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년 당시 대구 컬러사진 120장 공개 '화제'
한국전쟁 직후 대구의 생활상을 담은 슬라이드 컬러사진이 한꺼번에 120여점이 나왔다.
이 사진들은 현재 미국에 사는 아담(80)씨가 1954년부터 2년간 대구에 거주할 때 촬영한 것으로 한 웹사이트에 맛보기로 올려놓은 것을 매일신문이 아담씨를 통해 입수한 것.
강위원 경일대교수(사진학)는 "지난 50년대의 대구모습을 담은 컬러사진은 매우 희귀하다"며 "이처럼 많은 컬러사진이 무더기로 나오고, 게다가 정확한 연대와 장소가 확인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윤용진 전 경북대 박물관장은 사진속에 담긴 당시 상황을 설명하면서 "종전 직후 재건하는 대구의 모습을 다시 보니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매일신문] 안상호기자 shahn@msnet.co.kr
↑아양교 쪽에서 대구철교 방향을 바라보고 촬영했다. 6.25전쟁 직후의 구호성 문구가 눈에 띈다.
↑학교 앞 도로에 나온 어린이가 '아동횡단로'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등교길 교통정리 봉사를 하고 있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4년 대구 동인동 일대에 정착한 피란민촌입니다.
↑당시에 자주 발생하였던 피닌민 촌의 화재 모습이다.
↑줄을 서서 분유 배급을 기다리는 피난민아이들의 모습입니다.
Adam의 기억하나는 그 당시 한국인들은 우유를 잘 소화시키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것을 잘 모르고 진하게
분유를 주었다가 모두가 배탈이 나, 한동안 우유 배급은 거부했었다는 일화를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분유 배급을 위하여 공공 화덕에서 더운물에 분유를 타고 있는 모습입니다.
↑피난민촌에서 우유를 받아 마시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입니다.
오늘날 2007년으로 보면 지금은 최소한 53세 이상의 세대들입니다.
↑어린 여자아이가 무거워 보이는 숯[차콜(Charcoal)] 한 푸 대를 이고 가는 모습입니다.
↑대구 복현동 부근 고아원 어린이들이 달성예배당 앞에서 선물을 받은 뒤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뒤편 멀리
보이는 붉은 건물은 경북대 과학관이며 꽃다발을 들고 서있는 사람이 아담(Adam)씨다.
↑노인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 Adam이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사진이라고 했다.
↑가을 추수를 들녘 모습 입니다.
↑추수를 도와주고 있는 Adam의 젊은 시절 모습입니다. Adam은 지게에 대하여 무거운 짐을 지어도 힘들지
않게 설계된 아주 훌륭한 물건이었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근농일(6월 9일) 농민대회를 열고 있다. 농사로 보국, 충성하겠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이곳이 어딘지는 대구사람도 잘 모를 듯 합니다. 소시장의 풍경입니다. Adam에게 인상 깊었던 한국의 모습은
모두가 검은 머리에 하얀 옷을 입었다는 거였다고 합니다.
↑시장의 한켠....카메라를 의식한 듯 어색한 모습의 두 여인!
↑구호물품인 옷가지를 받아 가시는 아주머니와 등에 업힌 귀엽게 생긴 천진한 아이의 모습 입니다.
↑현재의 Adam과 아내 Alice의 내외분 모습입니다.
Adam이 한국에 갔을 당시엔 의대를 졸업하고 처음으로 자원봉사를 나간 곳이라고 합니다.
이후 몇 나라를 더 돌아다니다가 UTMB(University of Texas Medical Branch)에서 의사 및 교수를 하다가 지금은 은퇴를 하고 교회에서 외국인들을 위한 영어수업 등의 봉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서재에는 그동안 다녔던 30여 개국이 넘는 나라들의 사진들이 있었습니다. 한국에 대해서는 너무 오래된 기억들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해서 몇 장의 오늘날의 한국사진과 영상을 보여주었더니 한번 가보고 싶은데, 나이가 많아서 이젠 여행하기 힘들 거라며 웃어주었습니다.
