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비이씨 3

혜비이씨(惠妃李氏)

■ 혜비이씨(惠妃李氏) 혜비(惠妃)는 황제, 제후. 왕의 비(妃)에게 붙는 작호(綽號) 이다. 「혜비이씨(惠妃李氏, ?~1408년(태종 8) 음력 2월 3일」는 고려의 제31대 공민왕(恭愍王)의 제2비이다. ●생애와 가계 본관은 경주(慶州)로 성리학자로 검교 첨의정승(檢校僉議政丞)을 지낸 이진(李瑱)의 손녀이고, 계림부원군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의 딸로, 어머니는 익재의 재취(再娶) 부인인 수춘국부인 박씨(壽春國夫人朴氏) 소생이다. ●왕비시절 공민왕(恭愍王)의 정비인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 ? ~1365/중국 원나라 황족 위왕(魏王)의 딸」가 아들을 낳지 못하자, 노국대장공주를 비롯한 여러 재상(宰相)들이 공민왕에게 명문가(名門家)의 여식으로 후비를 들일 것을 청하였다. 그렇게 해서 간택된 사..

혜비이씨(惠妃李氏)

■ 혜비 이씨(惠妃 李氏) 혜비(惠妃) 이씨(李氏)는 계림인(鷄林人)이니 부원군(府院君) 익재 이제현(益齋 李齊賢)의 여섯째 딸이다.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가 아들이 없으매 재상(宰相)들이 명가(名家)의 딸로써 자식 둘 자를 들이도록 청하니 이에 뽑아 들여서 혜비(惠妃)로 봉(封)하였다. 홍륜(洪倫)과 한안(韓安)이 여러 비(妃)를 강제로 욕(辱)보일 때에 비(妃)는 거절하여 따르지 않았고 공민왕(恭愍王)이 이미 시해(弑害) 당하매 머리를 깎고 비구니(比丘尼)가 되어 정업원(淨業院, 오늘날 서울 종로구 숭인동 비구승들이 거처하는 청룡사(靑龍寺)/고려 의종(毅宗)12년(1158) 희종법사가 창건하였다함)으로 들어갔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金基德〉

혜비이씨(惠妃李氏)

■혜비 이씨(惠妃李氏) 혜비 이씨(惠妃李氏)는 경주(慶州) 사람으로 부원군 이제현(府院君 李齊賢)의 딸이다.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가 아들이 없자 대신들은 공민왕(恭愍王)에게 명문 가정의 딸로서 아들을 잘 낳을 만한 여자를 왕비로 들일 것을 요청하였다. 이에 1359년 5월 이제현의 딸이 왕비로 간택되어 입궁 하였고, 그녀가 바로 혜비 이씨이다. 그녀는 공민왕의 명령에 의하여 홍륜(洪倫)과 한안 등이 여러 왕비들을 강간하려 하자 이를 강력하게 거부하였다. 이 때문에 공민왕이 그녀를 죽이려 하였지만 그녀의 절개가 워낙 대단하여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1374년 9월 공민왕이 살해되자 스스로 머리를 깎고 출가하여 여승이 되었다. 그후 비구니로서 정업원(淨業院)에 거주하다가 죽었다는 기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