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재난고 5

익재집 보물로 지정(역옹패설과 익재난고 )

↑1432년(세종 14) 원주에서 두 번째로 간행한 익재집 ■ 익재집(益齋集) 보물로 지정 고려시대 최고의 명신(名臣)이요, 대학자인 이제현(李齊賢,1287~1367)선생이 지은 익재난고(益齋亂藁)는 보물 제1892호로 역옹패설(櫟翁稗說)은 보물 제1893호로, 지정됐다고 2016년 2월 22일(월요일) 문화재청이 발표했다. 고려후기 이인로(李仁老,1152~1220)의 파한집(破閑集/說話文學集)과 최자(崔滋,1188~1260)가 엮은 보한집(補閑集/詩話集)과 더불어 고려3대 문학비평서인 역옹패설(櫟翁稗說)은 이제현선생의 나이 56세 때인 1342년(충혜왕 3) 관직에서 물러나 자택에 머물면서 익재난고(益齋亂藁)와 함께 집필한 책이다. 이 책의 《초간본》은 저자 이제현(李齊賢)의 77세 때인 1363년(공..

익재난고(益齋亂藁) - 이제현(李齊賢)

고려의 3대시인의 한 사람인 익재 이제현(1287-1367)의 시문집. 익재의 초상. 至正二十三年(1363) 李穡 의 序. 上下內向三葉花紋魚尾. 이 책은 萬曆庚子(1600) 鷄林府에서 간행한 책과 同一本. [저자] 고려국 익재 이제현(高麗國 益齋 李齊賢) [인쇄판식] 목판본(木板本) [출판년도] 만력경자 계림부간(萬曆庚子鷄林府刊 : 1600년) [간행인] 경주부윤 이시발(慶州府尹 李時發) [출판사] 계림부간(鷄林府刊) [크기] 가로 205mm x 세로 315mm -------------------------------------------------------------------------------------------------------------------------------------- 익재..

익재선생문집(益齋先生文集)

◈ 품 명 : 익재선생문집(益齋先生文集) ◈ 크 기 : 18.5Cm x 28.5Cm ◈ 판 사 항 : 목판본(木板本 ) ◈ 발행사항 : 慶州 : 鷄林府, 肅宗 19(1693)刻, [後刷] ◈ 형태사항 : 10卷3冊 : 四周雙邊 半郭 20.1 x 15.8 cm, 有界, 半葉10行18字 註雙行, 內向2葉 花紋魚尾 ; 30.2 x 20.2 cm ◈ 저 자 : 이제현(李齊賢:1287~1367) ◈ 주기사항 : ◇備考 : 第1-4張 落 ◇益齋는 李齊賢의 號임 ◇刊記 : 崇禎丙子後伍拾染年癸酉(1693)正月鷄林府重刊 ◇重刊識 : 癸酉(1693)...許경書 ◇紙質 : 楮紙 ◇表題 : 益齋先生文集 益齋亂藁. 卷1-10 / 李齊賢(高麗) 著 10권 4책. 저자가 살아 있을 때인 1363년(공민왕 12) 아들 창로(彰路) ..

益齋集 七刊本 木板刻(익재집칠간본목판각)

■ 익재문집 제七간본 목판각(益齋文集弟七刊本 木板刻) 익재집 《칠간본》.은 병인(丙寅) 1926년에 저자의 19대손 이규석(李圭錫)이 하겸진(河謙鎭)의 서(序)를 받아 연활자(鉛活字)로 경북 안동(安東) 노림재(魯林齋)에서 6책으로 간행하였다. ↓아래 목판각은 1926년 안동 노림재에서 6책으로 간행된 익재집 목판각 이다. ↑역옹패설 목판각(櫟翁稗說 木板刻) ↑익재난고 목판각(益齋亂藁 木板刻) ↑발(跋) * 지(誌) * 습유(拾遺) ↑효행록 목판각(孝行錄木板刻) ------------------------------------------------------------------------------------------------------------------------------------- ■ 역..

익재 이제현의 저작(著作)

↑益齋 李齊賢先生 畫像(國寶 第110號. ● 익재 초상의 주해. 고려 후기 문신(高麗 後期 文臣)이자 학자(學者)인 익재 이제현(益齋 李齊賢 : 1287∼1367) 先生의 초상화이다. 이제현은 원(元) 나라의 만권당에서 조맹부 등과 교류하며 고려에 신학문과 사상을 소개하고, 성리학을 전파, 발전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호(號)는 익재(益齋), 역옹(櫟翁)으로,『국사』『역옹패설』등을 남겼다. 위의 익재 초상(益齋肖像)은 원나라 화가 진감여가 그린 고려 말의 문신 익재 이제현의 전신 초상화이다. 국보 제110호로 지정되어 있다. 화면 상단에 적혀 있는 화기에 의하면, 이제현이 33세 되던 해인 1319년에 충선왕을 모시고 중국 저장성[절강성]의 보타산 사찰에 강 향하기 위해 갔을 때, 왕명으로 항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