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23일 한국의 김장수(金章洙) 국방장관과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은 미국 워싱턴에서 90여 분 간, 계속된 회의 끝에 "오는 2012년 4월17일 한미 연합군사령부를 해체하고 동시에 미군과 한국군간 새로운 지휘, 협조관계로 전환키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다시 말해서 어느 측, 군이 작전을 주도하고, 어느 측, 군이 작전을 지원하느냐가 분명하게 구분 짓게 됐다.
이로서 그 동안 전시작전통제권(약칭 전작권)을 놓고 찬반 시비가 엇갈렸으나 일단 결판이 났다.
전작 권을 단독 행사하는 것이 옳으냐? ‘아직은 시기상조다’를 놓고 격론을 벌여 왔으나 이제 한국군이 떠맡아 행사 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힌 것이다. 외양상 시비는 끝났지만 여전히 불씨는 남아 있다.
백발이 성성한 군의 대선배들은 “철없는 자들 때문에 안보가 불안하게 됐다.”고 개탄하고 있고, 상당수 국민이 여기에 동조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대선 주자들은 입을 모아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재협상을 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하지만 현 한미 양국 정부가 합의한 것을 정권이 바뀐다고 쉽게 재협상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모든 외교 교섭이 정부가 바뀔 때마다 다시 협상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이제 일단 결정된 사항임을 전제로 전시작전 통제권에 대하여 원점에서 몇 가지 오해되고 있는 사항들을 분명히 짚어 보면서, 보완책을 마련함이 현명할 것이다.
첫째, 한미연합 사령관이 전시에 작전 통제권을 행사하는 것은, 주권국가로서 굴욕적인 것이라 말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다. 역대 정부도 모두 현 정부이상으로 자존심이 있었고, 주권을 챙겨왔다. 아니 현 정부보다 현명했다고 평가받아 마땅하다.
작전 통제권 문제는 6.25 북의 남침으로 우리나라가 붕괴되는 위난의 시점에 이승만 대통령이 유엔군 사령관에게 작전권을 넘긴데서 유래된다. 이 대통령이 군사주권을 넘겼다고 경솔히 혹평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를 모르는 소리다.
1950년 7월14일이라는 시점, 한국군이 괴멸상태에 있었다. 우리 국군이 얼마나 인민군 앞에 혼비백산, 무력했으면 뉴욕타임스는 “한국군이 뉴욕의 경찰관 만큼도 전투 능력이 없다.”고 혹평했을까.
서울이 남침 3일 만에 적의 수중에 떨어졌고, 수원-오산 방어선이 무너졌고, 금강 방어선마저 힘없이 무너지는 그 시점에, 이 대통령이 선택할 수 있는 방책으로 무엇이 남았겠는가.
또 이 대통령이 군의 통수권마저 넘긴 것으로 착각해서도 안 된다. 이 대통령은 비록 군의 작전 통제권을 넘겼다 하더라도 뒷짐 지고 있지 않았다. 인천 상륙작전으로 전세가 역전된 후에, 자신의 고집으로 38선을 넘어 반격작전을 전개하여 무력으로 통일을 기하고자 했었다. 유엔의 의지를 꺾고 작전 통제권을 행사한 것이나 다름없다.
휴전이 되고도 상당기간 남북의 군사력은 북이 우세했다. 주한미군이 있어서 겨우 균형을 유지했다. 1970년대부터 중화학공업의 발전으로, 남의 경제력이 우세로 돌아 섰으나 여전히 안보 면에서 취약했다.
그 이유는 첫째, 우리의 전략 개념이 적의 침략을 당하고 나서야 발동하는 방어와 역습 위주로 짜여 있으므로 전쟁의 주도권이 없었다는 점, 둘째는 수도 서울이 너무 전선에서 가깝다는 점 때문이다. 그래서 주한미군의 억제능력으로 한반도의 평화가 유지 가능했다.
월남전에서 실패한 후, 미국은 점차 해외 개입을 피하려 했다.(닉슨 독트린) 그 틈새를 엿본 북측의 도발적 군사노선으로 한반도의 위기가 일촉즉발일 때, 작전통제권을 단독 행사하는 유엔군 사령부 대신, 한미양국이 공동으로 행사하는 한미연합사(CFC)를 1978년 창설하는데 합의했다.
한국이 침략을 당할 때, 양국의 대통령의 합의로 연합사는 작전통제권을 공동 행사하는 구조다. 실제적으로는 미 장성인 연합사령관의 권한이 결정적일지 모르나 조직 그 자체는 어디까지나 한미양국의 공동으로 편성되어 있다.
부사령관은 한국군 장성, 각 참모부도 장이 미군이면 차석은 한국군, 장이 한국군이면 차석은 미군이 맡도록 되어있다.
한국의 비약적 경제개발은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담보는 한미 간의 긴밀한 협조로 튼튼한 안보 체제를 확보하고 평화를 유지한 덕분이다.
