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학/고려와조선관직

옛 관직의 품계.

야촌(1) 2008. 7. 16. 08:35

■ 옛 관직의 품계.

 

● 정1품

 

[고려]

1060년(문종 14) 처음으로 문산계(文散階)를 제정할 때는 설정하지 않고 종1품을 최고 품계로 하였다가, 1308년(충렬왕 34) 문관만 정1품을 두었으나 정1품을 위한 관직은 따로 두지 않았고, 그 명호(名號) 등 제도의 변개가 거듭되었다.

[조선]

상ㆍ하의 구분과 동반(東班: 문관)ㆍ서반(西班: 무관)ㆍ종친ㆍ의빈(儀賓: 국왕의 사위) 등의 구별이 있었다.

그러나 1865년(고종 2) 종친과 의빈의 품계를 모두 동반에 통합하고, 정1품 상의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와 정1품하의 보국숭록대부 사이에 상보국숭록대부(上輔國崇祿大夫)를 설정하여, 국구(國舅)와 종친의 관계로 정하였다.

 

관직으로는 영의정을 비롯하여 좌ㆍ우의정, 겸직의 영사(領事)ㆍ도제조(都提調), 각 군영의 대장(大將) 등이 있었고, 그 부인은 정경부인(貞敬夫人). 부부인(府夫人). 군부인(君夫人) 등 외명부(外命婦)에 봉작하였다.

 

1439년(세종 21) 정비된 녹과(祿科)의 제1과(科)에 해당되어 중미(中米) 14석, 조미(糙米) 48석, 전미(田米) 2석, 황두(黃豆) 23석, 소맥 10석, 주(紬) 6필, 정포(正布) 15필, 저화(楮貨) 10장 등을 녹봉으로 받았다.

대군(大君), 군(君: 정1품부터 종2품까지 있음), 부원군(府院君: 공신 및 왕비의 아버지), 영의정(領議政), 좌의정(左議政), 우의정(右議政), 도제조(都提調: 영의정이 겸임하는 관직임), 사ㆍ부(師ㆍ傅: 세자시강원의 관직으로서 영의정, 좌우의정이 경임하는 관직임), 위(尉: 왕의 사위로서 공주에 장가든 자에 정1품 혹은 종1품을 제수함), 감사(監事: 영의정이 겸임하는 관직임)

 

 

● 종1품

 

[고려]

1060년(문종 14) 문산계(文散階)를 제정할 당시 종1품의 문관을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라 하였으나 후에 개칭을 거듭 하였고, 무산계(武散階)의 종1품은 995년(성종 14) 표기대장군(驃騎大將軍)이라 정하여 고려 말까지 고치지 않았다.

 

문관직은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의 문하시중(門下侍中)ㆍ중서령(中書令), 상서성(尙書省)의 상서령(尙書令), 겸직인 6부(部)의 판사(判事)와 한림원(翰林院)의 판사(判事), 사관(史館)의 감수국사(監修國史) 등인데, 무관직은 설정되지 않았다.

[조선]

동반(東班)ㆍ종친(宗親)ㆍ의빈(儀賓)으로 구별하고 서반(西班)은 동반의 관계명을 따르도록 하였다가, 1865년(고종 2) 종친과 의빈도 모두 동반의 관계명으로 통일하였다. 관직은 의정부의 좌찬성(左贊成)ㆍ우찬성, 종친부ㆍ충훈부(忠勳府)의 군(君), 의빈부(儀賓府)의 위(尉), 돈령부(敦寧府)ㆍ의금부(義禁府)ㆍ중추부(中樞府)의 판사(判事),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의 이사(貳師), 세손시강원(世孫侍講院)의 사(師)ㆍ부(傅) 등이다.

 

종1품관은 세종 때에 정비된 녹과(祿科)의 2과에 해당하며, 중미(中米) 12석, 조미(糙米) 43석, 전미(田米) 2석, 황두(黃豆) 21석, 소맥 9석, 주(紬) 5필, 정포(正布) 10필, 저화(楮貨) 10장을 녹봉으로 받았다. 군(君), 위(尉), 좌찬성(左贊成), 우찬성(右贊成), 판사(判事), 제학(提學: 규장각의 관직), 사부(師傅 : 세손강서원의 관직)

 


● 정2품

 

[고려]

문산계(文散階)는 1060년(문종 14) 관계를 정할 때 특진(特進)이라 하였다가, 이후 상ㆍ하로 나뉘고 명칭도 여러 번 변경되었다. 995년(성종 14) 제정된 무산계(武散階)의 정2품은 보국대장군(輔國大將軍)으로 정하여져, 말기까지 상ㆍ하 구분 없이 그대로 있었다.

 

관직은 무관에는 해당직이 없고, 문관직으로는 문종 때를 중심으로 보면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ㆍ중서시랑평장사ㆍ문하평장사ㆍ중서평장사ㆍ좌복야(左僕射)ㆍ우복야ㆍ수국사(修國史) 등 정원은 7명에 불과하였다.

 

정2품관은 1076년(문종 30) 개정된 전시과(田柴科)의 2과(科)에 해당되어 전지(田地) 90결(結), 시지(柴地:연료림) 50결을 녹봉으로 지급받았다.

[조선]

상ㆍ하의 구분과 동반(東班)ㆍ서반(西班), 종친ㆍ의빈(儀賓) 등으로 구별되었다. 1865년(고종 2)부터는 종친과 의빈의 품계를 모두 동반 관계에 통합하였다. 대표적 문관직으로는 6조(曹)의 판서(判書)ㆍ대제학(大提學)이 있고, 이 밖에 겸직의 지사(知事)ㆍ제조(提調)ㆍ판윤(判尹)ㆍ좌참찬(左參贊)ㆍ우참찬ㆍ좌빈객(左賓客)ㆍ우빈객 등이 있었으나, 무관직은 거의 없었다.

