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물/고려시대 인물

문공유(文公裕)/고려 의종때의 문신이며 필예가(筆藝家)

야촌(1) 2010. 8. 14. 19:36

■ 문공유(文公裕)

  [생졸년] 미상∼1159년(의종 13).

  [고려문과] 예종(睿宗) 7년(1112) 임진(壬辰) 예종 7년 임진방(睿宗 七年 壬辰榜)

-------------------------------------------------------------------------------------------------------------------------------------

고려인종 때의 문신으로, 본관은 남평(南平). 개명(改名)은 고수(顧壽), 자는 항적(亢迪)으로, 우산기상시(右散騎常侍)익(翼)의 아들이고 공인(公仁)· 공원(公元)과 조계종대선사(曹溪宗大禪師) 가관(可觀)의 동생이며, 김국진(金國珍)·민수(閔脩)·김원석(金元碩)·김장(金璋)은 매제이다. 한안인(韓安仁)의 사위로 극겸(克謙)·극순(克純)·극이(克易)는 아들이다.

1104년(숙종 9) 한림학사정문(鄭文) 주관하의 남성시(南省試)에 합격하고, 1112년(예종 7) 오연총(吳延寵)· 임언(林彦)주관하의 문과에 급제하였다. 인종이 즉위하여 이자겸(李資謙)이 집권하게 되자 그와 맞섰던 장인 한안인이 죽게 되었으며, 이어 합문지후(閤門祗候)로서 형인 공인 및 정극영(鄭克永)· 이영(李永)· 임원준(任元濬) 등과 함께 유배되었다.

이자겸이 몰락한 뒤인 1127년(인종 5) 합문지후에 복직되고 1129년 금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다.

1133년 형인 공인과는 대조적으로 시어사로서 직문하성(直門下省)이중(李仲)과 함께, 묘청과  백수한(白壽翰)을 성인(聖人)으로 삼고 천거한 근신(近臣) 김안(金安)· 정지상(鄭知常)· 이중부(李仲孚)와 환자(宦者) 유개(庾開) 및 이들을 추종한 대신들을 배척하라고 요청하였다가 충주목부사로 좌천되었다.

묘청의 난이 진압된 뒤 충의(忠義)로서 탁용되어 호부낭중 동궁시독사 지제고(戶部郞中東宮侍讀事知制誥)가 되었다.

1147년(의종 1) 지어사대사로서 우정언정지원(鄭知源)과 함께 시사(時事)를 간언하였으며, 이듬해 서북면병마사 시우산기상시(西北面兵馬使試右散騎常侍), 1149년 보문각학사 시형부상서(寶文閣學士試刑部尙書), 이듬해 예부상서, 1152년 형부상서·병부상서를 역임하였다.

글씨에 능하였으며 주로 문한직을 역임하였다. 

작품으로는 〈묘향산보현사창사비명 妙香山普賢寺創寺碑銘〉과 음기(陰記)가 있다. 시호는 경정(敬靖)이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韓國金石文追補(李蘭映編, 亞細亞文化社, 1976)
 ◇高麗前期 文班과 武班의 身分問題(朴龍雲, 韓國史硏究 21·22合輯, 1979)
 ◇高麗時代土姓硏究 上(李樹健, 亞細亞學報 12, 1976)

'■ 인물 > 고려시대 인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간(趙簡) - 고려후기 문신  (0) 2010.12.25
민족의 자존심, 이제현  (0) 2010.10.08
고려왕기(∥)  (0) 2010.06.12
고려왕기(ㅣ)  (0) 2010.06.09
우현보(禹玄寶 : 1333~1400)  (0) 2010.0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