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선세자료

사미정 이구선생 신도비(四美亭李龜先生神道碑)

야촌(1) 2011. 2. 12. 19:09

17世 이 구(李  龜)

 

[생졸년] 1469년(예종 1) ~ 1526년(중종 21) / 향년58세

[세계] 익재공후 사미정공 파조

[문과] 성종(成宗) 23년(1492) 임자(壬子) 식년시(式年試) 병과(丙科) 2위
[생원진사시] 성종(成宗) 17년(1486) 병오(丙午) 식년시(式年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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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本貫)은 경주(慶州).  자(字)는 자장(子長), 호(號)는  사미정(四美亭), 고려 익재 제현(益齋 齊賢)의 7대손이며, 창평현령(昌平縣令) 공린(公麟)의 둘째 아들로, 어머니는 박팽년(朴彭年)의 딸이다. 조선 초기의 문신이다.

 

1492년(성종 23)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 예빈시직장, 예조좌랑(禮曹佐郞-正六品), 고성현감(固城縣監-從六品), 면천군수(沔川郡守-從四品)등을 역임 하였다.

 

무오사화 갑자사화때, 아우 재사당 원(再思堂  黿)이 점필재 김종직(佔畢齋 金宗直)의 문인으로 화(禍)를 당하는 것에 연좌되어 강원도 홍천으로 유배 되었다. 중종 반정으로 신원되어 이조좌랑(吏曹佐郞-正六品), 호조정랑(戶曹正郞-正五品),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正五品), 정언(正言-正六品), 교리(校理-正·從五品), 수찬(修撰-正六品), 응교(應敎-正四品)등을 역임하고, 충주(忠州), 홍주(洪州), 상주목사(尙州牧使-正三品), 이후 장례원판결사(掌隷院判決事-正三品)가 되었으나 병을 이유로 사직하고 홍천 결은리(洪川 決隱里)에서 은거 하였다.

그 뒤 향리에 정자 사미정(四美亭)을 짓고 청절하게 지냈다.

 

 

 

 

↑掌隷院判決事四美亭李龜先生神道碑(1977년 10월 17일 종회에서 세웠다)

 

 

↑掌隷院判決事四美亭李龜先生神道碑 後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