 

정2품관은 1439년(세종 21) 정비된 녹과(祿科)의 3과에 해당되어 중미(中米) 12석, 조미(糙米) 40석, 전미(田米) 2석, 황두(黃豆) 18석, 소맥 9석, 주(紬) 5필, 정포(正布) 14필, 저화 8장을 녹봉으로 지급받았다. 정2품부터는 대감(大監)이라 불렀다.

군(君), 위(尉: 옹주에게 장가든 자에게 처음 제수함), 좌참찬(左參贊), 우참찬(右參贊), 판서(判書), 대제학(大提學), 지사(知事), 판교(判校: 규장각의 관직), 판윤(判尹), 좌빈객(左賓客), 우빈객(右賓客), 도총관(都摠管).

 


● 종2품

 

[고려]

1060년(문종 14) 문산계(文散階)를 제정할 당시는 문관을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로 정하였으나, 후에 여러 차례 고쳤고, 무관은 995년(성종 14) 진국대장군(鎭國大將軍)으로 정하여 고려 말까지 고치지 않았다.

 

문관직에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의 참지정사(參知政事)ㆍ정당문학(正堂文學)ㆍ지사(知事), 상서성(尙書省)의 지사(知事)ㆍ중추원(中樞院)의 판사(判事)ㆍ사(事)ㆍ지사(知事)ㆍ동지사(同知事), 사관(史館)의 동수국사(同修國史), 제관전(諸館殿)의 대학사(大學士), 국자감(國子監)의 제거(提擧)ㆍ동제거(同提擧) 등이 있었다. 무관직은 설정되지 않았다.

[조선]

종2품 이상은 동반(東班)과 서반(西班)의 관계명이 같고, 종친(宗親)ㆍ의빈(儀賓)의 구별이 있었으나, 1865년(고종 2) 모두 동반의 관계명으로 통일하였다. 문관직으로는 6조(曹)의 참판(參判), 사헌부(司憲府)의 대사헌(大司憲), 규장각(奎章閣)ㆍ홍문관(弘文館)ㆍ예문관(藝文館)의 제학(提學) 등이 대표적이고, 문관의 외관직(外官職)으로는 8도의 관찰사(觀察使), 부(府)의 부윤(府尹) 등이 있다.

 

무관직으로는 5위(衛)ㆍ겸사복(兼司僕)ㆍ내금위(內禁衛)의 장(將), 훈련도감(訓鍊都監)ㆍ금위영(禁衛營)ㆍ어영청(御營廳)ㆍ포도청(捕盜廳)의 대장, 훈련도감ㆍ금위영ㆍ어영청ㆍ총융청(摠戎廳)ㆍ수어청(守御廳)의 중군(中軍), 총융청ㆍ수어청ㆍ관리영(管理營)ㆍ진무영(鎭撫營)의 사(使), 용호영(龍虎營)의 별장(別將) 등이 있다.

 

무관의 외관직으로는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ㆍ병마방어사(兵馬防禦使)ㆍ수군통어사(水軍統禦使)ㆍ수군통제사(水軍統制使))ㆍ수군방어사 등이 있다. 종2품관은 녹과(祿科)의 4과에 해당하며, 중미(中米) 12석, 조미(糙米) 37석, 전미(田米) 2석, 황두(黃豆) 17석, 소맥 8석, 주(紬) 5필, 정포(正布) 14필, 저화(楮貨) 8장을 연봉으로 받았다.


군(君), 참판(參判), 대사헌(大司憲), 동지사(同知事), 관찰사(觀察使: 도의 감사), 좌윤(左尹), 우윤(右尹), 직제학(直提學: 규장각의 관직으로서 정3품까지 있음), 유수(留守), 목사[牧使: 단, 광주(廣州)목사에 한함], 제학(提學), 좌부빈객(左副賓客), 우부빈객(右副賓客), 제조(提調), 좌유선(左諭善), 우유선(右諭善: 좌우유선은 정3품까지 있음), 대장(大將: 정3품까지 있음), 부총관(副摠管), 중군 (中軍: 정3품까지 있음), 사(使: 무관),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 관찰사가 겸임하기도 함). 방어사(防禦使: 종3품까지 있음), 수군통제사(水軍統制使), 겸사복장(兼司僕將), 내금위장(內禁衛將), 별장(別將: 용호령)

 

 

● 정3품

 

 

[고려]

1060년(문종 14) 문산계(文散階)를 정할 때 은청광록대부(銀靑光祿大夫)라 하였다가 그후 상ㆍ하로 구분되고 명칭도 여러번 바뀌었다. 995년(성종 14) 관군대장군(冠軍大將軍)으로 정하여진 정3품 무산계(武散階)는 상ㆍ하의 구분 없이 말기까지 바뀌지 않았다.

 

정3품 문관직으로는 중앙 행정관서의 실질적인 장관인 6부(六部)의 상서(尙書)가 대표적인 관직이고, 좌상시(左尙侍)ㆍ우상시ㆍ삼사사(三司使)ㆍ판사(判事)도 현직(顯職)으로 꼽혔다.

 

무관직으로는 상장군(上將軍)이 최고 관직으로 군(軍)과 위(衛)의 장관이었다. 정3품관은 1076년(문종 30) 개정된 전시과(田柴科)의 3과(科)에 해당되어 전지(田地) 85결(結)과 시지(柴地:연료림) 40결을 녹봉으로 지급받았다.

 



[조선]

상ㆍ하, 동반(東班)ㆍ서반(西班)ㆍ종친ㆍ의빈(儀賓)으로 구별되었는데 1865년(고종 2)부터 모두 동반의 명칭으로 통일하였다. 정3품 상(上)의 관계부터 당상관(堂上官)이 되므로 정3품 벼슬은 상의 당상관에 오르느냐, 하의 당하관에 머무느냐에 따라 신분상 큰 차이가 생겨 벼슬길의 큰 갈림길이 되었다.

