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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장 지낸 경주이씨중앙화수회 이종찬 총재

야촌(1) 2010. 2. 25. 02:10

■ 국정원장 지낸 경주이씨중앙화수회 이종찬 총재

  뉴스원 < 2006-12-11 17:28:17>

 

이종찬 전 국정원장

 

한국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통 명문가 경주이씨 백사공파白沙公派 우당 이회영의 손자인 경주이씨중앙화수회 이종찬 총재는 지난 11월20일 우당기념관에서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우리나라 민주주의 제도의 효시라 할 수 있는 경주의 ‘표암재’를 성역화 하는 것이야말로 세계 속에 경주를 우뚝 서게하는 보편적 가치”라고 말했다.

 

“2000년 전에 한국에 민주주의가 있었다고 하면 누가 믿겠습니까? 그리스에 민주주의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어도, 우리 신라에 민주주의가 있다는 걸 들어본 적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 시조할아버지를 모셨기 때문에 성역화하자는 게 아니라, 민주주의 발상지이니까 역사적 고증을 거쳐 신라가 천년사직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이 뭔지를 연구해야 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일이지요.

 

신라의 혁거세 왕이 칼로 민중을 점거한 게 아니라, 민주 합의제에 의해 세워졌기 때문에 오랫동안 그 전통이 남아 삼국통일의 기반을 다졌고, 천년 사직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죠.” 국정원장으로 재직할 때보다 더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이 총재는 '관광분야'에서도 남다른 혜안과 비전을 보여줘 본지 취재진의 마음을 들뜨게 했다.

 

“그동안 관광경주하면 불국사, 석굴암, 안압지 등 하드웨어적인 면에 가치를 부여했죠. 21세기 관광의 비전은 감동에 있다고 봅니다. 우리 조상모신 사당이다, 시조할아버지가 이렇구나, 이건 큰 의미가 없죠. 많은 외국사람들이 와서 감동을 받아야 되거든요. 그러려면 세계적 보편성이 있어야 됩니다.

 

보편적인 가치는 민주주의죠. 민주주의는 합의제입니다. 2000년 전에 모든 사람들의 의사를 결집하고 합의해서 새로운 왕을 추대한 곳이 표암재라고 전 세계에 소개하는 것이 관광경주의 진면목이라고 봅니다.

 

천년 사직을 유지한 것은 중국에도 없던 것 아닙니까. 화백회의, 화랑제도 같은 제도가 있었기 때문에 천년 사직이 유지가 된 것입니다. 신라의 의미가 대단합니다. 삼국통일도 대단하죠. 그런 차원에서 민주주의 발상지로서의 경주를 부각시키고 관광명소가 될 수 있도록 의미를 부여해야 합니다.”


경주이씨중앙화수회는 경주이씨의 정신을 바로 세우고자 종중선양 문화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 총재의 발의로 문화사업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10억 원의 사업기금까지 조성하고 있다. 그런 일환으로 경주에 있는 동국대와 ‘민주주의 신라 천년이 어떻게 가능했을까’라는 세미나도 열었다.

 

한국의 전통을 살린 국제회의장 같은 것을 만들어 ‘신라 천년의 민주주의’를 세계 속에 각인시키는 것이야말로 ‘21세기 관광경주의 비전’이란 지적이다. “이런 기회에 우리 경주를 본관으로 하는 ‘육부촌’의 일가에게 ‘제안’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제일 먼저 각 집안이 갖고있는 모든 문서들, 할아버지들이 썼던 서찰 등을 전부 한글화 해야합니다. 요즘 한문교육을 안시키니까 머지않아 소중한 문서가 사장될 위험에 처해 있지요. 역사적인 문서는 가문의 개인적인 것이라기보다는 국가적인 자산이지요.

 

우리 가문뿐 아니라 경주 최씨도 해야하고, 경주 손씨도 해야 합니다. 각자 가지고 있는 서찰을 한글화하면 서로 연결도 되고, 경주에서 나아가 신라전체의 역사를 정리하게 됩니다.”

한국국학원에서도 이런 사업을 하고 있지만 전 종중이 참여해야 들불처럼 번져나간다는 게 이 총재의 지론이다. 화제를 우당 선생의 발자취로 돌리자 지난 11월 16일 열린 ‘우당 이회영 선생 순국 74주기 추모식 및 우당장학금 수여식’에서의 눈물겨운 회한을 털어놓았다.

“그날 려순 일로감옥 반충무 소장이 ‘추모특강’을 했는데, ‘우당이 여순감옥소에서 고문받았다’고 증언을 했습니다.”
월남 이상재 선생은 우당 가문을 다음과 같이 기리고 있다. ‘동서 역사상에 국가가 망할 때 나라를 떠난 충신 의사가 수백 수천에 그치지 않는다.

