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조(李莜) 2

사인공전 역문(舍人公傳 譯文)

■ 사인공전 역문(舍人公傳 譯文) 외사씨찬(外史氏撰) 옛날 문장(文章)의 선비가 기품이 대개가 맑고 서도 깨끗하였으니, 한(漢)나라의 채백계(蔡伯階)와 당(唐)나라의 왕자안(王子安)과 이장길(李長吉)무리가 모두 문학(文學)으로 조정에 올라 그들이 지은 것이 음악(音樂)에 오르고 제사에 쓰게 되었으므로 금석(金石)에 새기어 전하고 명산(名山)에 보관되기도 하였으니 일대(一代)에 지극히 선출한 인재(人才)라 하겠다. 이와 같은 사람으로 재주는 있으나 수를 누리지 못하여 후인(後人)들이 애석하게 여기었으니 경주(慶州) 이사인공(李舍人公) 이라는 분이 가장 이에 가깝도다. 사인(舍人)의 집에는 큰 선비와 큰 학문(學問)이 많았다. 열헌(悅軒) 핵(翮)의 부인(夫人) 김씨(金氏)가 친히 그 자제 인정(仁挺), 진..

열헌공의 3자 10손

■ 경주이씨 중흥조 열헌공(悅軒公)의 3자(三子) 10손(九孫) 중시조인 소판공 이거명(蘇判公 李居明)의 15세인 열헌공 핵(悅軒公 翮)은 고려시대 문하평리(門下評理)를 지내셨으며, 아들 셋과 손자 열 모두가 당시대인 고려 때 크게 세상에 이름을 떨치게 되어. 모두 3자 10손이라고 극찬을 유례 한데서 연유합니다. ●열헌공(悅軒公) 핵(翮)은 세 아들을 두셨는데, 장자(長子)인 성암공 인정(誠菴公 仁挺)은 광주판관(廣州判官)을 거쳐 우정언(右正言)에 이르렀고, 차자(次子)인 동암공 진(東菴公 瑱)은 진사(進士)시와 문과시(文科試)에 장원급제하여 상의 도첨의사사 찬성사(商議都僉議司事 贊成事)를 거쳐, 검교첨의정승(檢校僉議政丞)에 이르렀으며, 시문으로 일세에 이름을 떨친 분이셨다. 삼남(三男)인 송암공 세기..