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학/고사성어

19세기 서울의 새로운 인간형, 유속(流俗)

야촌(1) 2010. 4. 5. 13:56

■19세기 서울의 새로운 인간형, 유속(流俗=風速)

 

시대의 변화는 인간형의 변화를 낳는 것일까?

공자의 가르침을 토대로 형성된 전통적인 군자-소인의 인간형은 19세기 서울양반 사대부사회에서 더 이상 현실적인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서울양반 사대부의 한사람이었던 소산(素山) 이응신(李應辰,1817~1887/전주이씨)은 이제 서울에서는 군자와 소인이 합쳐져 모두 유속이 되었다고 진단하며 차라리 소인이라도 보고 싶다는 우울한 마음을 토로한다.

그는 무엇을 근심한 것일까.

 

천하 국가를 다스림에 없애지 않으면 안 되는 것, 소인(小人)과 유속(流俗)이 그것이다.

임금과 굳게 결탁하고 패거리를 널리 심는다.

 

참혹하게 남을 해치고 교묘하게 자기를 살찌운다. 독사와 맹수같이 마음먹고 사귀(邪鬼)와 요부같이 행동한다. 사이를 비집고 틈을 타서 국가에 해악을 끼친다. 음흉하고 사악하고 감추고 속이는 것이 비할 데가 없다. 이것이 소인의 환난이다.

 

나아가도 군자가 되기를 바라지 않고 물러나도 소인이 될 수 없다.

옳고 그름의 중간에 몸을 두고 맑고 더러움의 중간에 발을 붙인다.

 

집 안에서는 구속이나 검속이 없고 집 밖에서는 모나게 굴지 않는다.

패션이나 취미는 남들을 따라하고 말과 행동은 시세와 부합해서 한다.

 

표 나게 정직해서 명성을 취하지 않고 곧이곧대로 행동해서 미움을 받지 않는다.

정성스런 태도로 친애하고 온화한 모습으로 공손하며 환히 아는 듯 두루 통해서 비방하는 소리가 미치지 않

는다.

 

하지만, 재물의 이득을 얻으려는 욕심과 진출해서 빼앗으려는 속셈으로 밤낮으로 일을 꾸며내는 버릇이 몸에 단단히 붙어 풀리지 않는다. 심술이 망가지고 풍속이 전염되어 혼탁하고 비루해 더불어 일할 수 없다. 이것이 유속의 환난이다.

 

그름으로, 국가를 다스리는 데 유속을 고치지 않는다면 정색하고 창언하는 신하가 조정에 없을 것이다.

영토를 방어하고 환난을 막아내는 관리가 변경에 없을 것이다.

독 실히 공부하고 힘써 실천하는 선비가 학교에 없을 것이다.

 

윗사람을 친히 하고 장자(長者)를 위해 죽는 백성이 경향에 없을 것이다.

이 네 가지가 없다면 나라가 어찌 나라가 될 수 있을까.

 

유속(流俗=風速)의 해로움은 물론 소인과 같은 정도는 아니지만 소인보다 심한 점도 있다.

소인은 화(火)라서 박멸할 수 있다. 유속은 수(水)라서 빠져들지 않는 사람이 없다.

 

소인은 구부러지고 나쁜 나무라서 가끔 나타나는 것이다.

유속은 누런 띠풀이나 하얀 갈대라서 땅을 온통 뒤덮고 있는 것이 모두 이것이다.

그 재앙이 불어나고 그 무리가 번식하는 것이 과연 얼마나 되는가?

 

그러나 인가의 부형은 자제가 소인이라는 말을 들으면 옳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유속이라는 말을 들으면 그다지 마음 상하지 않는다. 그 형세가 장차 온 천하가 유속이 될 것이다.

옛날에는 군자와 소인이 서로 번갈아 성쇠하였다.

 

음과 양은 양립해서 대응하는[對待] 법이라 군자가 있으니 소인이 있는 것이다.

후세에는 군자와 소인이 합쳐져 유속이 되었다. 그러니, 소인이라도 나오면 그래도 볼만한 세상이다.

 

자료 : 이응신(李應辰),〈유속을 징계한다[懲俗]〉,《소산문집초고(素山文集鈔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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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군자와 소인이란 말처럼 우리 귀에 친숙한 말도 없다.

유교문화권에서 거룩한 성인으로 추앙받는 공자는 제자들에게 곧잘 군자와 소인에 관해 말하곤 했다.

 

이를테면 공자는

“군자는 남과 화합하되 부화뇌동하지 않지만[和而不同] 소인은 남과 부화뇌동하기만 할 뿐 화합할 줄 모른다[同而不和]”

고 하였다.

