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형 5

최재형(崔在亨)-독립운동가

↑최재형(崔在亨) 선생 존영 1858년(철종 9)∼1920년. 독립운동가, 일명 재형(在衡)·도헌(都憲). 러시아 이름은 뻬돌쏘오·최뻬찌카. 함경북도 경원 출신이다. 9세 때 부모를 따라 시베리아 노우키에프스크(煙秋)에 이주하여 러시아에 귀화하였다. 러시아 군대의 어용상인(御用商人)으로 재물을 모아 부자가 되었고, 이후 관리가 되어 두 차례에 걸쳐 페테르부르크에 가서 러시아 황제를 알현, 5개의 훈장까지 받았다. 노우키에프스크 도헌(都憲)이 되어 연봉 3,000루블을 받게 되자 은행에 예금, 그 이자로 매년 교포 유학생 1명씩을 페테르부르크에 보내 유학시켰다. 러일전쟁이 일어나자 러시아 해군 소위에 임명되어 경무관부속 통역관으로 활약하는 한편, 남부소집회감독(南部所集會監督)으로 러시아에 귀화한 교포들을 ..

러시아 연해주, 그 땅과 그 역사

김석동의 한민족 성장 DNA 추적(22) 1. 러시아 연해주, 그 땅과 그 역사 김석동전금융위원장 연해주(沿海州)는 흑룡강·우수리강 그리고 동해로 둘러싸인 땅으로 러시아 83개 연방지역의 하나인「프리모르스키(Primorskiy)지방」을 말한다. 면적은 약 16만 4700㎢로 러시아의 0.92%에 불과하나 우리나라의 1.6배 크기다. 80%가「시호테-알린산맥」등 산림지대이며, 평균기온은 1월 -20℃, 7월 +20℃이다. 인구는 약 200만 명으로 러시아 전체의 1.4%가 살고 있다. 주도(州都)는「블라디보스토크」로 약 62만 명이 살고 있고, 모스크바까지 9288㎞에 달하는 시베리아 횡단 철도의 종착지다. 두 번째로 큰 도시는 블라디보스톡 북쪽 약 112㎞에 위치한「우수리스크」로, 발해 유적지가 다수 분..

독립운동의 흔적을 찾아서… ‘슬픈 연해주’

블라디보스톡에 남아 있는 독립운동의 흔적을 찾아서… ‘슬픈 연해주’ BY pichy91 on 2. 2, 2013 연해주, 그 땅은 우리민족에게 수많은 아픔과 애한이 서린 곳이다. 이미 앞에서 이쳐진 땅, 블라디보스톡에서의 우리민족 고구려와 발해가 남긴 유적에 대해 간략히 살펴봤다. 그리고 연해주 이주초기의 역사와 생활상에 대해서도 돌아본 바 있다. 여기서는 조국을 잃고 어쩔 수 없이 블라디보스톡으로 옮겨 독립운동을 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선조들의 활동 상에 대해서 알아보자. ↑블라디보스톡을 근거지로 독립운동을 벌였던 최재형이 당시 살았던 집. 지금은 러시아인이 살고 있으며, 한국정부에서 기념관으로 만들기 위해 구입하려 했으나 거주자가 반대해 성사되지 못했다. ↑최재형의 집이라는 안내문만 붙여, 독립운동의 ..

쓸쓸한 ‘독립운동 성지’… 우린 언제 이 빚을 다 갚을까.

쓸쓸한 ‘독립운동 성지’… 우린 언제 이 빚을 다 갚을까. 블라디보스토크·우수리스크(러시아) | 박재현 기자 parkjh@kyunghyang.com 입력 : 2015-07-10 21:48:58ㅣ수정 : 2015-07-10 22:56:17 ●광복 70주년 독립기념관·경향신문 공동 연해주·옌볜 탐방 지난달 20일 탐방단을 태운 버스가 러시아 우수리스크시 라즈돌리노예 강가의 비포장 도로에 멈췄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1시간30여분을 달린 뒤였다. 성벽처럼 낮은 산 앞으로 펼쳐진 초원의 한편에는 아직도 발해 성터 흔적이 남아 있다. 탐방단이 찾은 곳은 보재 이상설(1870~1917)의 유허비. 인가는 물론 논밭 뙈기 하나 없는 허허벌판에 묘지도, 기념비도 아닌 유허비가 세워진 데에는 특별한 사연이 서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