭享)됨.

 

●고령현감 김수묵(金守默-淸風人), 1723년(경종 3)

 

●수백당(守白堂) 이회근(李晦根-慶州人) 1728(정조 4)-1809(순조 9). 《수백당유집(守白堂遺集)》.《휘옥책

    (彙玉冊)》

 

●지촌(芝村) 박이곤(朴履坤-高靈人) 1730년(영조 6)∼1783년(정조 7). 《정서유요(程書類要)》.《주서유요

    (朱書類要)》.《근사석의(近思釋義)》.《지촌집(芝村集-1933년 간행)

 

●낙와(樂窩) 곽세한(郭世翰-玄風人). 1736 (영조 12) - 1820 (순조 20). 거(居) 고령군 쌍림면 월막리. 저서《묵

    헌집(默軒集)》

 

●임제원(林濟遠-羅州人), 1737년(영조 13)∼미상. 영남 지방 안핵어사, 고령현감· 대사간(大司諫)· 병조참판

    을 역임.

 

●김계한(金啓漢-江陵人)  1742년~미상. 高靈縣監역임.

 

●민사응(閔師膺-驪興人) 1750년 ~1821년. 高靈縣監 역임.

 

●최흥벽(崔興壁),辛丑生癸巳 12月 3日졸

 

●유학(幼學) 박문국(朴文國-高靈人), 진사 박경가(朴慶家)의 아버지. 거(居)-고령군 쌍림면 하거리. 저서 《송

    집(松泉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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