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물/고려시대 인물

조간(趙簡) - 고려후기 문신

야촌(1) 2010. 12. 25. 18:59

■ 조간(趙簡)

   [고려문과] 충렬왕(忠烈王) 5년(1279) 기묘(己卯) 충렬왕 5년 기묘방(己卯榜)    

 

고려 후기인 충렬왕(忠烈王)-충숙왕(忠肅王) 때의 문신. 본관은 김제(金堤). 1279년(충렬왕 5)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서적점녹사(書籍店錄事)에 보임되었고, 이듬해 왕이 문신들에게 시부(詩賦)를 시험할 때 또 수석을 차지하였으므로 황패(黃牌)를 받고 내시(內侍)에 소속되었다.

 

1288년에 국학직강(國學直講)으로 왕명에 의하여 새로운 악곡을 작곡하기도 하였다. 벼슬이 점차 올라 보궐(補闕)이 되었을때 아버지의 상을 당하여 3년간 시묘하자, 왕이 이를 가상하게 여겨 기거주(起居注)로 특진시켰고,

다시 첨의사인(僉議舍人)으로서 경상안렴사(慶尙按廉使)에 보임되었다.

 

1298년에는 좌사의(左司議)로 과거를 주관한 바 있고, 1300년 좌부승지로서 동지공거(同知貢擧: 부고시관)가 되어 진사를 뽑았다.

 

그뒤 좌간의·좌승지를 거쳐 우상시권수밀직부사(右常侍權授密直副使)에 올랐다. 충선왕 때 형조시랑우간의대부(刑曹侍郞右諫議大夫)를 거쳐 밀직부사가 되었으며, 충숙왕 때 검교첨의평리(檢校僉議評理)를 역임한 뒤 찬성사에 올라 죽었다.

 

고려검교정승 임해군 시 문정 경주이공 진(高麗檢校政丞 臨海君 諡 文定慶州李公 瑱 : 익재 이제현의 아버지)과 함께 문과급제자로서 그의 묘지명을 지었다.  시문에 뛰어나 조선 영조 때 유광익(柳光翼)의 《풍암집화 風巖輯話》에도 수록되어 있다.

    

[참고문헌]

◇高麗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