 

정3품 하에서 정3품 상의 당상관이 되면 흑각(黑角)을 쓰던 망건의 관자(貫子)를 옥으로 바꾸어 영귀(榮貴)의 표상으로 삼고, 공. 사간에 영감(令監)이란 경칭으로 불리었다.

 

문관직으로는 승정원(承政院)의 승지(承旨), 사간원(司諫院)의 장관인 대사간(大司諫), 성균관의 대사성(大司成), 6조(六曹)의 참의(參議) 등이 있고, 외관직(外官職)으로는 목사(牧使)ㆍ대도호부사(大都護府使) 등이 있다.

무관직으로는 도정(都正)ㆍ선전관(宣傳官)ㆍ별장(別將)ㆍ천총(千摠)ㆍ진영장(鎭營將), 외관직으로는 병마절제사(兵馬節制使)ㆍ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ㆍ순영중군(巡營中軍)ㆍ위장(衛將)ㆍ병마우후(兵馬虞候) 등이 있다.

 

정3품 당상관은 1439년(세종 21) 정비된 녹과(祿科)의 5과(科)에 해당되어 중미(中米) 11석, 조미(糙米) 32석, 전미(田米) 2석, 황두(黃豆) 15석, 소맥 7석, 주(紬) 4필, 정포(正布) 13필, 저화(楮貨) 8장을 녹봉으로 받았는데, 정3품 당하관은 중미 10석, 조미 30석만 다르고 나머지는 당상관과 같았다.

 

부위(副尉: 군주에게 장가든 자로서 처음 제수함), 첨위(僉尉: 현주에게 장가든 자로서 종3품까지 있음), 도정(都正), 대사간(大司諫), 대사정(大司成), 참의(參議), 부제학(副提學), 도청(都廳), 도정원정(都正院正), 좌유선(左諭善), 우유선(右諭善), 첨지사(僉知事), 직각(直閣: 종6품까지 있음),

 

도승지(都承旨), 좌승지(左承旨), 우승지(右承旨), 좌부승지(左副承旨), 우부승지(右副承旨), 동부승지(同副承旨), 제주(祭酒), 찬선(贊善), 보덕(輔德), 겸보덕(兼輔德), 판결사(判決事), 대장(大將), 정(正), 시(寺), 원(院), 감(監), 사(司) 등의 관직, 좌통례(左通禮), 우통례(右通禮), 판교(判校), 수찬관(修撰官), 편수관(編修官 : 종3품까지 있음), 제검(提檢 : 종3품까지 있음),

 

선전관(宣傳官: 종9품까지 있음), 별장(別將: 훈련도감), 천총(千摠: 훈련도감), 상호군(上護軍), 중군(中軍), 진영장(鎭營將: 목사가 겸임함), 목사(牧使), 사림위장(司林衛將), 부사(府使 : 대도호부), 국별장(局別將), 별후부천총(別後部千摠), 기사장(騎士將), 관성장(管城將).

 


● 종3품

 

 

[고려]

18품계 중의 제6등급에 해당한다. 1060년(문종 14) 문산계(文散階)를 제정할 당시는 종3품의 문관을 광록대부(光祿大夫)로 정하였으나, 뒤에 이름을 여러 번 고치고 995년(성종 14)에 제정한 무관은 운휘대장군(雲麾大將軍)으로 정하여 끝까지 명칭을 고치지 않았다.

 

문관직은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의 직문하(直門下), 상서도성(尙書都省)의 좌승(左丞)ㆍ우승, 육부(六部)의 지사(知事), 한림원(翰林院)의 수찬관(修撰官), 국자감(國子監)의 좨주(祭酒), 비서성(秘書省)ㆍ전중성(殿中省)ㆍ사천대(司天臺)의 감(監), 각문(閣門)의 지사(知事), 위위시(衛尉寺)ㆍ대복시(大僕寺)ㆍ예빈성(禮賓省)ㆍ대부시(大府寺)ㆍ사재시(司宰寺)ㆍ군기감(軍器監)ㆍ태의감(太醫監)의 판사(判事), 태사국(太史局)의 지사(知事) 등이 있었다. 무관직으로는 2군(軍)과 6위(衛)의 대장군이 있었다.



[조선]

동반(東班)ㆍ종친(宗親)ㆍ의빈(儀賓)ㆍ서반(西班)으로 구별하였다가 1865년(고종 2) 동반으로 통일하였다.

문관직으로는 사헌부(司憲府)의 집의(執義), 사간원(司諫院)의 사간(司諫), 홍문관(弘文館)의 전한(典翰), 성균관의 사성(司成), 춘추관(春秋館)의 수찬관(修撰官)ㆍ편수관(編修官) 등이 대표적이고, 종친부(宗親府)를 비롯한 각 시(寺)ㆍ원(院)ㆍ감(監) 등의 부정(副正)이 가장 많았다.

 

문관의 외관직(外官職)으로는 8도의 도호부사(都護府使), 숭의전(崇義殿)의 사(使)가 있다.

무관직으로는 오위(五衛)의 대호군(大護軍), 선전청의 선전관, 훈련원의 부정(副正)이 있고, 외관직으로는 병마우후(兵馬虞侯)ㆍ병마첨절제사(兵馬僉節制使)ㆍ수군첨절제사(水軍僉節制使) 등이 있었다. 종3품관은 녹과(祿科)의 제6과에 해당되어 중미(中米) 10석, 조미(糙米) 27석, 전미(田米) 2석, 황두(黃豆) 14석, 소맥 (小麥) 7석, 주(紬) 3필, 정포(正布) 13필, 저화(楮貨) 6장을 연봉으로 받았다.

첨위(僉尉), 부정(副正), 집의(執義), 사간(司諫), 전한(典翰), 사성(司成), 편수관(編修官), 참교(參校), 상례(相禮), 익례(翊禮), 내승(內乘: 종9품까지 있음), 제거(提擧), 제검(提檢), 부사(府使), 대호군(大護軍), 진영장(鎭營將: 부사가 겸임함), 절도사(節度使), 방어사(防禦使), 첨절제사(僉節制使), 우후(虞候: 정4품까지 있음), 기사장(騎士將), 선전관(宣傳官).