제가 태어나기도 한참 전의 빛바랜 칼라사진들이 묘한 느낌을 가지게 하네요. 100여장이 넘는 한국전쟁 후의 대구의 모습들이 있었습니다만, 블로그 한 페이지에 올릴 수 있느 양이 한정되어 일단 몇 장만 올려 봅니다.
올라와 있는 모든 사진은 Adam이 사용을 흔쾌히 허락 해 주었습니다.
두 번째 1954년 대구의 사진들 입니다. 싸구려 필름 스케너를 가지고 있었던 덕분에, 130장 정도의 슬라이드 필름을 스켄하는데 5시간 정도가 걸렸습니다. 학생인 저로서는 5시간의 투자는 큰 것이죠.ㅎ 물론 50년 동안 사진을 간직하고 있었던 Adam에 비하면 새 발의 피겠지만요.
왼쪽이 Adam이고 오른쪽은 친구인 burkholder라고 쓰 있네요.
맞는 이름인지는 모르겠습니다. Jeep을 타고 가다가 전복사고를 당한 후 대구의 한 군병원에서 치료 후 기념으로 찍었다고 합니다.
지금의 사진과 비교했을 때 눈빛이 강렬 하군요.
↑원조물품 환영행사에 학생들이 동원 된 것 같은 사진입니다. 전쟁후의 모습들인데도 밝은 표정들입니다.
↑이 사진은 전쟁고아들을 위한 행사라고 하는데. 고아가 아닌 사람들도 행사에 많이 모였습니다.
↑Outdoor Meeting이라고 쓰있는 사진입니다. Adam 말대로 모두가 검은 머리에 흰옷을 입었습니다.
↑교회에서 운영하는 고아원을 방문한 Adam과 아이들의 사진입니다.
오른쪽의 양복아저씨 주윤발이랑 좀 비슷해 보입니다. ㅎ
↑Adam의 목에 걸린 사진기의 기종은 알 수 없지만 이 사진들을 찍은 사진기라고 합니다.
Adam은 저 한복을 입은 여자아이가 인상 깊었다고 합니다.
↑생활형편이 좀 괜찮은 집의 자녀들인가 봅니다. 비로도 치마와 양장을 한 자매들입니다.
↑또 다른 피난민촌의 아이들이 우유를 마시는 사진입니다.
개인적으로 사진속 분들의 지금 근황들이 궁금해지네요.
↑사진의 제목이 'boy wearing only rubber shoes'입니다. 요즘은 보기 드물지만
제 어렸을 때도 저러고 다니는 아이들이 종종 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당시 보기 드물었을 직업여성이군요. 교통정리 아가씨 정말 멋집니다.^^;
↑Adam의 사진 중 유일한 흑백사진의 김치 독들의 사진입니다.
공동으로 사용한 장독대 같기도 하고....정확한 것은 알 수가 없습니다.
↑가정집에서 길은 돼지를 사 가지고 가는 중개인 돼지 장사 아저씨의 모습인가 봅니다.
옛날에는 이른 모습 흔히 볼 수 있었습니다.
↑사진속의 아가씨는 Lois Khans이라고 하네요. 서양자동차와 서양아가씨의 모습에 동네아저씨들이 구경
하느라다 모여 있습니다. 좀 민망한듯한 모습으로 사진을 찍었네요.
↑당시 대구에 있던 한 유치원 이라고 합니다. 일본식 건물이 눈에 뜁니다. 그래도 저기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
들은 당시 여유가 있는 가정의 자제들이겠지요.
↑마을의 공동 화로에서 분유를 타고 있는 사진입니다.
↑놀이터 사진입니다.
↑우(牛=소) 시장에서 소의 건상 상태(나이)를 보는 소 상인.
↑우(牛)시장에서 만난 삿갓[노립(蘆笠)을 쓴 아저씨가 Adam의 눈에는 신기해 보였다고 합니다,
↑또 다른 소시장에서 담뱃대를 파는 상인 모습.
↑한국전쟁 직후인 1954년 대구 동인동에 있던 유치원 어린이 사진이라고 쓰여져있습니다.
