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평현령 이공린 3

유금강록(遊金剛錄) - 이원(李黿)

■ 유금강록(遊金剛錄) 금강산 유람을 떠나기로 하다. 금강산(金剛山)은 강원도(江原道)의 진산(鎭山)으로, 북쪽으로는 안변(安邊)에 맞닿아 있고, 남쪽으로는 강릉(江陵)에 닿아 있으며, 동쪽으로는 큰 바다에 임하고, 서쪽으로는 춘천(春川)의 경계로 통한다. 흡곡(歙谷), 통천(通川), 고성(固城), 간성(杆城), 회양(淮陽), 금성(金城), 양구(楊口), 낭천(狼川)등 여러 군들이, 동쪽과 서쪽으로 땅을 나누어, 삼백여 리에 뻗쳐있는 내외의 금강산 산록에 들어 있다. 고개를 경계로 삼고, 내외 수참(水站)을 정하여 서쪽을 내산으로 삼고, 동쪽을 외산으로 삼는다. 금강산은 도가와 승려들이 모이는 곳이며, 시인과 문장가가 왕래하며 노닐며 감상하는 곳이다. 나의 먼 조상인 고려 문충공(文忠公) 익재(益齋) 이..

이공린(李公麟)

■ 23世 공린(李公麟) [세계] 익재 재현(齊賢)의 6대손, 평안도관찰사 윤인(尹仁)의 아들 [생졸년] 1437년(세종 19) ~1509년(중종 4) / 壽73세 ------------------------------------------------------------------------------------------------------------------------------------- 조선 중기의 문신. 자(字)는 정수(禎叟), 본관은 경주(慶州). 제현(齊賢)의 6대손, 평안도관찰사(平安道觀察使) 윤인(尹仁)의 아들로, 세칭 경주이씨 팔별의 아버지이다. 어려서부터 재질이 뛰어났고 포부가 원대하였으나, 1456(세조 2) 그의 나이 20세(歲) 되던해 장인 취금헌 박팽년(醉琴軒 朴彭年)의..

창평 현령 이공 묘갈명(昌平縣令李公墓碣銘)

■ 23世 창평 현령공 묘갈명(昌平縣令公墓碣銘) [생졸년] 1437년(세종 19) ~1509년(중종 4), 고령 신용개 지음(高靈 申用漑 撰) 공의 이름은 공린(公麟)이고 자(字)는 정수(禎叟)이다. 경주(慶州)의 저명한 성씨다. 육 대조(六代祖)는 제현(齊賢)인데, 호(號)는 익재(益齋)라고 불렀다. 고려조 때 귀히 되어, 벼슬이 시중(侍中)이다. 문장(文章)과 덕(德)과 사업이 아울러 한때에 높았다. 그 뒤로 부터 높은 벼슬이 계속되어 세상의 이름있는 가문(家門)이 되었다. 관찰사(觀察使) 윤인(尹仁)에 이르러 만호 홍중량(萬戶 洪仲良)의 따님과 혼인하여 공(公)을 낳았다. 홍씨(洪氏)역시 남양(南陽)의 문벌(文閥)있는 씨족이다. 공(公)이 성질이 순후(淳厚)하고, 근실(勤實) 하였다. 아름다운 자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