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구파 2

조선(朝鮮)의 성리학(性理學)흐름과 당파(黨派)

조선(朝鮮)의 성리학(性理學) 흐름과 당파(黨派) [1]성리학의 발달 1.성리학의 두 흐름 고려말기의 신진사대부들이 자기역사에 대한성찰과 현실극복의 이념적지표로 삼은 학문적 기반은 성리학이었다. 성리학은 조선의 건국과정에서 사회개혁의 명분을 제공하였다. 조선왕조의 개창이라는 역사적 변화에 대하여, 성리학을 공부하는 지식인들이 모두 찬동한 것은 아니었다. 즉, 개혁의 논리를 내세우면서 적극적인 역성혁명에 참여한 쪽과, 개혁에 소극적이면서 고려왕조에 충성을 표시하는 의리와 명분을 주장하는 쪽의 대립이 있었다. 전자는 정도전(鄭道傳,1342~1398)을 중심으로 하는 혁명파세력으로, 조선왕조 성립이후 정치구도를 세웠으며, 유교국가 운영에 학문적 이론을 제시하였다. 후자는 정몽주(鄭夢周,1338~1392)를 중..

사대사화(四大士禍)

영남파와 기호파로 나눠진 훈구와 사림의 파벌과 사대사화. "기호(畿湖)"란 경기와 호서(충청도).호남(전라도)을 아울러 지칭하는 이름이다. 따라서 기호 지방이라고 하면 전라도도 포함되는 것이다. 영남 지방에는 고려 말에 정몽주(영천 출신), 길재(선산 출신), 정도전(본이 영주 봉화 출신), 하륜(진주) 등의 대학자들이 출현하여 많은 유학자들을 양성하였다. 그 후에도 김숙자(거창, 김종직의 아버지). 김종직(밀양 출신), 김굉필(현풍 출신), 정여창(진주), 이언적(경주), 이황(안동) 등 수 많은 유학자들이 배출되어 추로지향(鄒魯之鄕 : 공자 맹자의 고향)이라는 말이 있었다. 그래서 성리학이 발달하였고, 영남지방은 사림파의 온상이 되었다. 서울. 경기에는 워낙 벼슬하는 학자,.관료들이 많아 주로 관학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