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경주이씨 명인록

이공린(李公麟)

야촌(1) 2010. 7. 9. 00:13

■ 23世 공린(李公麟)

 

   [세계] 익재 재현(齊賢)의 6대손,  평안도관찰사 윤인(尹仁)의 아들

   [생졸년] 1437년(세종 19) ~1509년(중종 4) / 壽7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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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자(字)는 정수(禎叟), 본관은 경주(慶州). 제현(齊賢)의 6대손, 평안도관찰사(平安道觀察使) 윤인(尹仁)의 아들로,  세칭 경주이씨 팔별의 아버지이다.

 

어려서부터 재질이 뛰어났고 포부가 원대하였으나, 1456(세조 2) 그의 나이 20세(歲) 되던해 장인 취금헌 박팽년(醉琴軒 朴彭年)의 죄(罪)에 연좌(緣坐)되어 약 삼십년(三十年)간 관직에 나갈수가 없없다.


그뒤 어머니 남양홍씨(南陽洪氏)를 절부(節婦 : 절개있는 부인)로 봉(奉)하고, 그 자제를 등용하라는 왕명에 따라  1482(성종 13)에 비로소 이름을 무반(武班)에 얹었다. 뒤에 추천되어 통례원 인의(通禮院 引義 : 예의를 맡아보던 관아의 從六品 벼슬)겸, 한성부 참군(漢城府 參軍 : 한성부의 군사를 맡은 正七品 벼슬)이 되었다.

 

그러나 1498년(연산군 4)엔 그의 세째 아들 재사당 원(黿)이 무오사화(戊午士禍)에 연루되어 그도 다시 연좌되어 해남에 유배되었다가 풀려났다. 이어 흥덕 현감. 함열 현감(咸悅縣監)· 창평 현령(昌平縣令)을 역임하면서 향리를 잘 통솔하고 백성에게 선정을 베풀었다.

또 1504년(연산군 10) 갑자사화 때는 아들 원(黿)이 연산군으로부터 참형을 당하는 등, 여러 번 자신의 죄가 아닌 일에 연좌되었고, 또 나이가 많아 관직에 있기를 바라지 않았으므로 청주에서 조용히 여생을 보냈다.

 

[참고문헌]

◇燕山君日記 ◇中宗實錄 ◇國朝人物考

 

 

 

 

 

 

소재지 : 충북 청원군 미원면 가양리 산17번지  / ⓒ이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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