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世 이연손(李延孫)
[생졸년] 미상∼1463년(세조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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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경주(慶州). 이승(李昇)의 아들이다.
무과에 급제하고, 1455년 세조가 즉위하자 그 해 상호군(上護軍)으로 원종공신일등(元從功臣一等)에 올랐다.
1457년에 공조참의(工曹參議)를 거쳐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가 되었으며, 이듬해 형조참의(刑曹參議)를 지내고, 1459년 다시 첨지중추원사를 제수받았다. 동년 7월 중추원부사(中樞院副使) 겸 전라도관찰사(全羅道觀察使)가 되었으며, 이듬해 한성부윤(漢城府尹)에 임명되었고, 1462년 공조참판(工曹參判)을 역임하였다.
이렇게 여러 벼슬을 거쳐 참판에까지 이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윤번(尹璠)의 사위였기 때문이다. 부인 윤씨가 대왕대비 정희왕후(貞熹王后)의 동생이다. 아들 이철견(李鐵堅)은 1460년(세조 6) 경진무과에 급제하고, 1466년(세조 12) 병술등준시무과(丙戌登俊試武科)에 합격하여 이듬해에 훈련원도정(訓鍊院都正)이 되었다.
여러 관직을 거쳐 1486년에는 좌찬성(左贊成)이 되었고, 이어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 평안도(平安道)·영안도(永安道)의 도체찰사(都體察使), 도총관(都摠管) 등을 역임하였다. 현재 그의 묘비 문이 남아 있는데 이는 그의 14세손인 영의정(領議政) 이유원(李裕元)이 1873년(고종 10)에 개수한 것이다.
제1매는 〈공조참판증영의정이공연손지묘(工曹參判贈領議政李公延孫之墓)〉라는 제호를 탁본한 것이고 제2매는 비의 본문을, 제3매는 말미의 건립연도와 찬자를 탁본한 것이다.
[참고문헌]
◇世祖實錄 成宗實錄 燕山君日記 淸選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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