● 정4품

 

[고려]

1060년(문종 14) 문산계(文散階)를 정할 때 상ㆍ하로 나누어 상을 정의대부(正議大夫), 하를 통의대부(通議大夫)라고 하였다가 하나로 통합하였다. 공민왕 때 다시 상ㆍ하로 나누었다. 무산계(武散階)는 처음에 정한 상의 중무장군(中武將軍), 하의 장무장군(將武將軍)을 말기까지 두었다.

 

정4품 문관직으로는 간관(諫官)인 좌간의대부(左諫議大夫)ㆍ우간의대부, 6부(六部)의 시랑(侍郞), 한림원(翰林院) 등의 학사(學士)가 대표적인 관직이었고, 그 밖에 경(卿)ㆍ판사(判事) 등이 있었다.

 

무관직으로는 2군(軍)ㆍ6위(衛)의 장군이 있었는데, 정원이 49명이었다.

정4품관은 1076년(문종 30) 개정된 전시과(田柴科)의 6∼8과(科)에 해당되어 전지(田地) 75∼65결(結), 시지(柴地:연료림) 45∼35결을 녹봉으로 지급받았다.



[조선]

상ㆍ하, 동반(東班)ㆍ서반(西班)ㆍ종친의 구별이 있었다. 문관직으로는 사인(舍人)ㆍ응교(應敎)ㆍ수찬관(修撰官)ㆍ편수관(編修官)ㆍ시강관(侍講官)ㆍ진선(進善)ㆍ필선(弼善)ㆍ사예(司藝)ㆍ사업(司業)ㆍ장령(掌令) 등이 있었고, 외관직(外官職)은 없었다. 무관직으로는 호군(護軍)ㆍ선전관(宣傳官), 외관직으로는 수군우후(水軍虞候)가 있었다.

 

정4품관은 1439년(세종 21) 정비된 녹과(祿科)의 제7과(科)에 해당되어 중미(中米) 8석, 조미(糙米) 25석, 전미(田米) 2석, 황두(黃豆) 13석, 소맥 6석, 주(紬) 2필, 정포(正布) 12필, 저화(楮貨) 6장을 녹봉으로 지급받았다.

수정(守正), 전첨(典籤), 사인(舍人), 장령(掌令), 시강관(侍講官), 응교(應校), 진선(進善), 필선(弼善), 겸필선(兼弼善), 사예(司藝), 사업(司業), 봉례(奉禮), 호군(護軍), 별제(別提: 수성금화사의 관직), 첨정(僉正: 종4품까지 있음), 선전관(宣傳官), 도선(導善), 우후(虞候), 제검(提檢: 종4품까지 있음).



● 종4품

 

[고려]

18품계 중의 제8등급에 해당한다. 고려시대 종4품 문산계(文散階)는 처음에 상(上)을 대중대부(大中大夫), 하를 중대부(中大夫)로 정하였다가 다시 하나로 통합하는 등 여러 차례 고쳤으나, 무산계는 상을 선위장군(宣威將軍), 하를 명위장군(明威將軍)으로 정하여 끝까지 고치지 않았다.

 

문관직으로는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의 급사중(給事中)ㆍ중서사인(中書舍人), 삼사(三司)의 부사(副使)ㆍ지사(知事), 어사대(御史臺)의 지사(知事)ㆍ중승(中丞), 국자감(國子監)의 사업(司業), 비서성(秘書省)을 비롯한 각 감(監)ㆍ대(臺)의 소감(少監), 위위시(衛尉寺) 등의 소경(少卿)이 가장 많았다. 무관직은 설정되지 않았다.

 


[조선]

동반(東班)ㆍ종친(宗親)ㆍ서반(西班), 그리고 상ㆍ하의 구별이 있었는데, 1865년(고종 2) 종친의 관계 명을 없애고 동반으로 합쳤다. 문관직으로는 충훈부(忠勳府)ㆍ의금부 등의 경력(經歷), 홍문관(弘文館)의 부응교(副應敎) 등이 대표적인 관직이고, 각 시(寺)ㆍ감(監)ㆍ원(院)의 첨정(僉正)ㆍ제검(提檢)이 가장 많았다.

 

외관직(外官職)으로는 숭의전(崇義殿)의 수(守), 각 도의 군수(郡守), 평양부의 서윤(庶尹) 등이 있었다.

무관직으로는 중추부(中樞府)ㆍ오위도총부(五衛都摠府)의 경력, 오위의 부호군(副護軍), 훈련원의 첨정(僉正), 선전관청의 선전관, 훈련원감을 비롯한 각 군영의 외방 겸 파총(外方兼把摠), 관리영(管理營)의 종사관(從事官)이 있었고, 외관직으로는 각 도의 병마동첨절제사(兵馬同僉節制使)ㆍ수군동첨절제사ㆍ병마만호(兵馬萬戶)ㆍ수군만호 등이 있었다.

 

종4품관은 녹과(祿科)의 제8과(科)에 해당되어 중미 8석, 조미(糙米) 23석, 전미(田米) 2석, 황두(黃豆) 12석, 소맥 6석, 주(紬) 2필을 연봉으로 받았다.

경력(經歷), 부응교(副應敎), 서윤(庶尹), 수(守)=사(司), 창(倉)의 관직, 부수(副守), 교감(校勘), 부호군(副護軍), 군수(郡守), 유영별장(留營別將), 성기별장(城機別將), 파총(把摠), 외방겸파총(外方兼把摠), 선전관(宣傳官), 제검(提檢), 동첨절제사(同僉節制使), 만호(萬戶).



● 정5품

 

[고려

]1060년(문종 14) 문산계(文散階)를 정할 때 상ㆍ하로 나누어 상을 중산대부(中散大夫), 하를 조의대부(朝議大夫)라고 하였다가 뒤에 하나로 통합하고 명칭도 여러 번 변경하였다. 무산계(武散階)는 995년(성종 14) 상을 정원장군(定遠將軍), 하를 영원장군(寧遠將軍)이라 하고 말기 까지 바꾸지 않았다.

