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경주이씨 명인록

이하영(李夏榮) - 백사공파

야촌(1) 2010. 9. 2. 17:00

■ 35世 이하영(李夏榮)

     [생졸년] 1858년(철종 9) 8월 10일 ∼ 1919년 3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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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字)는 치행(致行), 호(號)는 금산(琹山)이다.

이하영(李夏榮)은 1858년 8월 15일 경상남도(慶尙南道) 동래군(현 부산광역시(釜山廣域市)에서 증 내부대신(贈內部大臣)에 추증된 이유수(李裕脩)와 서수성(徐秀誠)의 딸 서산 서씨(瑞山徐氏)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동생 이준영(李準榮)은 관찰사를 지냈으며 국문학자로 이름을 날려 가세를 일으켰고, 장손 이종찬(李鐘贊)은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과 국방부장관을 역임했다.

1886년(고종 23) 외아문주사(外衙門主事), 이듬해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正六品)· 전환국위원(典圜局委員)이 되었다.

이해 9월 박정양(朴定陽)공사의 일행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겸임주차미국공사관 서기관이 되고, 다시 주차미국서리전권대신으로 미국에 주재하였다.

1889년 귀국할 때는 우리나라 철도건설에 관심을 보인 미국정부로부터 철도의 모형을 얻어오기도 하였다. 이어 기기국사사(機器局司事), 웅천· 흥덕의 현감(縣監-從六品), 외아문참의 등을 거쳐 1895년 궁내부회계원장(宮內府會計院長)이 되었다.

이듬해 한성부관찰사(漢城府觀察使-從二品)가 되었다가 주차일본국특명전권공사, 1897년 주차일본국특명전권대사로 일본에 주재중 일본정부로부터 훈1등욱일대수장(勳一等旭日大綬章)을 받았다.

그뒤 중추원부의장·귀족원경(貴族院卿)· 중추원의장 등을 역임하고, 1899년에는 의정부찬정· 주차일본국특명전권공사 겸 의정부찬정이 되었다. 이듬해 훈2등태극장(勳二等太極章)을 받았다.

1904년에 외부대신이 되었는데, 재임기간 동안 일본에 충청· 황해· 평안도의 어로권 부여, 일본의 황무지개척권요구, 제1차한일협약, 메가다(目賀田種太郞)의 재정고문 취임, 일본헌병대의 경성치안권 장악, 마루야마(丸山重俊)의 경무고문 취임, 일본에 통신원 이양, 연해하천의 항해무역권 부여 등 각종 이권을 일본에 넘겨주었다.

1905년에는 훈1등8괘장(勳一等八卦章)을 받고 법부대신·형법교정총재가 되어 을사조약에는 반대의사를 표하였으나, 정치적으로는 계속 친일의 입장에 섰다.

1907년 중추원고문이 되었고, 한·일병합 후에는 일본정부로부터 자작의 작위를 받고 조선총독부 중추원고문을 지냈다.

그리고 1919년 우리나라 최초로 대륙 고무주식회사를 설립 고무산업의 신기원을 이룩햇다.

 

[참고문헌]

◇承政院日記 ◇日省錄 ◇官報 ◇大韓帝國官人履歷書 ◇大韓季年史 ◇梅泉野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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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영(李夏榮)의 가계도는 본 블로그 메뉴방 경주이씨 세계도 자료중 백사 이항복 세계도(白沙李恒福世界圖)에 들어가면 보실수 있습니다.

 

○ 세계 : 백사 이항복의 10대손

○ 출생지 : 경상도 기장현(현 부산광역시 기장군)

○ 사망지 : 경성부

○ 아버지 : 이유수(李裕脩, 증 내부대신(贈內部大臣)에 추증.

○ 어머니 : 서산 서씨(瑞山徐氏)

○ 형 : 이근영(李根榮) *군수(郡守)역임.

○ 동생 : 이준영(李準榮)은 관찰사, 국문학자

○ 배(配) : 강릉최씨(江陵崔氏)

○ 장자(長子) : 이규삼(李圭三)은 삼촌 이준영(李準榮)의 양자로 출계

○ 둘째 아들 : 이규원(李圭元)

○ 손자 : 이종찬(李鐘贊), 대한민국 창군 주역, 육군참모총장 역임/국방부장관/제9대. 제10대 유정회국회의원 역임.

○ 외조부 : 서수성(徐秀誠)

 

 

이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