↑분유를 데우고있는 모습.
↑피난민촌에서 분유를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
↑피난민촌 풍경
↑피난민촌에서 아이들에게 분유 배급중인 모습입니다.
↑이 사진에는 부산에서 찍은 사진이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상표는 알 수 없지만 맥주켄(깡통)을 사용하여 지붕을 덮은 건물입니다. 당시에는 많이 유행했던 모습입니다.
↑전쟁의 흔적이 남아있는 사진입니다.
↑군용트럭을 이용해 구호 물품을 많이 날랐다고 합니다. 1990년대의 군용 60트럭(GMC)과 디자인이 같아 보입니다.
↑대공용 기관총 옆에 서있는 군인^^
↑어떤 사진 모습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구호물품으로 나눠주는 의류를 받기위해 모여있는 모습이라고 합니다.
↑어느 시골 풍경입니다.
↑수확기를 두고있는 배추밭 입니다.
↑모판의 피를 뽑아내고있는 모습
2007/02/09 17:29
http://blog.naver.com/texasatm/150014344545
참 정신없던 지난 몇 일 이었습니다.
아는 사람들만 찾아오던 한적한 제 블로그를 들어간 3일전 믿을 수 없는 방문횟수에 네이버에 오류가 생겼나 하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인터넷 신문에 제 블로그가 올라간 것을 알게 되었고.....
첫날 2500명 이상의 사람들....
둘째 날 15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찾아 주었습니다.
사진을 보면서 느낄 수 있었던 말못 할 감정을 어설픈 제블로그에 올리자 많은 사람들이 찾아준 것입니다.
수많은 방문과 댓글... 다행이 악플 하나 없는 댓글과 Adam선생님에 대한 감사 인사,
사진을 올린 저에 대한 격려로 아내와 저는 많이 흐뭇했습니다.
그 와중 대구의 매일신문과 대구KBS에서 연락이 왔고...
먼저 저에게 연락을 하신 매일신문의 사진부 안기자님에게 사진과 내용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참 보기 힘든 우리나라의 근대사 사진, 더군다나 컬러인 사진.....
맘 같아서는 1954년 이후 한국을 잘 모르시는 Adam선생님을 한국에 초대하고 싶었으나,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아직 학생신분인 저의 입장이...한국사람의 방문이 많지 않은 이곳 Galveston에서 기회가 있으실 때마다 한국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으셨고, 한국의 발전을 보고 듣고 싶으셨다고 합니다.
제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몇 장의 최근 한국사진과 관광공사 홈페이지에 올라온 짧은 홍보 영상물을
DVD에 녹화해 댁에서 보여드리는 것이 다였습니다.
↑대구 매일신문사에서 온 감사편지를 프린트해서 Adam 선생님께 보여드렸습니다.
↑이 공돌이가 리포터흉내를 내며 인터뷰 하는 모습입니다.
↑인터넷에 올라온 사진을 서재에서 보여드리고 설명하는 모습입니다.
아불싸...모뎀을 쓰시고 계셨습니다... 한 페이지 보는데 10분 이상.
서재의 한 벽면엔 이렇게 방문한 나라들의 사진들이 걸려 있습니다. 30여 개국을 방문하셨다고 합니다.
주로 1953부터 Galveston에 온 1967년 까지 전 세계를 다녀 보신듯합니다.
↑한국사진 중 Adam선생님이 가장 좋아 하는 사진입니다.
어르신들이 쓴 갓이 말꼬리로 만들어진 것도 아시고 계셨습니다.
↑이날 인터뷰를 같이한 동네 한인들과 함께한 사진입니다. 다시 한 번 Adam과 Alice에게 감사 드립니다.
오늘의 인터뷰는 이곳 시간 2월 8일 저녁8시에 이루어 졌습니다. 좀더 빠른 인터뷰를 시도하려했으나, 두 분
모두 오늘도 8시까지 봉사활동이 있으시다고 했습니다. 사진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참 욕심없으시고, 검소한
삶을 사시는 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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