 

정5품 문관직으로는 낭중(郞中)이 대표적인 관직이었고, 판관(判官)ㆍ시강학사(侍講學士)ㆍ사(使)ㆍ인진사(引進使) 등이 있었으며, 무관직으로는 2군(軍)과 6위(衛)의 중랑장(中郞將)이 있었다. 정5품관은 전시과(田柴科)의 8과(科)에 해당되어 전지(田地) 60결(結)과 시지(柴地:연료림) 21결을 녹봉으로 지급받았다.



[조선]

상ㆍ하의 구분과 동반(東班)ㆍ서반(西班)ㆍ종친(宗親) 및 동반 토관직(土官職)ㆍ서반 토관직으로 구별되었다. 문관직으로서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는 이조와 병조의 정랑(正郞)이 있었다.

 

이 밖에 지평(持平)ㆍ헌납(獻納)ㆍ교리(校理)ㆍ검상(檢詳)ㆍ사의(司議)ㆍ시독관(侍讀官)ㆍ문학(文學)ㆍ직강(直講)ㆍ기주관(記注官) 등이 있었다.

 

무관직으로는 사직(司直)ㆍ선전관(宣傳官)ㆍ좌익위(左翼衛)ㆍ우익위, 토관직으로는 도무(都務)ㆍ여직(勵直)이 있었다. 정5품관은 녹과(祿科)의 제9과(科)에 해당되어, 중미(中米) 6석, 조미(糙米) 21석, 전미(田米) 2석, 황두(黃豆) 11석, 소맥 5석, 주(紬) 1필, 정포(正布) 11필, 저화(楮貨) 64장을 녹봉으로 지급받았다.

령(令: 종친부의 벼슬), 전부(典簿), 검상(檢詳), 정랑(正郞), 지평(持平), 좌익위(左翊衛), 우익위(右翊衛), 사의(司議), 헌납(獻納), 시독관(侍讀官), 교리(校理), 겸교리(兼校理), 문학(文學), 겸문학(兼文學), 직강(直講), 기주관(記注官: 종5품까지 있음), 찬의(贊儀), 별좌(別坐: 종5품까지 있음), 전훈(典訓), 전수(典需), 사직(司直).



● 종5품

 

[고려]

문관직으로는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의 기거주(起居注)ㆍ기거랑(起居郞)ㆍ기거사인(起居舍人)ㆍ어사대(御史臺)의 잡단(雜端)ㆍ시어사(侍御史)ㆍ비서성(秘書省)ㆍ전중성(殿中省)의 승(丞), 각문(閣門)의 인진부사(引進副使), 사천대(司天臺)의 정(正), 태사국(太史局) 등의 영(令), 태의감(太醫監)의 소감(少監) 등이 있으며, 무관직은 설정되지 않았다.



[조선]

동반(東班)ㆍ종친(宗親)ㆍ서반(西班)ㆍ토관(土官)의 동반직, 토관의 서반직으로 구분되었다. 문관직으로는 판관(判官)이 압도적으로 많고, 영(令)ㆍ도사(都事) 등이 그 다음을 차지하였다. 대표적인 관직으로는 교리(校理)ㆍ권독(勸讀) 정도이고, 지방관으로는 현령(縣令)ㆍ도사ㆍ판관이 대부분이었다.

 

무관직으로는 선전관, 좌ㆍ우사어(左右司禦)ㆍ판관ㆍ도사ㆍ부사직(副司直)ㆍ종사관(從事官) 등이 있었다. 종5품관은 녹과(祿科)의 10과(科)에 해당되어 중미(中米) 6석, 조미(糙米) 20석, 전미(田米) 2석, 황두(黃豆) 10석, 소맥 5석, 주(紬) 1필, 정포(正布) 10필, 저화(楮貨) 4장을 연봉으로 받았다.

 

부령(副令: 종친부의 벼슬), 판관(判官), 도사(都事: 종9품까지 있음), 별좌(別坐), 부교리(副敎理), 좌권독(左勸讀), 우권독(右勸讀), 좌사어(左司禦), 우사어(右司禦), 기주관(記注官), 령(令)=서(署), 궁(宮), 고(庫)등의 벼슬, 현령(縣令), 부사직(副司直), 선전관(宣傳官).



● 정6품

 

[고려]

1060년(문종 14) 문산계(文散階)를 정할 때 상ㆍ하로 나누어 상을 조의랑(朝議郞), 하를 승의랑(承議郞)이라 하였다가 충렬왕 때부터 하나로 통합하였고, 명칭도 여러 번 고쳤다. 무산계(武散階)는 995년(성종 14) 상을 요무장군(耀武將軍), 하를 요무부위(耀武副尉)라고 하고 말기까지 바꾸지 않았다.

 

정6품 문관직으로는 좌보궐(左補闕)ㆍ우보궐ㆍ원외랑(員外郞)ㆍ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ㆍ봉어(奉御)ㆍ영(令) 등이 있고, 무관직에는 낭장(郞將)ㆍ별장(別將)이 있었다. 정6품관은 전시과(田柴科)의 8∼11과(科)에 해당되어 전지(田地) 60∼45결(結), 시지(柴地:연료림) 21∼12결을 녹봉으로 지급받았다.



[조선]

상ㆍ하의 구분과 동반(東班)ㆍ종친ㆍ서반(西班)ㆍ동반 잡직(雜職)ㆍ서반 잡직ㆍ동반 토관직(土官職)ㆍ서반 토관직의 구별이 있었다. 문관직으로 가장 대표적인 관직은 문ㆍ무관의 인사를 좌우하였던 이조와 병조의 좌랑(佐郞)이었다. 이 밖에 감찰ㆍ사평(司評)ㆍ정언(正言)ㆍ검토관(檢討官)ㆍ수찬(修撰)ㆍ사서(司書)ㆍ전적(典籍)ㆍ교검(校檢) 등이 있었다.

