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경주이씨 명인록

이석표(李錫杓)

야촌(1) 2009. 9. 23. 19:02

■ 32世  이석표(李錫杓)

 

   [생졸년] 1704년(숙종 30)~1751년(영조 27)]

   [세계] 익재공후 생원공파→29세 화곡공(華谷公) 경억(慶億)의 증손자→31世 담헌공(澹軒公) 하곤(夏坤)의 아

              들.

   [문과] 영조(英祖) 9년(1733) 계축(癸丑) 알성시(謁聖試) 갑과(甲科) 1[장원(壯元)]위

   [생원진사시] 영조(英祖) 5년(1729) 기유(己酉) 식년시(式年試) 1등(一等) 1[장원(壯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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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운원(運元), 호는 남록(南麓)이다. 숙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인엽(寅燁)의 손자이며, 문인화가 하곤(夏坤)의 아들이다. 1729년(영조 5) 25세에 진사시에 장원급제하였고, 1733년 29세에 알성문과에도 장원급제한 후 성균관전적에 제수되었으며, 사간원정언. 사헌부지평 등 양사(兩司)의 관직을 지냈다.

 

1735년 시폐(時弊)의 건의를 위한 8조목의 상소를 올리면서 영의정 김흥경(金興慶)을 탄핵 하였는데, 영조는 직서(直敍)하는 자를 우대한다 하여 전라도 함열현감(咸悅縣監)에 임명하고 말을 내어주는 특혜를 베풀었으나 실제로는 좌천이었다.

 

이 상소로 인하여 영의정이 사직하고 대사헌. 대사간이 체직(遞職)되는 등 조정에 파문을 일으켰다. 그러나 좌의정김재로(金在魯), 우의정  송인명(宋寅明) 등의 변호로 다시 내직에 보임되었고, 이조정랑. 홍문관교리 등의 청요직(淸要職)을 두루 거쳐 대사간(大司諫-正三品)에 올랐다.

 

학문이 뛰어나서 성균관대사성(成均館大司成-正三品). 홍문관부제학(弘文館副提學-正三品) 등을 지낸 후 전라도관찰사(全羅道觀察使-從二品)에 이르렀다. 시문집에《잡저문고(雜著文藁)》6책이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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