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경주이씨 명인록

이종적(李宗迪) - 백사 이항복의 현손

야촌(1) 2010. 8. 28. 21:02

30世 이종적(李宗迪)

 

   [생졸년] 1710년(숙종 36)∼1748년(영조 24).

   [문과] 영조(英祖) 12년(1736) 병진(丙辰) 정시2(庭試) 을과(乙科) 2위
   [생원진사시] 영조(英祖) 9년(1733) 계축(癸丑) 식년시(式年試) 3등(三等) 65위
   [생원진사시] 영조(英祖) 9년(1733) 계축(癸丑) 식년시(式年試) 1등(一等) 1[장원(壯元)]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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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字)는 자순(子順), 호(號)는 송계(松溪)이다.
이항복(李恒福)의 5대손으로, 정좌(鼎佐)의 아들이고 영의정(領議政) 종성(宗城)의 아우이다. 일찍이 경사(經史)에 통하고, 문장이 세련되고 우아하여 세상에 알려졌다.

1736년(영조 12)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고, 이듬해 예문관검열(藝文館檢閱 : 正九品) 이 되어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 설서(說書 : 正7品))를 겸직, 1740년 후 승문원교리(承文院 校理)· 홍문관수찬(弘文館修撰 : 正6品) 으로 세자시강원문학을 겸직하였다.

1744년 상주목사((尙州牧使) : 正3品)) , 이어 대사간(大司諫)· 승정원승지(承政院承旨)· 성균관대사성(成均館大司成 : 正三品 堂上官)  등을 역임하였다. 그리고 대과에 급제하여,  다음날 영조(英祖)를 따라 문묘에 배행하여 임금의 언행 수만언(數萬言)을 기록하여 그의 사재(史才)를 인정받게 되었다. 영조(英祖)의 탕평론에는 따르지 않았다.

 

[참고문헌]

◇英祖實錄   ◇國朝榜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