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학/질의답변

거칠부가 경주이씨인 이유

야촌(1) 2010. 12. 27. 19:29

거칠부가 경주이씨인 이유
 
《북한산 진흥왕순수비》.《창령비(昌寧碑)》.《마운령비(磨雲嶺碑)》에 기록된 거칠부의 기록 훼(喙) 거칠부지(居七夫智) 일척간(一尺干)  사훼(沙喙) 거사부지(居社夫智) 이간(伊干)  사훼(沙喙) 심표부지(心表夫智) 급척간(及尺干)  사훼부(沙喙部) 령력지(령力智)  간( 干) 촌주(村主) 마질지(麻叱智) 술간(述干)  본부(本部) 가량지(加良知) 소사(小舍) 이상 표시한 것처럼 성(姓)은 없고 우리말로 된 이름 뒤에 그 사람의 본(本)이라 할 수 있는 소속부명 또는 촌명을 썼는데, 훼부(喙部)는 량부(梁部) 즉, 알천 양산촌(閼川楊山村)이요,


사훼부(沙喙部)는 급량부(及梁部) 즉, 돌산고허촌(突山高墟村)이요.
본부(本部)는 본피부(本彼部) 즉, 취산진지촌(觜山珍支村)을 말하는 것이다.
 
이름 밑에 붙어 있는 지(智)· 지(知)는 존칭이오,
일척간(一尺干)·이간(伊干)· 간(干)·대아간(大阿干)·내말(奈末)·대사(大舍)·소사(小舍)는 경위(京位) 즉 중앙관직이요,
간( 干)·일벌(一伐)은 외위(外位) 즉 지방인에게 주는 관직이다.
 
1000년이 지난 후, 고려 말에 풍문으로 기록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기록한 바와 같이 유리왕 때에 6부에 사성한 것이 사실이라면, 훼부(喙部)는 이씨(李氏), 사부(沙部)는 최씨(崔氏), 본피부(本彼部)는 정씨(鄭氏)의 성을 써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유리왕 때 사성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성을 쓰지 않고 소속 부명과 이름만 쓴 것을 보면 6부의 사성(賜姓)은 진평왕 이후의 일일 것이며, 또 우리는 성보다 본을 먼저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대사회로 올라갈수록 계급이나 골품에 따라 거주지가 확실히 구분되며, 향 소 부곡처럼 같은 계급의 같은 동일집단이 일정거주지에 거주하였음이 명백하다
 
훼부(喙部)는 량부(梁部) 즉, 알천 양산촌(閼川楊山村)이니 여기출신인 거칠부가 경주이씨 임이 분명하다.
 
글쓴이 : 이민희 中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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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1)이이우
내 물 마립간은 김알지의 후손으로 미추왕의 아들이고 거칠부(居柒夫)는 내 물 마립간의 5대손으로 진흥왕과 항렬이 같은 것으로 보입니다. 훼부(喙部)는 량부(梁部) 즉 알천 양산촌(閼川楊山村). 사훼부(沙喙部)는 급량부(及梁部) 즉 돌산고허촌(突山高墟村)을 말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훼(喙) 거칠부지(居七夫智) 일척간(一尺干)]에서 ‘거칠부(居七夫)’는 ‘거칠부(居柒夫)’ 와 한자가 같지 않는데도 같은 인물인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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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이상훈
훼부는 양부 즉 알천 양산촌이 맞습니다. 하지만 신라초기의 육촌이 육부로 재편되고 나서 신라 왕경의 범위가 축소되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즉 진한의 육촌은 오늘날 경주시 전역인 반면 신라의 왕경의 육부는 오는 날 경주 시내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또한 훼부에는 박 씨족들이 살았고, 사훼부에는 김 씨족이 살았다고도 합니다. 학자들 마다 견해를 조금씩 달리하는 것 같습니다.
거칠부가 우리 경주이씨의 조상이면 자랑스러운 일이지만 내 물 마립간의 5대손이라고 한다면 경주김씨의 조상이 되는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