 

무관직으로는 선전관(宣傳官)ㆍ익찬(翊贊) 등이 있었다. 정6품관은 녹과(祿科)의 11과에 해당되어 중미(中米) 5석, 조미(糙米) 18석, 전미(田米) 2석, 황두(黃豆) 9석, 소맥 4석, 주(紬) 1필, 정포(正布) 10필, 저화(楮貨) 4장을 녹봉으로 지급받았다.

감(監 : 종친부의 벼슬), 좌랑(佐郞), 감찰(監察), 사평(司評), 정언(正言), 검토관(檢討官), 수찬(修撰), 사서(司書), 겸사서(兼司書), 전적(典籍), 기사관(記事官: 정9품까지 있음), 교검(校檢), 전악(典樂), 사회(司誨), 별제(別提: 종6품까지 있음), 평사(評事), 사과(司果), 장원(掌苑), 사포(司圃), 좌익찬(左翊贊), 우익찬(右翊贊).



● 종6품

 

[고려]

문관직으로는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의 좌ㆍ우습유(左右拾遺), 어사대(御史臺)의 감찰어사ㆍ문리(文吏), 국자감(國子監) 등의 승(丞), 비서성(秘書省)의 낭(郞), 전중성(殿中省)의 내급사(內給事), 상약국(尙藥局)의 시의(侍醫), 좌ㆍ우창(左右倉) 등의 부사(副使)가 있었다. 무관직으로는 6위(衛)의 장사(長史)가 있었다.



[조선]

동반(東班)ㆍ서반(西班), 동반의 잡직(雜職)ㆍ토관직(土官職), 서반의 잡직ㆍ토관직으로 구분되었다. 문관직으로는 홍문관(弘文館)의 부수찬(副修撰), 규장각(奎章閣)의 직각(直閣), 세손시강원(世孫侍講院)의 좌ㆍ우찬독(左右贊讀) 등이 대표적이고, 주부(主簿)ㆍ교수(敎授)ㆍ별제(別提)가 거의 차지하였으며, 지방관으로는 현감(縣監)ㆍ찰방(察訪)ㆍ교수 등이 있었다.

 

무관직으로는 부장(部將)ㆍ선전관, 좌ㆍ우위수(左右衛率)ㆍ부사과(副司果), 좌ㆍ우장사(左右長史)ㆍ낭청(郞廳)ㆍ종사관(從事官) 등이 있고, 외관직으로는 병마절제도위(兵馬節制都尉)ㆍ감목관(監牧官)이 있었다.

 

종6품은 참상관(參上官)의 최하위 계급으로, 문과(文科)에 장원급제한 1명에게만 주는 벼슬이다. 종6품관은 녹과(祿科)의 12과(科)에 해당되어 중미(中米) 5석, 조미(糙米) 17석, 전미(田米) 2석, 황두(黃豆) 8석, 소맥 4석, 주(紬) 1필, 정포(正布) 9필, 저화(楮貨) 4장을 연봉으로 받았다.



주학교수(籌學敎授), 별전수(別典需), 율학교수(律學敎授), 별제(別提), 천문학교수(天文學敎授), 지리학교수(地理學敎授), 천문학겸교수(天文學兼敎授), 지리학겸교수(地理學兼敎授), 명과학교수(命課學敎授), 교수(敎授), 부수찬(副修撰), 좌찬독(左贊讀), 우찬독(右贊讀), 좌위솔(左衛率), 우위솔(右衛率), 좌장사(左長史), 우장사(右長史), 기사관(記事官), 인의(仁儀), 부전악(副典樂), 사축(司畜), 사지(司紙), 의학교수(醫學敎授), 한학교수(漢學敎授), 선화(善화), 부전수(副典需), 영(令)=능(陵), 찰방(察訪), 현감(縣監), 절제도위(節制都尉), 감목관(監牧官), 종사관(從事官), 부장(部將), 낭청(郞廳: 선혜청의 벼슬), 부사과(副司果), 수문장(守門將: 종九품까지 있음).

 

● 정7품

 

[고려]

정7품의 문산계(文散階)를 처음에 상ㆍ하로 구분하였다가 충렬왕 때부터 하나로 통합하였고, 명칭도 여러 차례 고쳤다. 무산계(武散階)는 상(上)을 치과교위(致果校尉), 하(下)를 치과부위(致果副尉)로 정하여 말기까지 바꾸지 않았다.

 

문관직으로는 당후관(堂後官)ㆍ국자박사(國子博士)ㆍ승(丞)ㆍ직장(直長)ㆍ영(令) 등이 있고, 무관직으로는 2군(軍) 6위(衛)의 별장(別將)이 있었다. 정7품은 맡은 관직에 따라 전시과(田柴科)의 8∼13과(科)에 해당되어 전지(田地) 60∼35결(結), 시지(柴地:연료림) 21∼8결을 녹봉으로 지급받았다.



[조선]

동반(東班)ㆍ서반(西班)ㆍ동반 잡직(雜職)ㆍ서반 잡직ㆍ동반 토관직(土官職)ㆍ서반 토관직으로 구분하고, 정7품부터 종9품까지를 참하관(參下官)이라 하여 최하위의 계급층을 형성하였다. 문관직으로는 주서(注書)ㆍ사경(司經)ㆍ박사ㆍ봉교(奉敎)ㆍ설서(說書)ㆍ자의(諮議) 등이 있고, 무관직으로는 사정(司正)ㆍ선전관(宣傳官)ㆍ참군(參軍)ㆍ부솔(副率) 등이 있었다.

 

정7품은 녹과(祿科)의 13과(科)에 해당되어 중미(中米) 3석, 조미(糙米) 15석, 전미(田米) 2석, 황두(黃豆) 5석, 소맥 3석, 정포(正布) 7필, 저화(楮貨) 2장을 연봉으로 받았다.

