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경주이씨 명인록

이종백(李宗白)

야촌(1) 2010. 8. 28. 00:26

■ 30世 이종백(李宗白)

 

  [생졸년] 1699년(숙종 25)∼1759년(영조 35).

  [문과] 경종(景宗) 3년(1723) 계묘(癸卯) 증광시(增廣試) 병과(丙科) 9위
  [생원진사시] 경종(景宗) 1년(1721) 신축(辛丑) 식년시(式年試) 3등(三等) 56위
  [생원진사시] 경종(景宗) 1년(1721) 신축(辛丑) 식년시(式年試) 2등(二等) 4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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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字)는 태소(太素), 호(號)는 목천(牧川). 관찰사형좌(衡佐)의 아들이다. 1721년(경종 1) 사마시에 합격하고, 1723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듬해 설서(說書) 가 되고 교리· 부수찬· 헌납· 집의 등 청환직을 역임하였다.
1728년(영조 4)한림· 기사관을 거쳐, 이듬해 정언· 검토관· 수찬을, 1731년 이조정랑· 부교리 등을 지냈다.

1732년 영남어사, 1733년 응교를, 1734년 사간· 교리 등을 거쳤다.
1737년 대사간· 승지를 거쳐, 1738년 대사성에 이어 광주부윤(廣州府尹)으로 나갔으며, 이듬해 대사헌이 되었다.

1740년 이조참의를 거쳐, 1741년 병조참지, 1749년 평안도관찰사로 파견되었다.
1751년 이조참판에 이어, 1752년 함경도관찰사(咸鏡道觀察使)· 호조참판(戶曹參判)을 역임하였다.
 

1754년 형조판서(刑曹判書)로 동지부사가 되어 청나라에 다녀왔으며, 내의원제조와 공조(工曹判書)· 호조(戶曹判書) · 이조판서( 吏曹判書)등을 역임하였다.

1756년 경기감사(京畿道觀察使)에 이어 형조판서(刑曹判書)가 되었다. 시호는 정민(貞敏)이다. 

 

[참고문헌]

『영조실록(英祖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사마방목(司馬榜目)』

『청선고(淸選考)』

『이계집(耳溪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