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世 이종준(李宗準)
[생졸년] 1454년(세조 元年) ∼ 1499년(연산군 5).
[문 과] 성종(成宗) 16년(1485) 을사(乙巳) 별시(別試) 일등(一等) 2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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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의 문신이며 학자로. 본관은 경주(慶州). 자(字)는 중균(仲鈞), 호(號)는 용재(慵齋)· 용헌(慵軒)· 부휴자(浮休子)· 상우당(尙友堂)· 태정일민(太庭逸民)· 장육거사(藏六居士)이다.
안동 출신으로 대사헌(大司憲 : 從二品) 승직(繩直)의 손자이며, 생원(生員) 시민(時敏) 아들이고, 진사(進士) 홍준(弘準)의 형이다.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으로 1485년(성종 16) 별시문과에 1등 3인으로 급제하고, 의성현령(義城縣令 : 從五品)으로 있으면서 〈경상도지도>를 만들었다.
1493년에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正五品) 이 되었고, 서장관(書狀官 : 임시직)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당시 그는 풍류로 명성이 있어 일본호송관 또는 북평사(北評事 : 正六品) 등의 직책에 임명되었고, 의정부사인(議政府舍人 : 正四品)에 이르렀다.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 때 김종직의 문인으로 몰려서 함경도부령(富寧)으로 귀양가는 도중에 단천군 마곡역을 지나다가, 송나라이사중(李師中)이 바른말 하다 귀양가는 당개(唐介)를 송별하면서 지은 시(詩) 한 수를 써놓고 갔는데, 함경도관찰사(咸鏡道觀察使) 이승건(李承健 : 牛峰李氏)이 이는 나라를 비방하고 왕을 기롱(譏弄)한 것이라고 조정에 고하여, 연산군은 그가 원망하는 뜻을 가졌다 하여 서울로 압송, 국문 도중 죽었다.
홍귀달(洪貴達)이 그를 구하려 하였으나 실패하였으며. 사후 부제학(副提學 : 正三品)) 으로 추증되고, 안동의 경광서원(鏡光書院)· 백록리사(栢麓里祠)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용재유고》가 있다. 시(詩)· 서(書)· 화(畵)에 능하였고, 그림은 매(梅)· 죽(竹)을 잘 그렸다고 하나 전하는 유작은 없다. 현재 장식화풍으로 그려진〈송학도 松鶴圖〉(국립중앙박물관 소장) 1점이 그의 전칭작품으로 전하고 있다.
[참고문헌]
◇燕山君日記 ◇燃藜室記述 ◇國朝榜目 ◇慵齋遺稿 ◇槿域書畵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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