주서(注書), 봉교(奉敎), 대교(待敎: 정9품까지 있음), 박사(博士), 사변가주서(事變假注書), 사경(司經), 설저(說書), 겸설서(兼說書), 자의(諮議), 전률(典律), 참군(參軍), 좌부솔(左副率), 우부솔(右副率), 낭청(郞廳), 기사관(記事官), 수문장(守門將).



● 종7품

 

[고려]

문관의 관직으로 주부(注簿)와 영(令)ㆍ승(丞)이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무관직은 설정되지 않았다.



[조선]

동반(東班)ㆍ서반(西班), 동반의 잡직(雜職)ㆍ토관직(土官職), 서반의 잡직ㆍ토관직으로 구분되었다.

문관직은 거의 직장(直長)이고, 그 밖에 산사(算士)ㆍ명률(明律)ㆍ전회(典會)ㆍ상설(常設) 등이 있으며, 지방관직은 없었다.

 

무관직은 부사정(副司正)ㆍ선전관, 좌ㆍ우종사(左右從史)가 있었다.

 

종7품관은 녹과(祿科)의 14과에 해당되어 중미(中米) 3석, 조미(糙米) 14석, 전미(田米) 2석, 황두(黃豆) 4석, 소맥 3석,정포(正布) 6필, 저화(楮貨) 2장을 연봉으로 받았다. 직장(直長), 좌종사(左從史), 우종사(右從史), 사(士: 호조의 벼슬), 명률(明律), 부전률(副典律), 선회(善繪), 부사정(副司正), 별회(別會).



● 정8품

 

[고려]

문관의 정8품을 1060년(문종 14) 문산계(文散階)가 제정될 당시 상ㆍ하로 구분하였으나, 충렬왕 때부터 하나로 통합하여 그 명칭도 여러 번 바뀌었다. 문관의 정8품은 995년(성종 14) 무산계(武散階)가 제정될 때부터 말기까지 상(上)을 선절교위(宣折校尉), 하(下)를 선절부위(宣折副尉)라 하였다.

 

문관직으로는 사문박사(四門博士)ㆍ주부(注簿)ㆍ영(令)ㆍ승(丞) 등이, 무관직으로는 산원(散員)ㆍ녹사(錄事)가 있었다. 정8품관은 1076년(문종 30) 개정된 전시과(田柴科)의 12∼14과(科)에 해당되어 40∼30결(結)의 전지(田地)와 10∼5결의 시지(柴地:연료림)를 녹봉으로 지급받았다.



[조선]

동반(東班)ㆍ서반(西班)ㆍ동반 잡직(雜職)ㆍ서반 잡직ㆍ동반 토관직(土官職)ㆍ서반 토관직으로 구분하였다. 문관직으로는 사록(司錄)ㆍ저작(著作)ㆍ설경(說經)ㆍ대교(待敎)ㆍ학정(學正)ㆍ부직장(副直長)ㆍ별검(別檢)ㆍ상제(尙除) 등이 있고, 무관직으로는 선전관(宣傳官)ㆍ사맹(司猛)ㆍ좌시직(左侍直)ㆍ우시직 등이 있었다.

 

정8품은 세종 때에 정비된 녹과(祿科)의 15과(科)에 해당되어 중미(中米) 2석ㆍ조미(糙米) 12석, 전미(田米) 1석, 황두(黃豆) 4석, 소맥 2석, 정포(正布) 4필, 저화(楮貨) 2매를 연봉으로 지급받았다. 사록(司錄), 저작(著作), 설경(說經), 학정(學正), 부직장(副直長), 좌시직(左侍直), 우시직(右侍直), 전음(典音), 별검(別檢: 종8품까지 있음)), 사맹(司猛).



● 종8품

 

[고려]

문관의 관직으로는 승(丞)ㆍ영(令)ㆍ주부(注簿)가 거의 차지하였다. 무관의 관직은 설정되지 않았다.



[조선]

동반(東班)ㆍ서반(西班), 동반의 잡직(雜職)ㆍ토관직(土官職), 서반의 잡직ㆍ토관직으로 구분되었다.

문관직은 거의 봉사(奉事)가 차지하고, 그 밖에 도사(都事)ㆍ계사(計士)ㆍ심률(審律)ㆍ별검(別檢) 등이 있다.

 

무관직으로는 선전관ㆍ부사맹(副司猛)이 있다. 종8품관은 녹과(祿科)의 제16과(科)에 해당되어 중미(中米) 2석, 조미(糙米) 10석, 전미(田米) 1석, 황두(黃豆) 4석, 소맥 2석, 정포(正布) 4필, 저화(楮貨) 2장을 연봉으로 받았다. 계사(計士), 심율(審律), 봉사(奉事), 부전음(副典音), 별검(別檢), 전곡(典穀), 화리(화吏), 부사맹(副司猛).



● 정9품

 

[고려]

1060년(문종 14) 문산계(文散階)를 처음으로 제정할 때 정9품을 상ㆍ하로 나누어 상을 유림랑(儒林郞), 하를 등사랑(登仕郞)이라 하다가 1308년(충렬왕 34) 정9품 상ㆍ하와 종9품 상ㆍ하의 명호(名號)를 하나로 통합해서 통사랑(通仕郞)이라 하였고, 1356년(공민왕 5) 등사랑(登仕郞), 1362년 다시 통사랑으로, 1369년 또다시 등사랑으로 고쳤다.

 

문산계보다 앞서 995년(성종 14) 제정한 무산계는 정9품의 상을 인용교위(仁勇校尉), 하를 인용부위(仁勇副尉)라 하였다. 또한 향직(鄕職) 정9품은 상ㆍ하 구분없이 군윤(軍尹)이라 하였다. 정9품의 관원은 1076년(문종 30) 개정된 전시과(田柴科)의 13∼15과(科)에 해당되어 25∼35결(結)의 전지(田地)와, 8∼5결의 시지(柴地:燃料林)를 국가로부터 지급받았다.