둘째, 전시작전 통제권을 미국이 놓지 않으려 하는 것을, 노무현 대통령이 탈환한 것처럼 말하는 것이 큰 착각이다.
미국은 이미 오래 전부터 군사력 변혁(Military Transformation)을 구상해 왔다.
9.11. 테러 공격을 당한 후, 그런 변화에 가속이 붙어 국가안보전략(The National Security Strategy)의 대강을 발표(2002.9.17.)하면서, 종전에는 단순히 억제(deterrence)만 하려든 개념을 이제는 억제, 예방(prevention)과 선제공격(preemption),예측에 의한 군사행동(anticipatory action)까지 포함하게 되었다.
이 개념이 바로 GPR(Global Posture Review)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났다(2003.11.25.). 직접적인 사례를 들자면, 미국의 아프간 공격과 이라크 침공을 예로 들 수 있다. 1차 대 이라크 전은,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했기 때문에 이를 역공하기 위한 전쟁이라면, 2차 이라크전은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보유 가능성과 테러집단인 알카에다와의 연계를 예측하고 선제공격한 것이다.
미국은 GPR을 기본으로 전 세계 해외주둔 미군을 재편하기로 했다. 주한미군의 임무와 규모도 자연히 변혁이 불가피했다. 미군을 한미연합사라는 이름 아래 휴전선 근방에 주둔하면서 북의 남침에 인계철선(trip wire) 역할이나 맡도록 그처럼 묶여있기를 원하지 않았다.
한국정부가 아무리 ‘바짓가랑이 잡는다.’해도 미군의 전략변화 작업을 중단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절실한 미국의 입장에서 가장 큰 과제는 어떻게 한국이 불안하게 여기지 않도록 하면서 적당히 구슬려서 한미연합사를 변혁 시키느냐에 고심하고 있었다.
이런 때, 느닷없이 노무현 대통령이 ”전시 작전통제권 (한국의 단독)행사를 통해, 스스로 한반도 안보를 책임지는 명실상부한 자주군대로 거듭날 것이다“(2005.10.1. 건군 제57주년 기념식 연설) 라고 앞질러 선언했다. 미국은 아마 속으로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미국이 ‘울고 싶을 때, 뺨을 때려 준’ 격이 된 것이다.
그 이후로 미국은 “빨리 이양해 가라”, “한국도 이만하면 자주국방 충분하다” 연일 재촉하듯, 찾아가라고 서둘렀다. 정부가 되레 급해졌다. 미처 준비도 안 되고, 더욱이 북한은 핵 개발한다고 실험까지 했는데 세상이 뒤숭숭해졌다. 윤광웅 전 장관이 럼스펠드 미 국방에게 사정하다 시피 끝을 맺은 지난번 국방장관 회담은 그야말로 수치와 모욕 그 자체다.
왜 좀 더, 느긋하게 있으면서 미국이 스스로 전시 작전통제권을 한국 측에서 행사하도록 요청 올 때까지 기다리지 못했는가? 왜 미국이 그런 요청을 스스로 해오면 한국정부는 못 이기는 체 하면서 “무슨 말씀입니까?
한국군이 준비하려면 부족한 것이 많습니다. 좀 더 기다려 주시오” 이렇게 미국을 바쁘게 만들지 못했을까? 이것이 외교 미숙이요, 아마추어 정치의 한계다. 이런 미숙 덕분에 국민의 부담만 커졌다.
셋째, 전작권을 단독 행사하여도 우리의 안보를 지키기 위한 능력이 결코 약화되지 않고, 예산도 추가로 늘지 않을 것이라고 정부는 국민을 우롱하고 있다. 국방부 관계자는 "전작권 문제는 '국방개혁 2020'계획(총 621조원 투입 예정)에 모두 반영됐기 때문에 계획을 수정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전임 윤광웅 장관도 지난해 “전시작통권이 어디에 있건 주한미군의 현재 능력은 그대로 이기 때문에 국방예산의 변동은 없다”고 설명했다. 우선 전작권이 이제 한국 측에 넘어왔는데, 주한미군의 능력을 예전 그대로 우리 목적에 쓸 수 있다는 가정 자체가 성립되기 어렵다.
황동준 전 국방연구원장도 "2012년까지 핵심 전력을 재검토하고 보완해야 하는데 당연히 돈이 더, 들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새 무기. 장비를 사고, 조직을 만드는 사업을 해야 하는데 추가 비용은 들지 않는다고 누가 믿겠는가?
한반도 안보에서 가장 취약한 점은 북한의 장사정 포와 핵. 화학. 생물 무기 등이다. 이를 탐지. 공격하는 전력의 상당수를 그동안 미군이 맡아 왔다. 그 임무를 우리가 떠맡으려면 막대한 예산이 당연히 든다.
