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물/조선시대 인물

이인행(李仁行)

야촌(1) 2010. 2. 6. 12:50

이인행(李仁行)

 

1758년(영조 34)∼1833년(순조 33),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진보(眞寶). 자는 공택(公宅), 호는 만문재(晩聞齋)· 일성(日省)· 신야(新野). 영천출신. 해(瀣)의 후손으로, 관섭(觀燮)의 아들이다.

경사(經史)에 두루 통하여 정조의 친명으로 성균관에 거재(居齋)하기도 하였다.

 

1790년(정조 14)에 응제대책(應製對策)으로 인하여 온릉참봉(溫陵參奉)에 발탁되었고, 벼슬이 세자익위사익위(世子翊衛司翊衛)에 이르렀다. 서연(書筵)에도 입시하여 진강하였는데, 동료들로부터 진강관(眞講官)이라는 칭송을 들었다. 만년까지 책을 놓지 않았는데, 특히 《심경》·《근사록》을 아꼈다 한다. 저서로 《신야문집(新野文集》이 있다.

 

[참고문헌]

宗齋集.<具琓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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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진성이씨(眞城李氏) 역사인물(歷史人物)

 

이인행『李仁行, 1758년(영조 34) ~1833년(순조 33)』

본관 진성(眞城). 자(字)는 공택(公宅). 호(號)는 신야(新野). 해(瀣)의 후손. 관섭(觀燮)의 자(子). 1783년 사마시 합격. 의금부도사․사헌부감찰․형조좌랑 역임. 고산현감(高山縣監)에 부임하여 향약을 실시하고 예교를 밝히며 승도를 모집하여 방축을 수축하는 등의 치적을 남김. 1802년 감사의 비위에 거슬려 체직되고, 강세륜의 상소로 위원에 유배되었다가 왕의 특명으로 풀려남. 1822년 세자익위사 익위에 복직됨.

 

○ 참고자료:박시원 찬묘갈명(朴時源 撰, 墓碣銘」)

○ 문집의 저자 : :이원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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