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그특사 이상설 6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독립운동가 '이상설'

[카드뉴스]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독립운동가 '이상설' 2017. 11. 11. 7:35 러시아 우수리스크, 수이푼 강에 자리 잡고 있는 비석에는 한 많은 독립운동가의 영령이 잠들고 있습니다.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헤이그 특사사건의 주역’ 이상설 선생의 일대기를 시민연대 에서 살펴보았습니다. 제작: 우리 역사바로잡기 시민연대 카드 뉴스팀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제공 nodistortion@naver.com

보재 이상설 평전 출간

[MBN이 본 신간] 보재 이상설 평전 기사입력 2017-02-01 10:13 l 최종수정 2017-02-01 10:13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네덜란드 헤이그에 특사로 파견됐던 독립운동가 이상설(1870∼1917)의 삶을 조명한 책. 이상설의 이름은 그리 알려져 있지 않다. 이준, 이위종과 함께 네덜란드에 파견된 헤이그 특사의 일원 정도. 몽양 여운형, 우사 김규식, 위당 정인보 등 다양한 인물의 평전을 집필한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은 "우리가 반드시 기억하고 독립운동사에 그리고 역사 교과서에 고딕체로 기록해야 하는 독립운동의 독보적인 선구자"라고 평가한다. 여순감옥에 갇혀 재판을 받던 안중근 의사는 이상설을 "세계대세에 통하고 동양의 시국을 간파하고 있다"고 전했다. 25살의 나이에 ..

이상설의 글-헤이그에서

『한국통사 46장의 글』- 박은식 1.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밀사 파견 이준은 고종황제의 밀칙을 받들고 4월 20일 경성을 출발하여 함경도를 경유하였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성설에게 칙명(勅命-임금의 명령)을 전하였다. 그리고 시베리아 철도로 동행하여 러시아 수도 페트로그라드에서 이위종을 만나 함께 동행하여 헤이그에 도착하였다. 당시 평화회의 의장은 러시아 위원 넬리도프 백작이었는데, 러시아 정부에서도 한국 밀사에 관해 훈령을 보냈으로 3인이 찾아가자 접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회의 참가 여부는 회장의 권한이 아니라 하여 미결로 남겨 둔 채 다시 영국, 미국, 프랑스 각국 위원을 방문하여 회의 참가를 간청하였다. 네덜란드 정부에 대해서도 을사조약은 한국 황제가 비준하지 않았으니 일본이 우리나라의 외교권을 ..

이상설 특사의 불꽃같은 독립운동

잃어버린 한국고대사 연구회 이상설 특사의 불꽃같은 독립운동| 역사이야기 홍순주 | 조회 249 |추천 0 | 2015.08.14. 12:31 이상설((李相卨, 1870~1917) 선생은 1870년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태어나 7세 때인 1876년, 동부승지 이용우의 양자가 되어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다. 선생은 한학뿐만 아니라 근대적 학문도 거의 독학으로 도달한 비범한 인물이었는데 1894년(고종 31년) 25세 때 조선조의 마지막 과거(갑오문과)에 급제하기에 이르렀다. 관계에 진출한 선생은 한림학사(翰林學士)에 제수되었고 그 후 1896년 1월에는 27세의 나이로 성균관 교수 겸 관장이 되었으나 관직생활은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다. 따라서 선생은 전통 학문인 성리학을 바탕으로 하는 유학은 물론, 정치, 법률..

"이상설선생 아직도 국적회복 안되" - 경인방송

경인방송 FM 90.7MHz ■ 아침 시사프로그램 ‘상쾌한 아침, 원기범입니다’ ◈방송일시 : 2013. 04. 30(화) 오전 7시 32~42분 전화연결 ◈출 연 자 : 이재훈 이상설선생기념사업회 기획이사님 ◈방송주제 : 96주기 이상설선생, 아직도 국적 회복 안돼 ◈방송내용 : 방송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낯선 땅에서 목숨을 걸고 싸운 독립지사가 조국으로 아직도 못 돌아오고 있다면 여러분들 미 드시겠습니까? 실재로 이런 일이 있습니다. 고(故) 이상설선생의 얘기입니다. 올해 96주기를 맞은 이상설선생의 국적회복이 되지 않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직계가족만 국적 회복을 신청할 수 있다는 법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자 행정편의적인 법 해석 아닙니까? 문제가 많습니다. 오늘 2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