1차 국방중기계획에는 2011년까지 통신. 정찰 겸용 다목적 실용위성 2~3개와 공중조기경보기 등을 갖추는 한편 F-15K급 전투기, 이지스구축함, 214급 잠수함, 정밀유도폭탄(JDAM) 등의 타격수단을 적정수준 확보하도록 되어 있다.
여기에 드는 비용만 해도 최소한 1백50조7천만 원이나 된다.
국방예산이 연평균 9.9% 증가해야 겨우 될까 말까다.
국방예산이 늘어나면 경제개발과 복지 예산이 상대적으로 위축될 것이다.
지금은 당장 전작권을 인수한다고 모두들 흥분하여 노 대통령의 말대로 “작전권이야말로 자주국방의 핵심으로 어느 정도 비용을 지불하고라도 꼭 갖춰야 될, 국가의 기본요건”이라면서 예산지출에 동의했지만 막상 금년 정기 국회 때부터 과연 그 정도의 막대한 예산이 이의 없이 통과될까?
예산문제만 나오면 국방관계자도 불안하여 만약 방위능력이 100% 자주성을 갖추지 못한다면 주한미군 측의 협조로 대북 공동 방위체제를 구축할 수, 있다고 보충 설명했다. 그뿐이 아니다. 전작권이 이양과 동시에 한미연합사가 해체된다.
한미연합사의 주 임무인 작전계획 5027계획도 이제 한국군의 독자계획으로 바뀌어져야한다. 작계 5027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유사시의 미군의 증원에 있다. 초전에 주한미군(2만5000명)이 즉각 대응하고 시차를 두고 전시 미 증원전력(육해공군 해병대 69만 명, 함정 160여척, 항공기 2천여 대)이 동원 가능하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억제력이었다.
이제 한국군 주도의 작전에서 미국이 신속하게 증원 전력을 파견할지 세심한 한미 간의 추가 합의가 있어야 한다. 국방부는 "주한미군 주둔과 증원전력 지원은 한미 상호 방위조약에 근거를 두고 있어 작전권 환수와 무관하게 보장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연합사가 해체되면 미국의 전시증원을 강제할 연결고리가 사실상 사라지는 셈"이라고 우려했다.
이런 불안을 불식하기 위하여, 미 국방부 관계자는 이번 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2008년 이후에는 2만5000명 수준을 예측 가능한 미래까지 유지한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가까운 장래에 '추가 감축은 없다'고 약속한 것이다. 물론 이 약속을 믿는다. 그러나 약속의 기간은 당분간이다. 그 후에는 현행 연합방위체제인 군사동맹구조가 '공동방위체제'로 전환하게 된다.
주한미군의 성격이 완전 기동 군으로 재편되면 미국의 필요에 따라 병력규모도 결정될 것이고, 또 그 임무도 다양하게 변화할 것이다. 그러므로 앞으로의 과제는 한미방위조약에 따라 어떤 구조로 지원체제를 유지할지 확실한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넷째, 전작권의 행사는 북한의 전력 증강과도 함수관계에 있다. 북한이 비록 재래식 전력은 형편없이 약화되었다 하더라도 미사일과 핵과 생화학 등 대량살상무기를 확보하고 있다. 이는 우리와 분명히 비대 층 관계에 있다. 이를 억제하는 방안은 미국의 핵우산이외 다른 대안이 없다.
김장수 국방장관도 "북한의 핵실험은 6.25전쟁 이후, 최대 안보위기이며 이로 인해 남북 간 전력 불균형이 발생한 것은 확실하다"면서도 "한미동맹을 근간으로 부족한 것은 미국 측으로부터 지원받고 미국의 핵우산 제공 등으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미 측도 전작 권, 전환 이후 한국군의 부족한 전력에 대해서는 `보완전력'(bridging capability)을 지속적으로 제공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상과 같이 전시작전 통제권을 둘러싸고 여러 가지 숙제가 우리에게 가로 놓여 있다.
이 숙제를 원만히 해결하지 못한 체, 2012년 4월 17일이 닥치면 우리는 ‘자주’라는 사치 때문에 안보능력을 상실하게 될지도 모른다. 다만 현 정부의 설명대로 전작권이 주한미군 사령관의 손에 있다면 앞으로 6자회담이 잘되어 한반도의 정전 체제가 평화체제로 넘어가는 중요한 시점에 미국이 북한과 양자교섭하게 되고, 한국이 당사자에서 빠지게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작 권을 쥐고 있어야 당사자로서 한반도의 평화를 담보할 수 있다는 주장은 일리가 있다. 하지만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이 미국의 핵우산 하에 있는데 전작 권만 있다고 당사자로 대접받는다고 속단해서도 안 된다.
어차피 평화체제로 넘어가려면 북한의 핵문제가 말끔하게 정리되는 것이 대, 전제다. 2012년 전작권의 시한 내에 과연, 북한이 핵을 포기하게 될까? 두고 볼 일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이든 전작권이 정치적인 이유로 국가 주권이라든가 민족적 자부심으로 그 본질이 흐려져서는 안 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정치인들의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으로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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