 

그러나 우당 일가처럼 6형제 가족 40여명이 한마음으로 결의하고 일제히 나라를 떠난 일은 전무후무한 것이다. 장하다! 우당 형제는 참으로 그 형에 그 동생이라 할 만하다. 6형제의 절의는 백세청풍(百世淸風)이 될 것이니, 우리 동포의 가장 좋은 모범이 되리라.’


“우리나라 3대 항일 명문은 우당友堂 이회영李會榮, 왕산旺山 허위許蔿, 석주石洲 이상룡李相龍 집안이라고 합니다. 세 집안 모두 삼한갑족三韓甲族으로, 나라를 빼앗긴 후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망명길에 올라 만주의 언 땅에다가 조국 광복의 씨앗을 뿌리는 데 앞장섰습니다.

 

우리도 그랬지만 왕산 일가도 몽땅 망했죠. 허위는 의병투쟁하다 일본군에게 붙잡혀  죽임을 당한 서대문형무소 사형자 1호지요. 가족들도 모두 몰살당하고…. 이번에 증손자들이 겨우 국적회복해서 왔습니다.

 

이들은 러시아 말밖에 못해요. 고려대 국제어학원에 다니는 허 발로자와 허 알렉산드라가 허위의 증손자죠. 흑룡강성과기대에 다니는 김휘는 김좌진 장군의 외증손녀지요. 이 세 사람에게는 앞으로 특별히 장학금을 줄 예정입니다.”


북경의 우당 거처가 독립 운동가의 사랑방이었듯이 우당기념관도 독립유공자들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가족들은 전부 불행하다. 생활조차 어려울 정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이 총재의 가슴이 아린지도 모른다. 후회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아버지대의 기록은 못남겼더라도 녹음이라도 남기지 못한 게 아쉽다고 한다.


“허웅대라는 허위의 조카가 러시아에서 죽었는데 일기가 나왔어요. 그걸 번역해서 우리 우당장학회의 이름으로 책을 만들려고 합니다. 역사를 재정립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죠. 남한의 독립운동사는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되어있고 북한은 김일성 중심으로 되어있지 않습니까.

 

여기 저기 못끼는 사람들이 많지요. 그 중간지대에 있는 분들을 내가 힘 닿는대로 발굴해서 기록도 남기고 후손도 도울 예정입니다.” 한국을 동북아 중심허브로 만들고자 선진화포럼 회원들과 두바이를 다녀온 뒤의 인터뷰여서 이 총재의 관광한국에 대한 현실과 혁신해야 될 내용들이 구구절절 가슴에 와 닿았다.


“한국이 목조문화라면 유럽은 석조문화입니다. 유럽은 문화재가 전부 돌로 만들어져 1000년 2000년 가지요.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우리는 영주 부석사가 제일 오래됐지만 불과 천년도 안됐지요. 목조문화는 보수하고 유지하기 힘듭니다. 우리는 목조문화로서의 가치를 살리려면 소프트웨어가 가동되어야 합니다.

 

가령 유네스코의 문화재로 지정된 팔만대장경도 목조문화의 진수이지 않습니까. 우리만 알고 있을 게 아니라 발전시켜야 하지요. 하드웨어가 빈약하니까 소프트웨어를 발전시켜야 합니다. 두 번째는 모든 국민들이 대외지향적으로 세계화되어야합니다. 70%를 외국에 의존하고 있는 처지 아닙니까. 서비스 잘하고 외국인들에게 편안하게 해줘야 합니다.

 

음식에도 혁명이 일어나야 합니다. 일본음식은 국제화시켰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중국사람이 제주도 한번 다녀오면 다시는 가질 않습니다. 왜냐하면 첫째 먹을게 없습니다. 중국사람은 생식을 잘 안먹는데 호텔요리가 전부 생선 위주잖아요. 게다가 중국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게 노름입니다. 문화혁명 때도 그건 막지 못했습니다.

 

영국의 차이나타운에 가보면 음력 정초에 보름까지 노름만 하잖아요. 제주도에 놀 게 있습니까. 신라호텔 딱 한 군데 카지노는 있지만 마작은 없어요. 중국의 관광객이 13억 인구에 1%면 1300만 명입니다. 1%만 유치해도 엄청납니다.

 

전라남도 지사가 중국 관광객 500만 명만 전남에서 하룻밤만 묶고 가면 전남의 한해 쌀 이익금보다 많다고 합디다. 즐기고 싶게끔 만들어 줘야하죠. 외국사람이 오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어야지 우리를 기준으로 하면 안됩니다. 그 다음은 영

어공용화가 되어야 합니다.”



대담 l 전병열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