[조선]

동반(東班)의 종사랑(從仕郞), 잡직(雜職)의 복근랑(服勤郞), 토관직(土官職)의 계사랑(啓仕郞)과, 서반(西班)의 효력부위(效方副尉), 잡직의 치력부위(致力副尉), 토관직의 여력도위(勵力徒尉)로 구분되어 있었다.

 

정9품 문관의 관직으로는 검열(檢閱)ㆍ전경(典經)ㆍ대교(待敎)ㆍ정자(正字)ㆍ학록(學錄)ㆍ훈도(訓導)ㆍ부봉사(副奉事) 등이 있었다.

 

무관의 관직으로는 사용(司勇)ㆍ선전관(宣傳官)ㆍ세마(洗馬) 등이 있었다. 한편 정9품관은 1439년(세종 21)에 정비된 녹과(綠科)의 17과에 해당되어 조미(糙米) 10석, 전미(田米) 1석, 황두(黃豆) 3석, 소맥 1석, 정포(正布) 3필, 저화(楮貨) 1장을 연봉으로 지급받았다.

 

주학훈도(籌學訓導), 율학훈도(律學訓導), 정자(正字), 전경(典經), 검열(檢閱), 좌세마(左洗馬), 우세마(右洗馬), 학록(學錄), 부봉사(副奉事), 전성(典聲), 천문학훈도(天文學訓導), 지리학훈도(地理學訓導), 명과학훈도(命課學訓導), 의학훈도(醫學訓導), 한학훈도(漢學訓導), 몽학훈도(蒙學訓導), 왜학훈도(倭學訓導), 여진학훈도(女眞學訓導), 사용(司勇).



● 종9품

 

[고려]

18관등 가운데 최하위 벼슬이었다. 고려시대에는 문관의 관직으로 정자(正字). 교감(校勘). 박사. 조교(助敎). 의관(醫官)ㆍ녹사(錄事)ㆍ학유(學論)ㆍ직학(直學)ㆍ감후(監候)ㆍ사력(司歷) 등이 있었고, 무관의 관직으로는 대정(隊正)ㆍ대장(隊長)이 있었다.



[조선]

동반(東班), 서반(西班), 동반의 잡직(雜職)과 토관직(土官職), 서반의 잡직과 토관직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문관직으로는 참봉(參奉)ㆍ검률(檢律)ㆍ부정자(副正字)ㆍ학유(學諭)ㆍ전화(典貨), 외관직으로는 훈도(訓導)ㆍ심약(審藥)ㆍ검률ㆍ역승(驛丞)ㆍ참봉 등이 있었다. 무관직으로는 선전관ㆍ부사용(副司勇)ㆍ수문장(守門將)ㆍ초관(哨官), 외관직으로는 별장(別將)ㆍ권관(權官)이 있었다. 종9품관은 녹과(祿科)의 18과(科)에 해당되어 조미(糙米) 8석, 전미(田米) 1석, 황두(黃豆) 2석, 소맥 1석, 정포(正布) 2필, 저화(楮貨) 1장을 연봉으로 받았다.

회사(會士), 부정자(副正字), 분교관(分敎官), 학유(學諭), 겸인의(兼引儀), 가인의(假引儀), 참봉(參奉), 감역관(監役官), 가감역관(假監役官), 부전성(副典聲), 전화(典貨), 회리(繪吏), 권관(權管), 훈도(訓導), 심약(審藥), 검률(檢律), 부사용(副司勇), 초관(哨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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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인의 품계

 

● 정경부인(貞敬夫人)

     외명부(外命婦)의 하나로, 정(正)ㆍ종(從) 1품 문ㆍ무관의 처에게 주던 칭호인데, 공주. 옹주ㆍ부부인(府人)

   ㆍ봉보부인(奉保夫人 : 임금의 유모)과 동격의 대우를 받았다.



● 정부인(貞夫人)

     정ㆍ종 2품 문ㆍ무관(文武官)의 처에게 남편의 품계에 따라 주던 것으로, 왕세자의 적출녀(嫡出女)인 군(郡

    主), 종친의 처인 현부인(縣夫人)과 동격의 대우를 받았다.



● 숙부인(淑夫人)

     조선시대 문ㆍ무관 정3품 당상관(堂上官)의 외명부(外命婦).문관인 통정대부(通政大夫), 무관인 절충장(折

    衝將軍)의 적처(嫡妻)에게 내린 작호(爵號)이다.



● 숙인(淑人)

    정3품 당하관인 문관의 통훈대부(通訓大夫), 무관인 어모장군(禦母將軍), 종3품 상위 문관인 중직대부(中直

    夫), 하위인 중훈대부(中訓大夫) 및 종3품 상위 무관인 건공장군(建功將軍), 하위인 보공장군(保功將軍)의

    처(嫡妻)에게 내린 작호이다.



● 영인(令人)

     정, 종4품관의 처에게 내렸다. 문무관 4품에 오른 남편들의 작호는 봉정대부(奉正大夫), 조산대부(朝散大夫),

    진위장군(振威將軍), 정략장군(定略將軍) 등으로 나누어졌으나, 부인들은 통틀어 영인이라고 하였다.



● 공인(恭人)

    조선시대 외명부(外命婦)의 정ㆍ종5품 문무관의 처에게 붙인 작호(爵號).

 


● 의인(宜人)

    조선시대의 외명부는 왕ㆍ왕세자의 딸, 종친(宗親)의 처(妻), 문무관(文武官)의 처로 구분하여 봉작(封爵)

    는데, 의인은 정6품과 종6품 문무관의 처에게 내린 명호이다.



● 안인(安人)

    정7품ㆍ종7품 문무관의 아내에게 주던 품계.



● 단인(端人)

   정(正), 종(從) 8품 문무관의 아내에게 내린 작호



● 유인(孺人)

    정ㆍ종9품(從九品) 문무관(文武官)의 아내인 외명부(外命婦)의 품계(品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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