 

공자는 제자들에게 인생의 지혜를 가르치면서 상반된 인간유형으로 군자와 소인을 대비시키고 군자의 삶을 지향할 것을 당부한 것이다. 공자의 인간학은 그 후 세월이 흘러 철학적인 체계가 입혀져 주자의 도덕학으로 거듭나게 되었고, 이에 따라 공자의 인간학에 포섭되어 있던 군자와 소인도 도덕주의적인 관점에서 더욱 엄격한 의미를 부여받게 되었다.

 

즉, 자기로부터 시작해서 천하에 이르기까지 적극적으로 선을 실천해서 천리를 실현하는 주체가 군자라면, 소인은 이와 반대로 적극적으로 악을 실천해서 인욕을 실현하는 주체로 인식된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본질적으로 선을 추구하는 군자와 악을 추구하는 소인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

그런 믿음에서 본다면 이상적인 도덕사회를 만들기 위해 한 나라의 임금이 해야 할 일은 우선 임금 자신이 스스로 도덕군자가 되겠다는 확고한 목표를 세우고, 함께 나라를 다스리는 신하들 중에서 누가 군자이고 누가 소인인지 명확한 판단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었다.

 

조선시대에 신하들이 임금에게 자주 경연을 열어 유학을 공부할 것을 충고한 것은 대개 이 때문이었다.

그렇게 볼 때, 이응신(1817~1887)이 살았던 조선사회는 전형적인 조선시대를 벗어난 것처럼 보인다.

 

적극적으로 정치적인 선을 추구하는 군자도 사라지고 적극적으로 정치적인 악을 추구하는 소인도 사라졌다. 그 대신 군자도 아니고 소인도 아니며 아예 군자-소인의 차원을 떠나버린 새로운 인간형으로 유속이 대두하였다.

 

유속은 정치에 관심이 없다. 도덕에 관심이 없다.

관료적인 처세술과 세속적인 쾌락 감으로 가득 차 있을 뿐이다.

 

서울 백악산 아래에 살며 하얀 산[白岳]의 뜻을 취해 소산(素山)이라 자호한 당대의 문인 이응신이 주로 관찰했던 이와 같은 유속은 물론 서울양반관료들의 행태였을 것이다. 유행에 민감하고 시세를 통찰하고 무난하게 사교생활하면서 부와권력을 쟁취한다는 묘사부터가 지방향반들에게는 어울리지가 않다.

 

서울을 중심으로 유속이 확산되어 더 이상 사대부사회 안에서 군자와 소인의 전통적인 인간유형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는 이응신의 문제 제기가 사실이라면 과연 19세기 중후반 조선사회의 이와 같은 현상에 어떤 역사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지 밝히는 것은 흥미로운 과제가 될 것이다.

 

이것은 서양 중세의 보편적인 규범주의가 해체되고 세속적인 문화가 발달하는 문예부흥기의 국면과 닮아 보이기도 한다. 또는, 도덕과 정치를 분리한 정약용의 근대적인 정치철학이 등장하는 사회적 배경으로 비치기도 한다.

 

아니면, 이와 다르게 조선시대 정치사에서 기왕에 적극적으로 도덕정치를 추구한 붕당정치나 그것이 변용된 탕평정치의 전통이 침체되고 세도정치의 장기적인 그림자 속에서 형성된 퇴영적이고 무기력한 정치문화의 발생으로 읽힐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후의 역사를 보면 이응신이 비판한 서울의 유속에 대해 낙관적이고 낭만적인 역사적 상상은 계발되기 어려울 것 같다. 1910년 1월『황성신문』의 주필은 서울 벌열가문의 자손들이 매국 흉당 일진회의 노예가 되어 일진회가 청원한 한일합방을 찬성하였다고 극렬히 비판하면서 자신의 서울체험을 소개하였다.

 

이에 따르면 그가 처음 시골에서 서울에 왔을 때에 대개의 사대부들이 탐학 불법했지만 그래도 남촌과 북촌에는 몇몇 어진 사대부가 있어 세리를 추종함을 개돼지처럼 보는 풍도가 있었으나 10년 후 서울에 다시 왔을 때에는 서울에서 이런 청류(淸流)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이러한 풍조의 연장선상에서 국망에 관한 한 일진회의 한일합방 청원에 찬성한 서울 벌열 가문의 자손들을 매국의 유속으로 인식한 것이다. 이들은 일진회처럼 적극적으로 한일합방을 청원한 것이 아니라

 

‘유행에 민감하고 시세를 통찰하고 무난하게 사교생활 하는’ 차원에서 일진회를 찬성하여 기득권의 유지를 노린 것이다. 가히 유속다운 모습이었다. 이응신이 근심한 유속의 폐해가 현실화된 것이다.

 

글쓴이 : 노관범/서울대학교 국사학과 박사

 

 

야촌 이재훈

 

↑소산문집초고(素山文集鈔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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