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경주이씨 명인록

이호우(李鎬雨)

야촌(1) 2010. 9. 2. 18:22

■ 이호우(李鎬雨)

     [생졸년] 1912년∼1970년

 

시조시인. 본관은 경주(慶州). 아호는 본명에서 취음하여 이호우(爾豪愚)라 하였다. 경상북도 청도 출신으로, 아버지는 종수(鐘洙), 어머니는 구봉래(具鳳來)이며, 누이동생 영도(永道)도 시조시인이다. 향리의 의명학당(義明學堂)을 거쳐 밀양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4년 경성제1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으나, 1928년 신경쇠약증세로 낙향하였다.


1929년 일본 동경예술대학에 유학하였으나 신경쇠약증세 재발과 위장병으로 학업을 포기하고 다음해 귀국하였다.
1934년에는 김해김씨 순남(順南)과 혼인하였다. 광복 후 《대구일보》 편집과 경영에 참여한 것을 시작으로 1952년 대구일보 문화부장·논설위원 등을 지냈고, 1956년에는 대구매일신문 편집국장 및 논설위원을 지냈으며, 한편으로는 시작활동을 하여 지방문화 창달에 공적을 남기기도 하였다.


시작활동은 1939년 《동아일보》 투고란에 〈낙엽 落葉〉을 발표하면서부터 시작되었으며, 1940년 《문장 文章》 6·7호 합병호에 시조 〈달밤〉이 이병기(李秉岐)의 추천을 받음으로써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작품집으로는 첫 시조집 《이호우시조집 爾豪愚時調集》이 1955년 영웅출판사(英雄出版社)에서 간행되었다.

 

이어 누이동생 영도와 함께 낸 시조집 《비가 오고 바람이 붑니다》 중의 1권인 《휴화산 休火山》(1968)을 발간하여 화제를 모으기도 하였다. 이것은 《이호우시조집》 이후의 작품들을 모아 엮은 시조집이다. 그의 시조관은 《이호우시조집》 후기에 잘 나타나 있다.

 

그는 여기서 한 민족, 한 국가에는 반드시 그 민족의 호흡인 국민시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시조에서 찾아야 한다고 밝히면서, 국민시는 간결한 형(型)과 서민적이고 주변적이며 평명(平明)한 내용을 갖추어야 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태도는 그의 작품에 잘 반영되어 있다.


추천작품 〈달밤〉에는 이러한 점이 잘 나타나고 있는데 “아무 억지도, 꾸밈도, 구김도 없다.”는 선자(選者)의 말과도 같이 범상적인 제재를 선택하여 평이하게 쓴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범상적 제재와 평이성이 초기시조의 세계라면, 후기시조 《휴화산》의 시편들은 인간욕정의 승화와 안주적 경지를 보인 점이 특색이다.


한마디로 한국의 고전적 시조를 현대감각이나 생활정서로 전환시켜 독특한 시적 경지를 개척한 것이 시조시단에 남긴 공적이라 할 수 있다. 1972년 대구 남산공원에 시비가 세워졌다. 1955년 첫 작품집인 《이호우시조집》으로 제1회경북문화상을 수상한 바 있다. 편저로 《고금시조정해 古今時調精解》가 있다.

 

[참고문헌]

◇이호우論(金濟鉉, 現代文學, 1970. 3.)

◇李鎬雨論(金允植, 現代詩學, 1970. 8.)

◇爾豪愚論(韓春燮, 時調文學, 1976. 12.)

◇定型에의 鄕愁와 逸脫(金昌完, 韓國現代詩文學大系 22, 知識産業社, 19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