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집성촌·입향조

제17대 이명박 대통령의 선대고향은 경북 청송

야촌(1) 2010. 8. 11. 01:58

■ 제17대 이명박 대통령의 선대고향은 경북 청송

 

청송군 지역이 이명박 대통령의 선대 고향으로 알려지면서 정자와 묘소 등에 세인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청송군 안덕면 문거리 양지바른 산언덕 아래 있는 고풍스러운 정자 추모재(追慕齋)는 정면 4칸 측면 2.5칸의 목조와가 팔작지붕 정자로, 경주이씨 청송입향조의 후손 송와공(松窩公) 이종윤(李從允)을 추모하고 그 학식을 후손들에게 훈육하기 위해 1900년에 건립됐다.

 

청송에는 추모재 외에도 당선인의 선대와 관련한 문화유적이 여럿 있다.

안덕면과 현동면 일대에 선대의 묘소가 있다. 안덕면 복리 화연산에는 입향조 이정견, 함창공 이형의 묘소가 있다.

 

안덕면 문거리 문거산에는 송와공을 비롯한 5대의 묘소가 있다.

또 이대통령의 12대조 괴정공 이성립(李成立)의 묘소는 현동면 도평리 오도산에 있다.

이들 묘소에는 최근 풍수가들의 발걸음이 잦다.

 

또 선대의 발자취를 보기 위해 후손들이 찾고 있고, 길손들도 대통령을 탄생시킨 문중의 터를 보기 위해 추모재 등지를 찾고 있다. 경주이씨 청송 입향 시기는 14세기 중엽 고려 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후 누대를 살다가 17세기 중엽 경주로 이거하기까지 약 300년간 청송지방에서 살았다.

경주이씨 청송입향조는 월성군 이정견(李廷堅)으로, 공민왕 23년 문과에 급제하여 첨서밀직사를 지냈다.

 

그는 성리학에 밝아 고려 말 삼은의 한 사람인 포은 정몽주와 교유하였다.

입향조의 아들 함창공 이형(李衡)은 정몽주에게 수학하였으며, 함창현감을 지냈다.

그러나 포은의 순절과 혼란한 시절에 염증을 느껴 벼슬을 버리고 청송 보현산 아래 은거했다.

 

경주이씨가 청송 입향 이래 가문을 가장 빛낸 인물은 입향조의 손자 송와공 이종윤이다.

일찍 과거에 급제하여 사간원 정언과 예조좌랑·정랑, 시강원 보덕(정3품) 등 관직을 거쳤다.

 

매사에 청렴하고 신중하여 통정대부로 승진, 제주목사를 지냈다.

제주목사 시절에는 예로서 자기 몸을 엄숙하게 하고 백성을 사랑하기를 자식과 같이 하였다고 전한다.

 

백성들이 감복하여 임기만료가 되었으나 제주민들이 '연임하게 해 달라'는 진정서를 올려 조정에서는 포상과 함께 연임을 허락하였다. 그러나 재임 중에 별세해 자식들이 청송으로 운구, 고향에서 장례를 치렀다고 한다.

 

그 후 송와공의 증손(6형제)대에 이르러 청송에 잔류하기도 하고, 타지로 이거하기도 했다.

이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직계조상 이유(李瑜)(14대조)가 청송에서 살았다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